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서 빠진 돈 주식 아닌 채권으로 ‘고’
코스피가 2143.50에 거래를 마친 17일 오후 서울 중구 외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이 업무를 보고 있는 모습.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실제 요즘 증권사 지점들에는 투자관련 문의가 부쩍 늘었다고 한다. 거래대금 증가에서는 쉬었던 계좌가 활동을 재개하는 모습도 찾아볼 수 있다. 과연 개인이 주식을 사서 주가가 오른 것일까.
올 들어 1월 중반까지만 해도 코스피에서 개인들은 분명 주식을 샀다. 하지만 이후 2월까지 내내 주식을 팔았다. 3월에도 매도우위를 보이다 하순부터 사들이기 시작해 4월 초순까지 7000억 원가량을 순매수했다. 코스피가 2100을 돌파한 지난 10일에 개인은 3000억 원 넘게 주식을 팔았고, 이후로도 계속 매도우위다. 개인들의 또 다른 주식투자 창구인 주식형펀드도 연초 이후 4월 15일까지 코스피에서 3조 9000억 원가량을 순매도한 상황이다. 적어도 코스피 2100에 개인들이 힘을 보탠 건 아닌 게 분명하다.
반면 외국인들은 연초 이후 15일까지 누적순매수가 4조 6000억 원이 넘는다. 결국 주가를 이끈 건 외국인이다. 아무리 국내가 저금리라지만, 유럽과 미국 등의 기준금리는 거의 ‘0%’로 더 낮다. 물론 개인의 주식시장 기여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정부가 시행한 34조 원 규모의 안심전환대출이 증시에 미친 영향은 감지된다. 안심대출을 시작한 3월 23일부터 4월 2일까지 개인의 주식순매수가 유난히 강력했다. 고객예탁금 수치를 봐도 연초 이후 3월 20일까지 늘어난 금액이 1조 3851억 원, 3월 23일 이후 4월 15일까지 증가금액이 2조 7423억 원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안심전환대출을 받은 돈으로 투자에 나서는 경우가 꽤 많다”면서 “싼 이자로 돈을 빌려서, 좀 더 나은 수익을 낼 수 있는 투자하려는 이른바 캐리트레이드(carry trade) 전략은 외국인이 구사하는 게 보통인데, 국내 금리수준이 낮아지면서 개인들이 그 전략을 구사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가 시작된 지난해 하반기부터 예금에서 돈이 빠지는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이 자금은 주식시장이 아닌 채권시장으로 움직였다는 게 중론이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4월 15일까지 주식형펀드 잔고는 80조 원에서 78조 원대로 줄었지만, 채권형펀드 잔고는 58조 원대에서 78조 원대로 불어났다. 시중금리를 그대로 반영해 사실상 채권투자인 머니마켓펀드(MMF) 수탁고는 이 기간 73조 원대에서 114조 원에 육박할 정도로 급증했다.
채권은 금리가 하락할수록 값이 오른다. 그래서 금리 하락기에는 채권투자가 주식투자보다 인기를 끄는 경우가 많다. 김학균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금리가 하락하는 사이클에서는 채권이 자금을 흡수한다. 주식시장으로 자금이 유입되는 시기는 금리가 바닥을 치고 완만히 반등하는 국면이다. 바닥에서 금리가 상승하더라도 절대 수치상 저금리 환경이 지속된다는 점에서는 변함이 없다. 금리의 완만한 상승이 나타나야 채권의 투자매력을 낮춰 주식으로의 자금 유입을 촉진시킬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럼 개인들이 주식을 많이 사지도 않았는데 왜 증권주는 급등했을까. 답은 채권이다. 증권사들은 주식투자로 돈을 벌지 않는다. 채권투자로 돈을 번다. 이들이 주식에서 버는 돈은 거래수수료지, 주식자체가 아니다. 주식투자는 위험해서 투자비중이 늘어나면 자본도 늘려야 하는 게 현재 금융관련 감독체계다. 업계 1위인 KDB대우증권을 예로 들어보자. 유가증권운용내역을 보면 2014년 주식투자로는 226억 원을 벌었다. 전년의 162억 원 손실에서 확연히 나아진 성적이다. 그런데 채권에서는 5927억 원을 벌었다. 전년의 1845억 원보다 4000억 원 이상 늘어난 수치다. 거래수수료도 2209억 원으로 전년의 1676억 원보다 늘었지만, 회사 실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채권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올 들어서는 지표채권인 국고채 3년 금리가 2%선이 무너져 현재 1.7%대까지 추락했다. 한국은행의 추가적인 금리인하가 예상되는 만큼 당분간 채권 값은 더 오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결국 KDB대우증권뿐 아니라 삼성증권 등 대부분의 증권주들이 3월 이후 급등한 것은 주식보다는 바로 채권의 힘이 컸다.
그럼 요즘 증권사 객장이 북적거리는 이유는 뭘까. 바로 해외투자와 코스닥이다.
이미선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가계는 지난 3분기 국내 주식을 2360억 원 순매도 해 두 분기 연속 순매도를 기록했던 반면, 해외주식과 해외채권은 각각 3320억 원, 4950억 원씩 매수했다”면서 “투자대상을 다변화시키려는 욕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이러한 수요를 충족시켜주는 비은행 저축예금, 해외주식 및 해외채권 등으로의 자금 유입이 향후에도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우리나라 투자자들이 선호하는 중국 등 신흥국시장의 올 주가 상승률(15일 기준)은 홍콩H증시 20.8%, 중구 상해종합지수 28.08%, 브라질 9.82%, 인도 4.73% 등으로 대부분 코스피(11.3%)를 앞선다.
코스닥은 올 들어 개인의 활동이 가장 두드러진 곳이다. 연초 이후 개인의 코스닥 누적순매수(15일 현재)는 7621억 원으로 외국인(847억원 순매도), 기관(750억 원 순매도)를 압도한다. 개인의 코스닥투자 열기는 돈을 빌려 주식에 투자하는 통계, 즉 신용융자잔고와 밀접하다. 신용잔고는 지난 연말까지만 해도 5조 원선에서 횡보했지만, 1월 중순부터 급증하기 시작해 현대 7조 원에 육박하고 있다. 올 들어 코스닥이 28% 넘게 급등한 것은 돈을 빌려서라도 투자수익을 얻으려는 개인투자자들의 적극적인 활동 덕분인 셈이다.
다만 100여 일간 숨 가쁘게 달려온 코스닥 랠리가 계속될 것이라 장담하기는 쉽지 않다. 김정호 HMC투자증권 연구원은 “코스닥 랠리를 이끈 것은 헬스케어 관련주로, 노령화 등의 글로벌 트렌드를 생각하면 장기적으로 성장이 유력하다. 하지만 단기적인 가격부담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코스피 대비 코스닥의 지수상승폭이 너무 커진 데다, 다른 신흥국의 성장주증시와 비교해도 가격부담이 높아졌다는 게 HMC증권의 분석이다. 아울러 코스닥 내 헬스케어 업종의 주가수준이 미국의 닷컴버블 수준에 다가가기 시작했다는 점도 주목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