‘하나’로 가는 길, 빨간불에도 가속페달
지난 1월 외환은행 노동조합원들이 금융위원회 앞에서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예비인가 승인을 막기 위해 중식 집회 및 108배를 진행하는 모습. 이후 법원의 통합중단 가처분 결정에도 하나금융지주는 조기통합을 계속 추진할 방침이다. 임준선 기자
법원 결정 이후 당분간 잠잠해질 것 같았던 하나·외환은행 조기 통합 문제에 불길을 당긴 쪽은 하나금융지주다. 법원 결정이 내려지자마자 하나금융은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이의신청을 포함한 다각적인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입장을 발표했다. 법원이 외환은행 노조의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인 지난 4일 하나금융 주변과 하나금융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침울한 분위기가 감지됐다. 하나금융 쪽에서는 “이의신청을 검토하고 있지만 꼭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까지 들릴 정도였다.
하지만 이튿날인 5일부터 하나금융은 바쁘게 움직였다. 이 날 하나금융은 이우공 부사장, 정진용 상무, 주재중 전무가 스스로 물러났음을 알렸다. 이 부사장이 통합추진단장을, 정 상무가 준법담당을, 주 전무가 외환은행 기획관리담당을 맡고 있었다는 점에서 비록 이들이 스스로 사표를 제출했지만 문책성 인사로 비쳤다.
하나금융은 이들 대신 CSO(Chief Strategy Officer, 최고전략책임자)에 박성호 전무를, 준법감시인에 권길주 전무를, CFO(Chief Financial Officer, 최고재무책임자)에 곽철승 상무를 각각 선임했다. 또 9일에는 김병호 하나은행 직무대행을 신임 하나은행장으로 선임했다. 하나금융의 발 빠른 인사는 법원 결정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하나·외환은행 조기 통합에 속도를 붙이기 위한 것으로 풀이됐다. 지난 10일 있었던 김병호 하나은행장의 취임식은 이 같은 해석에 무게를 실었다.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은 더 나아가 법원에 이의신청을 하는 것은 물론 두 은행의 조기 통합을 계속 추진해나갈 뜻을 적극적으로 표현했다. 김 행장의 취임식이 끝난 후 김 회장은 “외환은행이 이대로 가다간 부산은행에 역전당할 것”이라며 “조만간 법원에 이의신청을 하고 노조와 대화를 통해 조기 통합을 계속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법원이 하나금융의 이의신청을 받아들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 근거는 지난 6일 하나금융이 발표한 외환은행의 4분기 실적이다. 이에 따르면 하나은행은 지난해 연결기준 당기순이익이 전년 대비 21.2% 증가한 8561억 원을 시현한 반면 외환은행은 전년 대비 17.8% 감소한 3651억 원에 그쳤다. 전년 대비 순이익이 줄어든 시중은행은 외환은행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외환은행은 지난해 4분기에는 860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부산은행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외환은행보다 불과 100억 원 적은 3550억 원. 김 회장은 “정말로 외환은행을 위한다면 노조도 위기를 느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이 외환은행의 4분기 실적자료를 이의신청서에 포함하려는 까닭은 “(외환은행의 상태가) 하나은행과 합병을 서둘러야 할 만큼 위급하지 않다”는 법원 결정을 반박하기 위해서다. 법원이 지난해 3분기까지 실적만 보고 결정했기 때문에 그런 판결이 나왔다는 것. 따라서 4분기 실적자료를 보면 얘기가 달라질 것이라는 판단이다.
외환은행 노조는 “하나은행보다 수익력이 월등했던 외환은행의 실적이 악화된 것은 김정태 회장의 경영 실패 결과”라며 지난 2012년 하나금융에 인수된 이후 실적이 급락한 것을 그 근거로 제시했다. 노조는 구체적으로 하나금융에 인수된 후 △외환카드 분리에 따른 수익 저하와 6400억 원 자본금 이탈 △영업현장에서 하나은행·지주 상품 우선 판매 △통합작업 빌미로 조직 흔들기 등의 탓이라고 밝혔다.
김정태 회장은 현재 “1% 가능성만 있어도 가처분 이의신청을 제기할 것”이라며 벼르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하나금융 관계자는 “통합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것은 오해”라고 부인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
김한조 통합행장 꿈 멀어지나 노조와 평행선·실적악화 책임…지금 자리도 위태위태 하나·외환은행 조기 통합 논의가 지난해 7월부터 불거지면서 김한조 외환은행장이 주목을 받았다. 외환은행 노조와 대화하고 타협하는 임무를 맡은 동시에 과연 통합 이후 김 행장이 ‘통합 은행장’ 자리에 오를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졌다. 외환은행 행원 출신의 김한조 행장이 하나·외환은행 조기 통합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이를 추진하는 하나금융의 첨병처럼 비친 것도 통합 은행장을 위한 하나의 길로 해석되기도 했다. 김한조 외환은행장 급기야 지난 10일 김병호 신임 하나은행장이 취임하면서 김한조 행장이 통합 은행장은커녕 오히려 현재 자리까지 위태로워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지금 시점에서 통합 은행장 자리를 거론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면서 “법원이 노조의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인 이후에도 김 행장은 노조와 대화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6일 발표된 외환은행의 실적 역시 김 행장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시중은행 중 전년 대비 당기순이익이 감소한 곳은 외환은행이 유일한 데다 지난해 4분기에는 860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김한조 행장이 외환은행장에 취임한 것은 지난해 3월. 김한조 행장은 지난 1년간 실적 악화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위치와 기간으로 보인다. 외환은행 다른 관계자는 “취임하자마자 조기 통합 문제가 불거진 데다 모뉴엘 부실 대출에 따른 대손충당금 탓에 실적이 악화한 것”이라며 “김 행장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마치 결혼한 지 10개월밖에 안 된 며느리에게 왜 아기가 없느냐고 타박하는 시어머니 꼴”이라고 반박했다. 실적 악화가 김 행장과는 관계가 없다는 얘기다. 하나금융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외환은행의 실적 악화는 “모뉴엘 대손비용 682억 원, 외환파생 관련 손실 전년 대비 912억 원 증가 탓”이다. 그러나 모뉴엘 부실 대출 문제와 관련해 당시 기업사업그룹장이었던 김한조 행장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난 1월 22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외환은행 노조 주최 ‘하나·외환은행 조기통합 반대 공개토론회’에서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외환은행의 모뉴엘 여신 급증에는 2012년 당시 기업사업그룹장이었던 김한조 행장이 독려했던 총대출 증대 캠페인이 핵심적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모뉴엘 부실 대출 문제에 대한 금융당국의 조사 결과에 따라 김한조 행장이 자칫 위기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은행 업무에서 마케팅과 여신심사 부문은 다른 영역”이라며 “당시 기업사업그룹장으로 마케팅에 주력했던 김한조 행장이 여신심사에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은 전혀 없다”고 김 행장에게 책임이 없음을 강조했다. 외환은행 측은 김한조 행장의 이런저런 책임론을 적극 반박하고 있지만 법원의 가처분 신청 승인에 이은 김병호 하나은행장 취임으로 김한조 행장의 입지가 좁아져 보이는 것은 분명하다. 외환은행 측은 김 행장이 노조와 만나 대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김 행장은 노조와 만나지도 못하고 있다. [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