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간부 주물러 금고문 ‘활짝’
이 같은 실상은 지난달 대출브로커 중 한 명이 검찰에 검거되면서 드러났다. 이 브로커는 제2 금융권의 은행뿐만 아니라 유명 시중은행까지 주물러온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은행 임직원들을 금품로비로 엮은 뒤 은행금고를 제멋대로 열어젖힌 대출브로커를 취재했다.
지난 6월 18일 인천지검 특수부에 유 아무개 씨(41)가 검거됐다. 검찰 수사결과 유 씨는 그동안 수십 차례에 걸쳐 은행권 인사들에게 대출 로비를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또 유 씨는 대출을 알선해준 대가로 의뢰인들로부터 총 3억 1000만여 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 씨가 구속되자 그와 연루된 은행권 인사들이 줄줄이 검거됐다. 처음 검찰에 체포된 이는 인천지역에 있는 A 저축은행의 대출총괄본부장을 지낸 조 아무개 씨(50). 조 씨는 2005년 11월 유 씨의 청탁을 받고 박 아무개 씨에게 경기도 김포시 소재의 토지를 담보로 28억 원의 대출을 받게 해준 뒤, 그 대가로 5250만 원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박 씨 소유 토지의 실제 감정가는 10억 원에 불과했지만 유 씨가 감정평가인에게 로비를 해 높게 책정받았다. 이와 관련 당시 이 토지를 감정해준 B 사(감정평가법인)의 지사장 석 아무개 씨(55)가 4000만여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유 씨의 로비 문어발은 제1 금융권 인사들에게도 뻗어 있었다. 지난달 20일 시중은행 C 사의 지점장 전 아무개 씨(50)와 D 사의 임직원 등 3명이 유 씨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검찰에 검거됐다.
검찰에 따르면 전 씨는 2006년 7월 “4억 원의 담보대출을 성사시켜 달라”는 유 씨의 부탁을 받고 편의를 제공, 500만 원의 사례비를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후 세 차례에 걸쳐 총 16억 8000만여 원의 담보대출을 해주면서 사례비로 1800만 원을 받고 유흥주점에서 약 1400만 원어치의 향응을 제공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전 씨는 사례비로 받은 돈을 은행 팀장 등과 함께 나눠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D 은행의 임직원 역시 유 씨로부터 대출 청탁을 받고 2600만여 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현재까지 대출브로커 유 씨와 연루돼 검찰에 기소된 이는 모두 7명이다. 그러나 검찰은 “아직 수사 중인 사안이어서 더 많은 은행 인사들이 연루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검찰은 이번 유 씨 사건은 빙산의 일각일 뿐 많은 대출브로커가 대출 업계에서 암약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대출브로커는 대출금을 올려받기 위해 감정평가사와 은행임직원 등에게 필연적으로 금품을 제공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은행이 부실대출을 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대출브로커 때문에 은행이 도산한 사례도 있다. 분당지역에 있는 자산 1조 원대의 E 저축은행은 2007년 12월 부채비율이 급증해 금감원의 감사를 받았고 지난해 8월 최종 파산했다. 수원지검 성남지청의 수사결과 이 은행이 도산을 맞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다름 아닌 대출브로커와 관련된 부실대출이었다.
검찰에 따르면 E 저축은행의 대출브로커 역할을 한 이는 이 은행의 주주였던 Y 씨. Y 씨는 2005년경부터 친분이 있는 중소기업들과 E 은행 대표이사, 감사 등을 연결시켜 주면서 대출브로커 역할을 해왔다고 한다. 그러다 은행이 부실화되면서 대출이 점점 어려워지자 Y 씨는 2007년 6월 아예 자신이 E 저축은행의 대표이사가 됐고, 이후 대출을 심사하는 임원을 모두 자기 사람들로 교체했다.
이후는 ‘참상’은 보나마나였다. Y 씨와 그 지인들은 부실대출을 남발했고, Y 씨도 대출과 관련 수십억 원을 받아 챙긴 것으로 밝혀졌다. 당연히 E 은행의 부실채권은 급격하게 늘어났다. 이 때문에 예금보험공사가 4000억 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했음에도 결국 도산하고 말았다. 예금보험공사와 금융감독위원회의 고발에 따라 수사한 검찰은 지난달 22일 대표이사 Y 씨 등 무려 43명을 검거해 이 가운데 11명을 구속하고 30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런 사태가 발생하자 국가 감독기관의 허술한 관리·감독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검찰과 금융권 관계자들은 “E 은행의 부실대출은 한두 해에 걸쳐 일어난 것이 아니었데도 금융감독원은 이를 제대로 감사하지 못해 피해가 커졌다”고 한목소리로 질타했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