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6일 저녁 8시30분, 강남의 유명백화점 3층 영캐쥬얼 매장 안. 막 마감이 끝난 후 브랜드별 당일 매출이 전산으로 뽑혀 나왔다. 4개 브랜드만 간신히 하루 매출 2백만원을 넘겼다. 기획행사를 하는 브랜드들도 하루 매출 1백만원을 채 넘기지 못했고 나머지 대다수 브랜드들은 겨우 몇만원에서 몇십만원 정도. 매출액이 제로인 곳도 있었다.
이 백화점은 8월1일부터 영업시간을 기존 8시에서 30분이나 늘이고 각종 이벤트를 진행하면서 매출증대를 위해 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아무리 8월이 비수기라지만, 소위 대한민국 상류층이 가장 애용하는 백화점도 이 지경이면 여타 상권과 여타 업종은 죽었다는 얘기다. 경기불황이 아니라 경제실종이다.
2001년 1분기 이래 28개월 만에 제조업체 체감경기가 최악이란다. 백화점의 유명 의류브랜드들이 하루에도 몇 개씩 간판을 내리고 고별전을 하고 있으며, 그 참에 일시적으로 비게 된 매장들은 여타 브랜드들이 세일전으로 땜질한다. 세일에 세일이 꼬리를 무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 날 저녁 강북의 유명 쇼핑몰을 운영하는 사장님을 만났다. “우리 유통업도 정당을 하나 만들든지 전국구의원 1명이라도 배출해야 합니다. 권력을 가져야 합니다. 현대자동차가 주 5일제 근무 타결로 남자는 연간 1백65일, 여자는 생리휴가를 포함해 1백77일을 논다고요. 세계 최고 수준이라면서요.
그러면서도 생산직의 평균 임금이 5천만원을 넘는다고요. 1년에 절반을 놀면서도요.
백화점이나 쇼핑몰은 한 달에 한 번 휴일입니다. 매일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12시간 근무입니다. 더구나 최근 매출이 급감하자 인원을 줄여야 하는 판이니 개인당 돌아가는 근무량은 훨씬 고되어진 셈이죠. 판매직원을 구할 수가 없어요. 누가 3D업종을 합니까. 궁여지책으로 사회경력도 없는 주부사원들을 많이 씁니다.
그러니 백화점에선 교육을 시켜야 하는데 교육비가 있어야죠. 우리 유통업도 죽든 살든 차라리 대통령 명으로 주 5일 근무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 다 함께 죽는 게 나아요. 그래야 정신들 차립니다.”
박용성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7일 민주당 정대철 대표를 찾아갔다고 한다. “대한민국은 뭘 먹고 살라는 말입니까. 현대차처럼 주 5일제 도입하면 보따리 싸고 해외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공갈’이 아닙니다. 요즘 경제위기라고 하는데 지금은 제조업 위깁니다. 현대차 임·단협의 부담은 전부 협력업체로 넘어갈 것이고 제조업은 살 길이 없습니다.”
그의 절규는 이미 의류업계에선 현실이다. 한국에서 옷을 만들어선 제조단가를 맞춰낼 방법이 없다. 유통업은 죽는 소리를 하고,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자니 제조업체는 가격을 내려야 하고, 인건비는 올라갔는데 휴일근무를 시킨다는 것은 꿈도 못 꾸고. 소비자들의 구매력은 바닥이고…. 한국에서 제조업을 하면 미친놈이다.
이판에 패션? 웃기는 소리다. 그래도 외국 유명브랜드의 의류매출액은 늘었다니, 비정상도 한참 비정상인 나라다. 서령창작 대표
온라인 기사 ( 2024.12.13 14: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