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람 거셀수록 집토끼 단속부터”
지난 3월 31일 ‘새줌마 우리 동네를 부탁해!’ 공약발표회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안상수 인천 서구·강화을 후보의 앞치마 끈을 매어주고 있다. 아래는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가 4월 1일 광주 남구 빛고을 노인건강타운을 찾아 광주서구을 조영택 후보와 함께 점심식사를 배식하고 있다. 임준선·이종현 기자
“박근혜 대통령은 레임덕이 아니라 데드덕이다.”
한 새정치민주연합 재선 의원이 성완종 게이트에 대해 한 말이다. 그는 “성완종 게이트는 선거에 영향을 미칠 중요한 요소다. 재·보궐뿐 아니라 총·대선까지 (영향이) 간다”고 단언했다. 데드덕(Dead duck)은 레임덕보다 더 심각한 권력공백 현상을 뜻한다. 정치권에서는 지난해 세월호 참사와 청와대 십상시 파문을 거치며 이미 박근혜 정권에 레임덕이 찾아왔다는 시각이 많았다.
여기에 최근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사망하기 전 김기춘 허태열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이완구 국무총리 등 친박 핵심들을 언급하면서 여권이 발칵 뒤집혔다. 로비리스트 명단에 이름을 올린 이완구 국무총리가 성 전 회장과 관련된 증언을 번복하면서 직을 내려놔야한다는 비판론도 나오고 있다. 성완종 게이트가 여론을 악화시키면 새누리당 내에서도 정권과 선긋기 움직임을 보일 가능성이 있고 이는 곧 당의 분열로 이어질 수 있다.
얼마 남지 않은 재·보궐 선거 판도도 요동치기 시작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서치뷰>가 성완종 게이트 이후인 지난 11~12일 4월 재·보궐 선거 관련 여론 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이전까지 여당 후보가 강세였던 지역이 야당 후보와 오차범위내로 좁혀지기도 했다. 서울 관악을 지역에서는 오신환 새누리당 후보가 37.3%를, 정태호 새정치민주연합 후보가 29.0%, 정동영 무소속 후보가 23.5%를 얻었다. 경기도 성남 중원 지역도 신상진 새누리당 후보가 43.4%, 정환석 새정치연합 후보가 38.3%를 기록해 오차범위 내에 접어들었다. 여당 텃밭인 인천 서구·강화을은 신동근 새정치연합 후보가 46.8%를 얻어 43.8%를 기록한 안상수 새누리당 후보를 오차범위 내에서 앞섰다. 지금까지 새누리당은 서울 관악을과 경기 성남 중원에서 승리 가능성을 점쳐왔지만 성완종 게이트 여파로 자칫 4곳 다 전패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하고 있다.
특히 여당 텃밭인 인천 지역이 여론조사에서 신동근 후보에게 오차범위 내로 뒤처지면서 성완종 게이트 변수가 본격적으로 작동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동안 보수 색채 인물이 주로 당선돼 왔던 인천 서구·강화을을 뺏길 경우 이는 박근혜 정권에 대한 심대한 타격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야당 강세 지역인 나머지 3곳에서 승리한다면 ‘밑지는 장사’는 아니라는 분석이다. 김상진 건국대학교 행정대학원 겸임교수는 “새누리당이 인천을 잃으면 타격이 클 것이다. 하지만 야당 강세의 다른 지역인 서울 관악을과 성남 중원 지역에서 이겼을 경우 그 타격을 상쇄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서울 관악을 지역의 경우 오신환 후보가 여권표인 37%가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있고 정동영 정태호 후보에 야권 지지자들의 표가 분산된다면 승산이 있다는 분위기다. 성남 중원 또한 18대 국회의원이었던 신상진 후보가 탄탄하게 텃밭을 다져왔고, 여론조사에서 앞서고 있는 만큼 신승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
# 문재인, 기회 살릴까
천정배 전 의원
4월 중순 이전까지 야당은 ‘인천상륙작전’이라 부를 만큼 인천 지역을 중요하게 여겼다. 안상수 새누리당 후보가 외부인(충남 태안)인 데다 인천시의 막대한 부채 문제에 대한 책임론이 일고 있는 상황이라 12년간 지역을 가꿔온 신동근 새정치연합 후보가 한번 해볼 만하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특히 문재인 대표 또한 ‘강화의 사위’(부인 김정숙 씨의 부친 고향이 강화)로 연을 맺고 있기 때문에 지역민심도 호의적이라고 한다. 이런 지역친화적인 이점 때문에 바람에 좌우되는 야권 강세 지역보다 인천 지역에 정성을 쏟을 정도로 초반의 선거 상황은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1주기와 성완종 게이트로 선거 판세가 요동치면서 야권에도 희망적인 기류가 흐르고 있다. 새누리당 강세 지역에서 새정치연합 후보들이 선전할 공간이 마련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6일 박근혜 대통령이 팽목항을 방문했지만 유가족들은 박 대통령이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는다며 이날 추모식을 모두 취소했다. 또한 박 대통령이 이완구 국무총리 거취 문제를 보류하고 해외순방을 떠나면서 야권은 “무책임하다”며 박 대통령을 공격하고 나섰다.
정치적 상황의 변동에 따라 새정치연합이 호재를 맞았지만 정작 당 내부에서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성완종 게이트로 인해 야당 후보들이 상대적으로 유리해보이지만 야권 분열 등으로 인한 악영향이 만만찮을 것이라 보는 분위기다. 특히 다른 지역을 선점한다 해도 광주를 잃는다면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앞서의 지도부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선거는 10%p이상 여론조사가 벌어지면 이기기 힘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들을 보면 천 전 후보가 월등히 앞서고 조영택 후보는 지명도에서 부족해 보인다. 당에서 유일하게 믿고 있는 것은 광주가 다시 전략적 선택을 해주는 것뿐이다”라며 “만약 광주를 뺏기게 되면 호남 물갈이론은 커질 것이고 호남권 인사들이 어떻게든 움직일 것이다. 이번에 손잡은 동교동계도 계산이 있을 것이다. 문재인 대표의 이번 선거 성적표를 보고 내부 계파들도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라 분석했다.
여당 텃밭인 인천을 거머쥔다 해도 광주를 잃으면 효과가 크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앞서의 김상진 건국대 겸임교수는 “문재인 대표가 인천에서 이기면 플러스 효과는 있겠지만 광주에서 이기지 않으면 큰 효과가 없다. 3곳을 지고 인천만 얻으면 타격을 상쇄하는 효과는 얻을 수 있겠지만 광주 천 전 의원이 승리한다면 신당창당 흐름이 그대로 살아있게 된다”며 “여기에 만약 전패한다면 여당보다 비교적 유리한 상황을 만든 성완종 게이트가 없었을 때보다 더 큰 책임론이 따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 집토끼 결집 막판 변수
성완종 게이트 여파가 야당에도 역효과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도 나온다. 지난 17일 성완종 로비 리스트에 여야 의원 14명의 이름이 나온 것으로 밝혀지면서 검찰의 칼날이 여야 모두에게 겨눠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성완종 게이트 조사가 진행될수록 일반 유권자들의 정치적 불신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기본적으로 재·보궐 선거 투표율이 낮은데다 성완종 게이트 여파로 정치적 무관심이 증폭될 경우 결국 기존 지지층과 인물론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이번 재보궐 선거는 여야 경쟁 후보가 막상막하의 대결을 펼치고 있는 만큼 막판 지지층이 어느 쪽에서 더 많이 결집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당장 새누리당은 인천에, 새정치연합은 광주에 공을 들이며 막판 ‘집토끼’ 잡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다영 기자 lata13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