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은 했는데 고의는 아니다 ‘혜진이가 기가 막혀’
당시 A 일보는 사법부의 형사소송법 개정 방안 중 참고인 출석의무제(강제소환)와 관련해 ‘이 제도가 있었다면 안양 초등생 살인 사건을 막았을 수도 있었다’고 보도했다. 기사에서 정 씨가 등장하는 부분을 요약하자면 ‘안양 초등생 살해사건이 발생하기 전 정 씨가 살인과 성폭행을 저질렀지만 성폭행 피해자 B 씨는 신변 노출을 꺼려 잠적했다. 만약 B 씨가 경찰 조사를 받고 이로 인해 정 씨가 사법처리됐다면 초등생 살인사건을 막을 수도 있었다’는 내용이다.
이 기사에서 정 씨가 문제 삼고 있는 부분은 ‘2004년 7월 전화방 도우미를 살해, 야산에 암매장한 뒤 이듬해 또 다른 여성 B 씨를 성폭행했다’는 내용이다. 정 씨는 소장에서 당시 전화방 도우미 살해사건은 단순 우발적 상해치사사건으로, 고의적 계획적 살인이 아니며 B 씨를 성폭행한 사실도 없기 때문에 A 일보가 사실과 다른 내용을 기사로 써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작 문제는 그가 ‘(B 씨 성폭행 후) 7개월 뒤 안양시에서 초등생 둘을 납치해 살해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마저도 “사실이 아니다”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정 씨는 왜 지금에 와서 갑작스럽게 자신의 범행 사실을 담은 기사에 대해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한 것일까. 이미 정 씨의 범행과 관련된 내용들은 A 일보 기사에 앞서 여러 매체들을 통해 수차례 보도된 바 있다. 이는 정 씨가 여전히 ‘법정투쟁’의 끈을 놓지 않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09년 2월 29일 대법원은 정 씨에 대해 사형을 확정했지만 정 씨는 여전히 이에 불복하고 있다. 정 씨는 소장에서 “안양 초등생 살해사건에 대해 재심을 청구할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한편 검찰 관계자는 “과거 존속살인죄로 복역하며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범인이 자서전 출간과 관련된 명예훼손을 한 적은 있었다”며 “하지만 어린이를 납치·살해해 국민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줬던 강력살해범이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한 것은 처음”이라고 전했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