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기·체력 앞세운 ‘초단팀’의 대반란
인제 하늘내린이 4월 1일 열린 한국여자바둑리그 챔피언결정전에서 부산 삼미건설을 누르고 원년 챔프에 올랐다. 왼쪽부터 헤이자자, 오유진, 현미진 감독, 이영주, 박태희.
하늘내린의 우승을 점친 사람은 많지 않았다. 3월 16일 리그 개막부터 중반까지 관심의 초점은 최정과 위즈잉이 포진한 ‘서울 부광탁스’였고, 부광탁스가 어느 정도 독주하느냐, 과연 어느 팀이 그런 부광탁스를 견제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중반에 접어들면서 순위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위즈잉이 범타에 머물며 부광탁스의 화력이 침묵을 지키자 리그의 양상은 7개 팀이 서로 물고 물리는 일대 혼전, 하루하루 1승 차이로 선두와 꼴찌가 뒤바뀌는 롤러코스터 속에서 선수들도 팬들도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3월 23일 안갯속의 백병전이 끝나고 정규리그 순위가 드러났다. 1. 부산 삼미건설 2. 포항 포스코켐텍 3. 인제 하늘내린 4. 경주 이사금 5. 서귀포 칠십리 6. 부안 곰소소금 7. 서울 부광탁스의 순이었다.
리그 종료 후 사흘을 쉬고 곧바로 포스트시즌이 시작되었다. 3월 26일 포스코켐텍과 하늘내린의 플레이오프 3번기 1차전. 인제가 3 대 0으로 누르고 기세를 올렸다. 대국순번에 따라 이영주-오유진-박태희가 각각 김채영-조혜연-왕천싱을 이겼다. 27일 2차전. 포스코켐텍이 3 대 0으로 설욕했다. 왕천싱-조혜연-김채영이 이영주-오유진-박태희를 꺾었다. 28일 3차전. 인제가 다시 3 대 0으로 포스코켐텍을 완봉했다. 오유진-박태희-헤이자자가 김채영-조혜연-왕천싱을 물리쳤다. 1-2-3차전이 모두 3 대 0이었다.
하루를 쉬고 3월 30일부터 챔피언결정전. 정규리그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강행군이었다. 1차전. 부산이 인제를 3 대 0으로 일축했다. 박지연-박지은과 후보선수 강다정이 오유진-헤이자자-박태희를 제압했다. 아무래도 정규리그 1위의 프리미엄이 작용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속단이었다. 31일 2차전. 이영주-오유진-박태희가 박지연-박지은-박소현에게 이겼다. 그리고 4월 1일의 최종결승전. 여기서 인제의 이영주-오유진-박태희가 부산의 박지연-강다정-박지은을 모두 물리치고 현미진 감독을 헹가래쳤다.
챔피언 결정 1-2-3차전도 모두 3 대 0이다. 플레이오프 1-2-3차전까지 합하면 6연속 3 대 0 승부다. 이것도 깨지기 힘든 기록이거니와 포스트시즌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분위기, 흐름, 기세, ‘뭔가의 쏠림’, 그런 반외의 것들이 승부를 좌우했다는 얘기다. 또 하나, 정규리그 후 휴식도 없이 6일간이나 계속된 대국을 감당할 수 있는 체력도 중요한 변수였다. 하늘내린은 ‘초단 팀’이었다. 선수 선발 당시 1지명 오유진, 2지명 박태희, 3지명 이영주가 모두 초단이었다. 평균 연령이 스무 살, 다른 팀들과 비교해 큰 차이는 아니고, 한두 살 많고 적고가 얼마나 영향이 있겠느냐는 소리도 있지만, 아무튼 제일 젊다. 외국인 선수 헤이자자만 6단인데 1994년생, 팀의 평균 연령과 같았다. 오유진은 3월 18일 2단으로 승단했다.
정규리그에서는 오유진-박태희 두 초단이 팀을 이끌면서 공포의 쌍끌이로 불렸다. 오유진 10승2패로 다승왕을 차지했고 박태희도 7승5패로 제몫 이상을 했다. 이영주는 1승5패로 부진했으나 포스트시즌에서는 심기일전, 네 번 출전해 3승을 올려 우승의 주역으로 부족함이 없었다. 특히 챔피언시리즈 2-3차전에서 박지연을 거푸 꺾은 것이 하이라이트였다. 박지연은 여자 서열 2위인 부산의 주포이고, 이영주는 리그에서 박지연에게 2패를 당했었는데, 현 감독은 이영주의 컨디션을 체크하는 한편 박지연의 순번을 예상하고 기세가 살아난 이영주를 계속 박지연에게 붙여 망외의 결실을 거두었던 것. 이영주의 대 박지연 2연승은 현미진 감독의 오더 작전과 그 오더를 훈수한 현 감독의 남편 김영삼 9단(바둑리그 정관장 팀 감독)의 외조가 빛을 발한 장면이기도 했다. 오유진과 박태희는 6전4승2패, 헤이자자는 2전1승1패. 김 9단이 웃었다. “정규리그 때는 내 말을 하나도 안 듣더니… 내 말 들으니까 좋잖아…·^^”
간단한 자축연 자리에서 이영주는 “리그에서 성적이 안 좋아 고민이 많았다. 나이도 내가 제일 많은데, 팀에 도움은 못 될지언정 누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포스트시즌에서 조금 역할을 한 것 같아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