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 가면 쓰고 뒷주머니 차곡차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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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7년 10월 5일 A 씨(45)는 경찰서에서 온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경찰은 “B 씨(42)가 거기 직원이 맞느냐”며 “부하직원인 B 씨가 한 사건과 연루돼 유치장에 수감됐으니 경찰서에 와 달라”는 내용이었다. A 씨는 평소 부하직원이지만 친동생처럼 여기던 B 씨가 유치장에 있다는 소식에 무작정 경찰서로 향했다.
경찰서에 도착하자 경찰은 다짜고짜 A 씨에게 수갑부터 채웠다. 당황한 A 씨는 경찰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경찰은 “B 씨와 공모해 ‘아버지 유산으로 받은 돈을 내놓지 않으면 중국인 청부 살해업자를 동원해 살해하겠다’고 C 씨(여·53)를 협박해 4000여만 원을 뜯어낸 혐의로 당신을 체포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미 B 씨가 모든 혐의 사실을 시인했고 당신이 범행을 지시했다고 인정했다”고 덧붙였다. C 씨는 A 씨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7년 동안 간병인으로 일했던 여성으로 아버지의 유언대로 A 씨가 유산을 나눠준 인물이다.
A 씨에게는 마른하늘에 날벼락과 같은 말이었다. 자신의 무고를 강력히 주장했지만 경찰은 믿어주지 않았다. A 씨의 강력한 주장에 경찰은 B 씨를 불러 대질심문을 했다. 그러나 친동생처럼 지내던 B 씨마저 웬일인지 “우리 둘이 C 씨를 협박하며 돈을 주지 않으면 살해하겠다고 한 게 맞다”며 A 씨를 몰아세웠다. 지역에서 건실한 사업가로 일하며 한 집안의 장남이었던 A 씨는 졸지에 돈에 눈이 멀어 아버지의 간병인을 공갈 협박한 파렴치범이 됐던 것이다.
A 씨는 억울함을 계속 하소연했지만 B 씨와 C 씨의 증언이 그런 A 씨의 주장을 묵살시켰다. 자칫하면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일 때문에 억울한 옥살이를 해야 할 처지에 내몰린 그를 살린 건 역설적으로 B 씨였다. 자신을 구렁텅이에 밀어 넣었던 사람이 구명줄을 내려 준 것이다.
B 씨는 계속되는 경찰조사에 양심의 가책을 느껴 태도를 바꿨다. 그의 입에서 나온 ‘양심고백’은 충격적이었다. 그에게 지시를 내린 사람은 A 씨가 아니라 오히려 피해자 신분이었던 C 씨였다. B 씨는 “C 씨가 자신에게 다섯 차례에 걸쳐 2130만 원을 건네며 ‘A 씨가 협박한 것처럼 진술하면 당신 사업을 도와주겠다’ ‘당신 고소는 반드시 취하할 테니 걱정하지 마라’고 회유했다”고 진술했다.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결국 B 씨의 증언으로 살인 교사 누명을 썼던 A 씨는 무혐의로 밝혀졌다.
A 씨는 자신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워 파렴치범으로 몰아붙인 C 씨를 지난 4월 무고 및 위증 혐의로 대구지검에 고소했다. 그러나 C 씨는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며 되레 “A 씨가 아버지의 재산을 전부 물려받지 못하고 나하고 나눠 갖게 되자 그 돈에 욕심을 내고 자신을 계속 괴롭히고 있다”며 비난했다. 검찰에서도 B 씨의 증언 말고는 결정적인 증거가 없어 수사에 한동안 진전이 없었다.
그러나 검찰의 끈질긴 수사 덕에 극적으로 증거가 발견됐다. 검찰이 B 씨가 사용하던 예전 휴대전화를 입수한 것이다. 삭제된 문자메시지를 복원하자 B 씨가 경찰에서 진술한 증언이 사실로 드러났다. C 씨가 B 씨에게 범행을 사주한 결정적 증거가 나왔던 것. 휴대전화에는 ‘B 씨 고마워요, 약속한 돈을 줄 테니 계속 수고해 주세요’ 등의 문자메시지에 남아있었다. C 씨는 B 씨에게 자주 휴대전화로 연락하면서 작전 지시를 내렸던 것이다. 검찰은 이러한 증거물을 바탕으로 지난 2일 C 씨를 구속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한편 검찰은 이번 사건을 수사하면서 C 씨가 2001년부터 2007년까지 A 씨 아버지의 간병인으로 일하면서 20억 원대에 이르는 재산을 A 씨 몰래 빼돌린 것으로 보고 있다. C 씨는 치매에 걸린 A 씨의 아버지와 사실상 동거 생활을 하며 간병을 했다. 검찰에 따르면 C 씨는 A 씨 아버지와 함께 생활을 하며 부동산을 명의신탁 받고 각종 임대수입과 아파트 판매금 등을 자신과 가족들의 통장으로 이체시키는 수법으로 재산을 가로챘다고 한다. 검찰은 C 씨가 A 씨의 아버지가 치매에 걸린 것을 이용해 재산을 자기마음대로 주무르기 시작했던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노인의 간병 때문에 고용됐던 C 씨가 간병보다는 노인의 재산에 눈독을 들였던 것이다.
검찰은 또 C 씨가 A 씨 아버지가 치매 판정을 받은 2003년 10월 대구광역시 중구 동성로의 2층 상가(시가 10억 원 상당) 지분 절반을 유언으로 공증받은 사실에 대해서도 의심하고 있다. A 씨 아버지가 온전한 정신 상태에서 C 씨에게 유산을 주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간병인으로 한 달에 120만 원을 받았다는 C 씨가 A 씨의 아버지 사망 후에 매달 1000만 원 이상을 쓰며 호화생활을 했다”며 “그러나 C 씨가 치밀하게 준비해 재산을 빼돌려 증거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A 씨는 C 씨가 아버지의 재산을 빼돌린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그저 아버지의 유언대로 7년 동안 간병인이었던 C 씨에게 유산을 물려주었던 것이다. 그만큼 치밀한 작전을 통해 A 씨 아버지의 재산을 뺏은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C 씨는 자신이 빼돌린 재산을 확실히 지키기 위해 A 씨에게 살인 교사 누명을 씌우면서까지 완전 범죄를 꿈꾸었다. 하지만 결국 C 씨의 잔혹한 계획은 함께 범행을 꾸미던 B 씨의 양심고백으로 낱낱이 밝혀졌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그냥 지나갈 수도 있는 사안이었는데 C 씨의 욕심이 화를 불렀다”며 혀를 찼다.
대구=이윤구 기자 trus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