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서 vs 아래에서’ 굵직한 2인 눈에 띄네
농협금융은 임종룡 전 회장이 금융위원장에 내정되면서 차기 회장 선임 작업에 서두르는 모양새다. 3월 초 회장후보추천위원회가 구성된다면 3월 안에 차기 회장이 선임될 수도 있다. 사진은 농협중앙회 빌딩.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당초 임 전 회장은 농협금융 회장으로서 연임 여부에 초점이 맞춰졌다. 2012년 출범한 농협금융을 안정시켰고 성장시켰으며 무엇보다 재임 중 우리투자증권을 인수하는 성과를 보였기 때문이다. 임기가 불과 4개월밖에 남지 않았지만 농협금융 내부에서 차기 회장 인선 작업을 서두르지 않은 까닭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임 전 회장이 금융위원장에 내정되면서 농협금융이 바빠졌다. 하루라도 빨리 차기 회장을 선임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임 전 회장의 빈자리를 이경섭 농협금융 부사장이 직무대행으로 맡고 있지만 등기임원이 아닌 탓에 좋지 않은 말이 오가고 있는 상황이다.
농협금융은 임 전 회장의 퇴임에 맞춰 부랴부랴 차기 회장 선임 작업에 돌입했다. 임 전 회장의 퇴임식이 있었던 지난 25일 임시이사회를 열고 민상기(서울대 명예교수) 사외이사를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 현정택 전 이사회 의장이 대통령비서실 정책조정수석에 임명되면서 비어 있던 자리를 채웠다.
농협금융은 빠른 시일 내에 이사회를 열어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를 구성, 차기 회장 선임 작업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농협금융 회추위 규정에 따르면 회추위는 5명으로 구성되는데 농협중앙회장이 추천한 1명, 이사회 추천 사외이사 2명, 이사회 추천 외부 전문가 2명이다. 회추위가 구성되면 외부 추천 인사들을 검토한 후 후보를 압축, 면접 등을 통해 최종 후보자를 선정한다. 최종 후보는 회추위 구성인사 5명 중 4명 이상이 찬성해야 결정된다.
지난 2013년 신동규 전 회장이 돌연 사임하고 임종룡 회장을 선임하기까지 25일이 소요된 점을 감안하면 만일 3월 초 회추위가 구성된다면 3월 안에 차기 농협금융 회장이 선임될 수 있다. 농협금융 관계자는 “이번에도 임기 내에 퇴임하는 것이어서 갑작스럽기는 하지만 차기 회장 선임 작업에 차질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회추위가 구성되기도 전인 현재 농협금융 주변에서는 이미 여러 명의 이름이 차기 회장 후보군에 오르고 있다. 이들 가운데 특히 주목받고 있는 인물은 김석동 전 위원장과 김주하 행장이다. 김 전 위원장은 임종룡·신동규 전 회장이 모두 관료 출신이었다는 점에서 농협금융의 차기 회장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2008년 농협경제연구소 대표를 지냈고 농협의 신경(신용사업·경제사업)분리의 윤곽을 마련했다는 점도 김 전 위원장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되고 있다.
2013년 2월 금융위원장직에서 퇴임해 취업에 제한이 없어진 점도 김 전 위원장에게 유리한 면이다. 퇴직공직자 취업제한 연수를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한 ‘개정 공직자윤리법’은 오는 3월 3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농협금융 차기 회장 선임이 3월 중 마무리될 가능성이 큰 만큼 김 전 위원장으로서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김 전 위원장에 대한 반발이 거세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농협중앙회지부(농협노조, 위원장 허권)는 지난 23일 성명서를 통해 “단순한 명망만으로 농협금융을 이끌어 갈 수 없다”며 “졸속적인 신경분리의 단초를 제공한 장본인은 노조가 반대하는 부적격자”라고 분명히 했다. 농협노조가 반대하는 인물이 바로 김 전 위원장으로 보인다. 노조는 또 “농협의 정체성과 역할 등 농협금융에 대한 충분한 식견을 가지고 있는 자를 선정해야 한다”며 “중도하차한 전임 지주회장의 사례와 엄청난 내홍을 겪은 KB금융 사태를 비추어 볼 때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철저한 검증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만간 구성될 회추위에 철저한 검증을 거쳐 차기 농협금융 회장을 선임할 것을 당부했다.
김 전 위원장 본인도 농협금융 회장 자리에 “관심 없다”는 속내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회추위가 구성되기도 전에 의사 표현을 적극적으로 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의견이 적지 않다. 옛 재정경제부 요직과 금융위원장을 거치며 금융권에 ‘관치의 화신’으로 알려져 있는 김 전 위원장이 금융위원회 관리·감독을 받는 금융지주사 회장 자리를 선뜻 받아들이기도 쑥스러운 상황이다.
김 전 위원장 못지않게 김주하 농협은행장의 부상이 눈에 띈다. 농협노조의 지적대로 심각한 내홍을 겪은 KB금융 사태 이후 금융권에는 내부 출신 인사 발탁 분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 팽배해 있다. 윤종규 KB금융 회장을 비롯해 이광구 우리은행장, 박진회 씨티은행장, 김병호 하나은행장, 조용병 신한은행장 등 최근 선임된 금융사 CEO가 전부 내부 출신 인사라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임 전 회장과 함께 우리투자증권 인수를 추진, 성사시킨 점 등도 김 행장에 점수를 주는 요인이다.
하지만 은행장과 지주회장 자리는 엄연히 다르다. 금융권 관계자는 “농협은 비록 공기업은 아니지만 정부 정책자금을 받고 있고 정부 정책업무를 대행하고 있는 공기업적 성격이 짙다”며 “전임 회장들의 면면을 봐도 차기 회장 선임 과정의 관건은 정부 의중”이라고 전했다.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과 김주하 농협은행장이 가장 유력하다는 전망이 많은 가운데 정용근 전 농협중앙회 신용부문 대표, 김태영 전 농협중앙회 부회장, 허경욱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표, 윤용로 전 외환은행장 등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