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의 직격탄에 우왕좌왕 눈치보기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김영란법에 대해 조목조목 따지자 정치권이 술렁이는 분위기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국회가 만든 김영란법에 대해 조목조목 따졌다. 김 전 위원장은 지난 10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해충돌방지제도 조항이 제외된 부분을 지적했다. 이해충돌방지제도는 공직자의 지위와 권한을 이용해 자신이나 가족들의 이익을 도모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서로 관계된 일을 피하도록 하는 규정이다. 김 전 위원장은 또 제3자의 부정청탁을 방지하는 조항에서 선출직 공직자들을 예외로 한 부분에 대해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무원들을 브로커처럼 활용할 수 있도록 용인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원조’가 국회에 직격탄을 날리자 정치권은 ‘터질 것이 터졌다’는 분위기다. 한 정무위 소속 야당 의원실 관계자는 “김영란법이 정무위에서 논의되고 있을 때도 의원들 간 논란이 많았다. 그런데 여야 간사가 합의하고 오니 어쩔 수 없이 끌려간 부분이 있었다. 통과되면 부수적 법안으로 보완하자는 분위기로 흘러갔다”고 털어놨다. 이는 법사위원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상민 법사위원장은 정무위 안이 위헌 여지가 있다며 원안 통과를 주장했지만 여의치 않자 “자괴감이 든다”며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 위원장은 <일요신문>과 만나 “마치 이것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같은 것이었다. 다들 겉으로 말은 못하지만 나를 개인적으로 보면 법안을 막아야 한다고 말하는 의원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김영란법이 통과되자마자 위헌 논란이 일고 김영란 전 위원장마저 국회 법안을 지적하자 국회의원들은 후속 대책을 마련하는 모습이다. 최근 정무위에서는 정부가 최종 결정을 내린 법에 대해 다시 이해충돌방지법을 논의할 예정이다. 정무위 소속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김영란법을 빌미로 검경이 수사권을 남용하게 될 부작용을 우려해 검찰중립화 법안을 준비 중이다. 이상민 법사위원장의 경우 각종 토론회와 민간단체를 제재대상에서 제외하는 형식의 법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해당 법에 대해 우려했던 의원들도 여론의 힘을 얻고 김영란법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강하게 낼 것으로 예상된다. 김용태 새누리당 정무위 간사 측은 이해충돌방지법 재논의에 대해 “이해충돌방지법안을 낸다고 한 적이 없다. 다만 법이 정부에서 결정되면 다시 그 부분을 논의해보는 것 정도다. 김 의원은 초반부터 김영란법의 위헌 소지를 기고문 등을 통해 강하게 제기했다. 특히 이해충돌방지법은 일반 국민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의 야당 의원실 관계자도 “이해충돌방지법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지닌 야당 의원들이 많다. 만약 다시 법안소위에서 논의된다면 이번에는 ‘세게’ 부딪힐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처럼 국회의원들의 개별 활동이 벌어지면서 자칫 김영란법이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김상진 건국대 행정대학원 겸임교수는 “부정부패 방지법안이 강화돼야 하는 것이 맞다. 해당 법에 속한 이해집단이 있기 때문에 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해당 법이 발전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정치인들이 여론과 언론에 휘둘려 법안을 후퇴시키거나 본래 취지를 훼손된다면 또 역풍을 맞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영란법에 논란이 일자 정치권의 책임회피 비판도 나오고 있다. 지난 2월 김영란법이 법사위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있자 정의화 국회의장은 ‘8인 협의체’를 열어 논의할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여야 원내대표는 “법사위에서 권한과 책임을 갖고 논의할 것”을 요구하면서도 법안 최종 결정에 있어서는 주도적으로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 또한 김영란법의 조속한 처리를 압박했지만 국회에서 논의토록 했다.
김상진 교수는 “김영란법에 대한 역풍은 여야 할 것 없이 받게 될 것이다. 구체적으로 지도부나 정부는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구멍은 많다. 법안추진 과정을 보면 박 대통령은 국회에, 지도부는 상임위에 책임을 넘길 수 있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김다영 기자 lata13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