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법이 없는 게 비법…방향 예측 않고 끝까지 기다리려 했다”
이 해설위원도 스스로 "페널티킥 선방에 자신감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90년대 후반에 잠시 K리그에 특이한 로컬룰이 있었다"며 "무승부가 나오는 것이 흥미가 떨어진다고 해서 정규리그 중에도 무승부 없이 승부차기를 진행하는 제도가 도입됐다. 승부차기라는 것이 1년에 1~2번 하면 많이 하는 건데 그땐 수시로 했다(웃음). 덕분에 내 능력을 더 인정받을 수 있었다. 승부차기로 이겨서 승리수당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현역시절 출간한 자서전에서 "승부차기 방어는 나만의 비법이 있다. 현재는 밝힐 수 없다"는 내용을 전한 바 있다. 현역에서 물러난 지 10여 년, 프로 구단에서 골키퍼 코치직도 내려놓은 상황, 그에게 오랜 기간 숨겨온 비법을 물었다.
이 해설위원은 "내가 책에 그런 말을 썼나"라며 웃으면서도 "비법이 없는 것이 비법이다"라고 말했다. 대회 주요 길목마다 팀을 승리로 이끈 페널티킥 선방에 특별한 기술은 없다는 것이다.
"막는 방법은 따로 없다. 나는 방향을 예측해서 미리 몸을 던지지 않고 최대한 기다리려고 했다. 특히 승부차기의 경우 다섯 번의 킥을 다 막을 필요는 없다. 1~2개만 막아도 이기는 것 아닌가. 키커가 미리 방향을 정하고 정확히 구석으로 차는 슈팅은 못 막는다. 양쪽 끝으로 절묘하게 가는 슈팅에는 욕심을 내지 않는다. 성향상 골키퍼의 움직임을 보면서 그에 따라 맞춰서 차는 키커들이 있다. 이들을 상대로 절대 움직이지 않는 것이 내 비법이다. 미리 움직이지 않으면 키커가 당황하고 내가 막을 수 있는 범위 내로 공이 오면 막아내는 것이다."
즉흥적으로 상대의 선택에 따라 움직이는 유형이기에 그간의 데이터도 그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어차피 나는 '보고 막는 스타일'이지 않나. 때론 코치님들이 상대 키커 방향을 미리 조언해주기도 하는데 나는 '알려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내가 코치를 하면서도 선수 판단에 맡긴다"고 말했다.
11m 앞에서 키커와 일 대 일 대결, 이운재 해설위원은 우직하게 기다리는 골키퍼였으나 때론 미리 움직이는 '기술'을 쓰기도 했다. 그는 "속임수를 쓸 때가 아주 가끔 있었다. 2004년 부산에서 독일과 친선전에서 페널티킥이 나왔을 때다"라며 "미리 한쪽으로 움직이는 척하면서 킥을 반대로 유도하고 다시 역으로 움직여 막아냈다. 자주 썼던 기술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승부차기 상황에서 때론 골키퍼가 키커로 나서 흥미를 끌기도 한다. 이운재 해설위원은 선수시절 킥력도 최상위권으로 평가받던 골키퍼였다. 키커에 대한 욕심은 없었을까. 그는 "전혀 차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많은 승부차기를 해봤는데 딱 한번 키커를 했던 것 같다. 내가 상대하기 싫어하는 스타일대로 오른쪽 구석만 노리고 강하게 차서 넣었다. 나는 막는 것만 좋아했다"며 웃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