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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 막힌 일이다. 이 모든 미친 칼부림의 원인이 그저 ‘갈기갈기 찢겨진 가슴’ 때문이었단다. 두 편으로 만들어진 <킬빌> 시리즈의 완결편 <킬빌2>를 보면 그 ‘하찮은’ 이유가 비로소 드러난다. 오랜 시간 동고동락한 킬러 빌과 브라이드 사이에는 사랑이 싹튼다. 그러나 빌의 아이를 밴 브라이드는 평범한 사람과 결혼해 아이를 키우고자 한다. 삭막한 킬러들의 세상에서 아이를 키울 수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잔혹한 빌은 참을 수가 없었다. 죽이고 싶도록 미웠다. 빌은 킬러 군단을 이끌고 가 브라이드의 결혼식장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러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브라이드의 복수는 빌을 초월한다. 생사람의 머리통을 반으로 가르고, 88명이나 되는 사무라이들을 죽이거나 병신으로 만들고, 또 그것도 모자라 원수의 눈까지 뽑아버린다. 뽑혀진 눈알을 발바닥으로 짓이기는 그녀의 잔혹함이란 목불인견이다.
사랑은 증오를 낳고, 증오는 복수를 부른다. 현실의 사랑도 다르진 않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현실 속 사랑의 증오와 복수는 피 대신 눈물을 뿜어낸다는 점이다. 그녀를 차버렸을 때 이미 복수는 시작됐던 것이었다. 단지 다른 점이 있었다면 그녀의 복수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주 천천히 진행됐을 뿐이다.
‘슬로우 불릿’, 천천히 날아와 치명상을 입히는 총알처럼 그녀와 헤어진 뒤 10년 동안이나 첫사랑과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망상은 매 순간 마음을 괴롭혔다.
<킬빌>의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는 주연배우 우마 서먼을 캐스팅하는 과정에서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자신의 출세작 <펄프 픽션>에서 함께 일했던 우마 서먼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킬빌>을 기획하면서도 우마 서먼을 처음부터 주인공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우마 서먼은 다른 영화 출연을 이미 약속했던 상황. 타란티노는 애가 탔다. 그때 우마 서먼의 마음을 결정적으로 돌린 사건은 바로 남편이던 호크와의 파경이었다. 믿었던 연하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된 우마 서먼은 <킬빌>에서 복수의 칼을 휘두른다. 언제나 그렇듯 어긋난 사랑은 증오와 복수를 낳는다.
마지막 순간 빌은 브라이드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땐 내가 좀 신경과민이었지.” 기가 막혀 하는 브라이드에게 죽음을 앞둔 빌은 씁쓸한 미소를 보낸다. 돌이킬 수 없는 것을 내던져버린 자에게 돌아오는 운명의 응징이다.
지형태 영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