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시 그 이상의 마력 내가 바로 원조 ‘잇걸’
키 161㎝의 통통녀 스타일인 클라라 보우. 그는 전형적인 미인은 아니지만 영화 <잇>을 통해 “바라보기만 해도 즐거워지는 배우”라는 평가를 받았다.
‘잇’은 단순한 섹스어필을 의미하지 않았다. 새로운 세대의 여성상을 함축하는 단어였다. ‘잇’(It)이 ‘그것’이라는 대명사를 넘어 새로운 의미를 지니기 시작한 건 20세기 초. 영국의 상류층에서 가끔씩 이 의미를 사용했다. <정글북>으로 유명한 작가 러디야드 키플링은 <미세스 배써스트>라는 단편 소설에서 ‘잇’이라는 단어에 새로운 의미를 덧씌우기 시작했다. “즉 ‘잇’은 아름다움도, 어떤 미덕도 아니다. ‘잇’은 단지 ‘잇’일 뿐이다. ‘잇’을 가진 여성은, 거리를 걸어가는 모습만으로도 남자의 기억 속에 머문다.” 스타일리시한 젊은 여성이 지닌,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섹시한 매력 정도? ‘잇’은 그런 의미로 시작한다.
‘잇’을 좀 더 대중화시킨 사람은 어느 자매였다. ‘루실’로 통했던 패션 디자이너 더프-고든 부인, 루시. 그리고 그녀의 동생인 영국의 소설가 엘리노어 글린. 먼저 루실은 패션에서 ‘잇걸’을 유통시켰다. 런던과 파리와 뉴욕에 살롱을 경영하던 루실은 런웨이의 창시자로 일컬어지는 인물이다. 자신의 패션 컬렉션을 조명이나 음악 같은 연극적 장치와 더불어 대중에게 선보였던 최초의 인물이었던 것. 란제리 스타일을 통해 섹슈얼한 의상으로 어필하기도 했다. 그녀는 무성영화 시절 여배우들의 트렌드세터로도 유명했는데 1917년 <하퍼스 바자>에 칼럼을 쓰면서 이런 표현을 한다. “나는 파리의 신상 드레스를 입은, 매우 여성스러운 여성들을 보았다. 그들은 자신이 ‘잇’이라 느끼며 매우 행복감을 느꼈다.”
동생인 엘리노어 글린은 <코스모폴리탄>에 두 번에 걸쳐 <잇>이라는 소설을 연재하며 ‘잇’의 의미를 더욱 정교화했다. ‘잇’은 소수의 여성만 지니고 있는 매력이라는 것. ‘잇’을 지니고 있다면 상대방을 정복할 수 있으며, ‘잇’은 육체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면도 포함된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었다. 소설 <잇>은 곧 각색되었고, 클라라 보우는 이 영화에 출연하며 일약 ‘잇 걸’로 부상한다. 백화점 점원이 사장을 유혹하는 내용인 <잇>에서 보우는 순진한 처녀와 팜파탈을 섞은 캐릭터를 보여준다. 그리고 보우 자신은 ‘잇’의 의미에 대해 잘 몰랐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이 영화는 당대 할리우드의 흥행 기록을 갈아치웠으며, 보우는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즐거워지는 배우”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녀가 ‘잇’의 의미를 깨달은 건 프로모션 과정이었다. 작가인 글린은 보우가 할리우드에서 희귀하게 ‘잇’을 지녔다며 이렇게 말했다. “운 좋게 ‘잇’을 지닌 사람은 자석처럼 사람을 끌어당긴다. ‘잇’은 순수한 활기의 특성이다. ‘잇’이 있는 사람은 자기 확신으로 넘치며 타인에게 영향 받지 않는다.”
<아티스트> 주인공 ‘페피’와 만화캐릭터 ‘베티 붑’은 보우를 모델로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잇걸’의 사생활은 어땠을까? 그녀의 삶 자체는 ‘잇걸’과 거리가 멀었다. 그녀는 부모에게 버림 받았고, 연인들과의 관계도 오래 지속되지 못했으며, 절친에게 배신당했다. 대중은 그녀에게 등 돌렸으며, 30대에 은퇴한 그는 40대부터 가족과 떨어져 외로운 은둔자로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왜 ‘잇걸’의 삶은 그토록 황폐했을까? 다음 주에 그 이야기가 이어진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