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재보선에 ‘종북 불똥’ 튈라…
마크 리퍼트 주한 미대사가 지난 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민화협 주최 초청 강연에 참석했다가 피습을 당했다. 연합뉴스
가해자는 우리마당 대표 김기종 씨. 그는 24㎝가량의 과도를 사용해 대사의 손가락 인대와 신경이 끊어지는 등의 중상을 입힌 혐의로 현장에서 체포됐다. 리퍼트 대사가 피 묻은 얼굴을 감싸고 차로 이동하는 장면은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김 씨가 아무 제재 없이 리퍼트 대사에게 다가가 상해를 입힐 수 있었다는 사실은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 경찰 국가보안법 위반 여부 검토
사건 다음날인 6일 경찰은 김 씨에 대해 살인미수와 외국사절 폭행, 업무방해 등의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여기에 경찰은 김 씨가 북한을 수차례 왕래한 전력과 김정일 분향소 설치 등을 시도한 전력이 확인됐다며 국가보안법 위반 여부를 검토하기로 했다. 검찰도 공안 수사 전반을 지휘하는 이상호 서울중앙지검 2차장을 팀장으로 특별수사팀을 구성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중동 지역을 순방중인 박근혜 대통령도 해당 사건에 대해 “자유민주주의와 평화를 추구하는 우리나라에서 백주 대낮에 미국 대사가 테러를 당했다는 것은 우리 정부와 국민에 충격적이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이 사람이 여러 번에 걸쳐 이런 일을 했기 때문에 과연 어떤 목적에서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 단독으로 했는지 배후가 있는지 모든 일을 철저히 밝혀서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씨가 진보 성향의 시민단체에서 활동해온 사실에 야당은 바짝 긴장하는 모습이다. 당내에서는 지난해 12월 통합진보당 해산으로 인한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또 종북 논란에 시달릴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김 씨에 대해 “극단적 민족주의자”라며 조기 차단에 나서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 경찰이 해당 사건의 조직 개입을 입증하기도 전에 언론에 국가보안법 적용 가능성을 언급한 것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 출신의 한 대북 전문가는 “개성에 다녀온 것만으로는 아직 종북세력으로 규정할 수 없다. 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는데 시작부터 국가보안법을 들고 나오는 것은 우려스럽다. 세월호 사건 이후 힘이 빠진 박근혜 정부가 다시 국정 운영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지만 만약 조사 결과 배후세력이 없을 경우 공안몰이의 역풍을 맞게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외통위원인 한 새정치연합 의원은 “미국도 개인의 돌발행동으로 보고 있는데 정부에서 조직·종북 몰이와 연결 지으면 ‘테러’가 된다. 김 씨의 경우 보수와 진보 성향 모두 지닌 인물로 진보 인사로 보기는 어렵다. 국내 정치에 있어 종북 몰이가 유리할 수 있지만 외교적으로 테러임을 인정하는 것은 결국 국가적으로 마이너스 요인이 된다. 조사가 끝나기도 전에 테러를 인정하는 것은 조심스러웠어야 했다”고 평가했다.
가해자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가 “전쟁훈련 반대한다. 키 리졸브 중단하라”고 외치며 병원으로 이송되는 모습. 연합뉴스
# 미국 측 개인의 돌발행동으로 여겨
이번 사건으로 한미관계가 크게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 씨가 한미군사연합훈련을 반대하며 리퍼트 대사를 피습했지만 미국 측은 이를 개인의 돌발 행동으로 보고 “한미 관계는 공고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리퍼트 대사 또한 “이번 일에도 한미 동맹은 강력하고, 이런 무차별 공격에 결코 약화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전문가들도 이번 사건이 한미관계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일요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미국 측 전문가들이 하고 있는 이야기가 맞다고 본다. 조직이 아닌 매우 비정상적인 사람이 저지른 사건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의 안전성 문제에 대해서는 대외적으로 ‘빨간불’이 켜진 상황이다. 김 씨는 초청장도 없이 행사장에 들어왔고 경호원의 제지를 받지 않고 리퍼트 대사에게 접근해 부실 경호 논란이 일었다. 경찰은 대사관 측의 요청이 없다면 내부 경호를 할 수 없다. 당시에도 경찰은 외부 경호만 수행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행사를 주최한 홍사덕 민화협 대표 상임의장이 사퇴하고 정부가 경호 인력을 강화했지만 치안강국으로 알려진 국가 이미지는 타격을 입었다.
미국은 지난 2012년 9월 리비아 벵가지의 미국 영사관에서 무장 시위대의 공격으로 크리스토퍼 스티븐스 대사 등 4명을 잃었다. 이는 미국대사가 해외에서 공격을 당해 사망한 6번째 사례로 1979년 이후 33년 만에 발생해 충격을 안겼다. 김연철 교수는 “외교에 문제는 없다지만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는 중요하다. 이번 사건으로 미국 국민들이 봤을 때 한국이 더 이상 안전한 나라가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외국인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 청문회에 미칠 영향은
이번 사건으로 인한 종북 논란과 보안 강화 필요성에 대한 분위기가 청문회를 앞둔 홍용표 통일부 장관 후보자와 이병호 국정원장 후보자에게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사다. 이병호 후보자는 과거 언론에 극보수 성향의 칼럼을 발표해 야당의 지적을 받고 있다. 이 후보자가 국정원 내의 대공·국내정치 파트를 강화해야 한다는 기조를 보이면서 보안 강화 요구와 맞물려 힘이 쏠릴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국정원장 후보자 청문회를 준비하고 있는 한 새정치연합 의원은 “통일부 장관과 국정원장 후보자 청문회가 곧 시작된다. 여당이 이번 사건을 가지고 내정자들에게 멍석을 깔아주지 않겠나. 청문회가 종북이나 보안 등의 주제로 공방이 벌어질 수 있다. 그것을 경계하고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고심 중이다. 이 돌발 사건에 (청문회에 끼칠 영향 때문에) 조심스러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다영 기자 lata13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