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다이어트’ 기회 주면 안될깝쇼
전경련회관 전경. 박은숙 기자
정부의 기업 구조조정 강경 드라이브에 맞춰 금융감독원은 11일 ‘국내은행의 부실채권 잠정현황’ 자료를 내놓았다. 시중은행과 국책은행 등 18개 국내 은행이 보유한 전체 부실채권의 약 90%가 기업여신에서 비롯됐다는 실증자료다.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은행권 부실채권 총규모는 23조 8000억 원으로, 이 중 기업여신 부실이 21조 1000억 원에 달해 전체 부실채권의 88.7%를 차지했다.
경제성장을 갉아먹는 ‘좀비기업’에 대한 처리도 강조되고 있다. 좀비기업이란 회생할 가능성이 없음에도 정부 또는 채권단의 지원을 받아 간신히 파산을 면하고 있는 기업을 말한다. 구체적으로 이자보상비율(기업이 영업이익으로 금융비용을 얼마나 감당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로 1보다 작으면 이자도 감당 못한다는 의미다)이 1 미만인 동시에 만기연장 또는 이자보조를 받은 기업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조사결과 2010년 7.1%에 불과했던 운송장비 업종의 좀비기업 비중은 지난 2013년 26.2%로 3배 이상 늘어났다. 건설업계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2010년 건설업종 좀비기업 비중은 26.3%에서 2013년 41.4%로 급증했다. 건설회사 10곳 중 4곳은 정상적인 영업이 아니라 금융권 지원에 연명하고 있다는 의미다. 건설업계는 연쇄 부도 사태를 막기 위해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실제로는 건설시장 전체를 멍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의 상시적 구조조정제 도입의 명분은 충분한 셈이다.
하지만 재계는 정부 주도의 타율적 구조조정에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현재 구조조정이 채권단 주도로 이뤄지고 있는 바람에 일시적 부진을 겪고 있지만 회생 가능성이 있는 기업들까지 은행 살리기를 위해 희생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재계는 이런 사례를 막기 위해 기업들의 사업재편에 걸림돌이 되는 각종 규제와 제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 입장이다.
실제로 재계는 한창 구조조정 중이다. 현대중공업이 최근 과장급 이상 1500명을 대상으로 명예퇴직을 받고 있다. KT도 지난해 약 8000명의 명퇴를 받았고, 올해엔 임원들을 대상으로 구조조정을 실시할 방침이다. 삼성물산이 최근 수백 명을 구조조정하고 있고, 두산중공업은 지난해 12월부터 명예퇴직을 받았다. 동부제철, SKC, 동국제강 등도 지난해부터 올 초까지 구조조정을 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 11일 윤상직 산업부 장관과 주요 기업의 CEO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투자간담회에서 “한시적으로라도 사업재편촉진 특별법을 제정해 사업재편이 적은 비용으로 쉽고 빠르게 이뤄질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건의한 이유다. 사업재편촉진 특별법을 통해 사업재편 과정에서 비용과 규제의 부담을 덜고, 절차의 간소화를 이뤄내자는 것이다.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최근 ‘시장친화적인 기업구조조정 제도 구축방안’ 보고서를 통해 기업회생과 채권은행, 사모투자펀드, 세제 등 원활한 기업구조조정 촉진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한경연은 보고서에서 기업들의 자율적 구조조정 수단인 ‘법정 외 워크아웃 절차’부터 ‘법원 주도형 법정관리절차’ 등 다양한 구조조정 절차를 기업들이 사정에 맞게 선택하도록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기업구조조정은 채권은행 주도로 이뤄지고 있는데, 기업 규모 등에 따라 일관성이 없거나 명확한 기준이 제시되지 않는 점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기업구조조정에서 인수합병(M&A)의 주역으로 사모투자펀드(PEF)가 활용되고 있지만, 사모투자펀드에 대한 규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웅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