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임무 사이…‘기막힌 신파극’ 개봉
▲ 북한 직파간첩 혐의로 구속된 원정화 씨. | ||
더욱이 원 씨와 원 씨에게 이용당한 한 육군장교의 사랑은 영화 <쉬리>에서처럼 애틋하기까지 하다. 원 씨의 꾐에 빠져 결국 간첩혐의로 쇠고랑을 찬 황 아무개 대위는 구속되는 순간에도 “그녀를 정말 사랑했었다”고 외쳤다는데 원 씨도 황 대위에 대해서만큼은 남다른 감정을 드러냈다는 후문이다. ‘공작’을 하는 와중에서도 사랑은 싹틀 수 있는 것일까. 숱한 화제를 뿌리고 있는 희대의 여간첩 사건의 뒷얘기들을 모아봤다.
황 아무개 대위(26)가 원정화 씨(34)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2006년 9월이다. 황 대위는 전방의 한 부대에서 안보교육을 담당하는 정훈장교로 재직하고 있었고 탈북자 출신이었던 원 씨가 이곳에 안보강사로 부임하면서 둘의 만남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이후 황 대위와 원 씨는 군부대뿐만 아니라 외부에서도 만남을 이어갔고 얼마 후 애인사이로 발전했다. 원 씨가 여덟 살이나 나이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관계가 가능했던 것은 원 씨가 워낙 적극적으로 황 씨에게 접근했기 때문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둘은 만난 지 불과 두어 달 만에 동거하는 사이로까지 발전했다. 이후 황 대위가 “안보강의를 하는 데 필요하다”고 부탁하는 원 씨의 요구를 들어주면서 군 기밀이 누설되기 시작했다. 이 중에는 군부대 내부 장교들에 대한 인적사항도 포함돼 있었다.
만난 지 약 1년 뒤인 지난 2007년 9월 원 씨는 자신이 ‘남파간첩’이라는 사실을 황 대위에게 고백했다. 하지만 황 대위는 원 씨를 고발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많은 정보를 가져다주며 원 씨를 안심시켰고 이들의 관계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당시 원 씨는 황 대위와 사귀기 3년 전부터 이미 신경안정제 없이 생활할 수 없을 정도로 극도의 불안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남한 정보요원 암살 명령을 어긴 탓에 자신이 되레 암살을 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원 씨는 자신의 집에 자물쇠를 4개나 채워놓고 생활했다고 한다. 황 대위는 “일본이나 제3국으로 도망을 가서 사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는 등 원 씨를 보호하려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지난 7월 15일 원 씨가 ‘북한 국가안전보위부(보위부)의 지령에 따라 군 장교들의 인적 사항을 보고하고 군 안보 강연에서 ‘북한을 찬양·고무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면서 이들의 관계는 끝을 맺고 말았다. 합동수사본부(합수부)의 수사결과 원 씨는 황 대위에게 접근했던 것과 비슷한 수법으로 무려 100여 명의 군장교와 접촉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정보를 빼내기 위해 접촉한 일부 군 장교들과는 성관계를 갖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심지어 원 씨는 황 대위와 애인으로 지내던 초기에도 다른 군부대 소령의 관저에서 동거를 하며 군사정보를 빼냈던 것으로 드러났다.
▲ 여간첩이 연인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대남공작을 벌이는 것을 그린 영화 <쉬리>의 한 장면. | ||
아이러니하게도 ‘중간 탈락자’였던 원 씨가 남파간첩으로 거듭난 것은 바로 이 ‘수배자’ 전력 때문이었다고 한다. 6년간 중국과 북한을 오가며 ‘신출귀몰’한 도피행각을 벌인 원 씨의 대담성을 눈여겨 본 보위부가 그를 공작원으로 포섭하게 됐던 것.
특히 보위부에서 눈여겨봤던 점은 바로 원 씨가 ‘성’을 무기로 삼아 도피행각을 이어갔다는 사실이다. 합동수사본부의 발표에 따르면 북한 보위부에서 원 씨를 남파 공작원으로 삼은 주요한 이유 중 하나가 그의 ‘개방적인 성 관념’ 때문이었다고 한다.
중국에서 탈북자와 남한 사업가 등을 납치하는 일을 해오던 원 씨가 한국에 들어오게 된 것은 지난 2001년 3월 보위부로부터 남한 침투 지령을 받으면서다. 원 씨가 이때 사용한 미끼도 역시 ‘성’. 원 씨는 국제결혼을 목적으로 중국에 온 한국인 근로자 최 아무개 씨를 만나 “임신을 했다”며 서둘러 결혼식을 올리고 국내로 함께 들어왔다. 하지만 이 아이는 다른 사람의 아이였고 한국에 들어온 원 씨는 출산 후 서둘러 최 씨와 이혼했다.
북한의 지령에 따라 원 씨가 ‘타깃’으로 삼은 것은 현역 장교들. 원 씨는 결혼정보회사를 이용해 ‘맞선 상대남’을 ‘현역 장교’로 지정해 놓고 부사관과 장교 등 여러 방면의 군인들과 두터운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이후 원 씨는 탈북자 후원회 팀장에게 자신을 “북한 교도관 출신”이라고 속여 국군 안보강사로 추천받는 데 성공한다. 안보강사 활동은 원 씨에게 날개를 달아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황 대위도 이 과정에서 만났다.
황 대위는 여덟 살이나 많은 원 씨한테 시종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원 씨는 황 대위와 만난 후에도 여러 명의 군인들과 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게 합수부의 수사결과다.
합수부에 붙잡힌 황 대위는 이 같은 정황을 알고도 원 씨를 원망하지 않고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털어놓았다고 한다. 그리고 원 씨도 황 씨에 대해서만큼은 애틋한 모습을 보이며 안타까워했다는 후문이다. 합수부의 한 관계자는 “둘은 정말 사랑하는 사이로 보였다”고 말했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