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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자동 이발사>에서 한모역을 맡은 송강호. | ||
비슷한 시대를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두 영화는 전혀 다른 모습의 주인공을 보여준다. 하지만 두 인물 모두 절대 권력 앞에선 나약할 수밖에 없는 존재. 그래서 두 영화는 서로 대조적이면서도 한편으론 닮은꼴이다.
이발사 ‘성한모’(송강호 분)와 깡패 ‘최태웅’(조승우 분). 격동의 60~70년대를 살아간 <효자동 이발사>와 <하류인생>의 두 주인공은 대조적인 캐릭터다. 수동적으로 격변하는 시대 흐름을 받아들이는 ‘한모’는 당시 우리 사회의 평범한 소시민을 대변한다. 반면 능동적으로 변신을 거듭하는 ‘태웅’은 소위 시류에 편승해 성공한 이들의 전형적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권력과의 관계 역시 대조적이다. 권력 핵심부인 청와대의 이발사인 한모에게 권력은 ‘복종하고 또 착취당하는’ 절대존재지만 태웅에게 권력은 성공을 위해 거래하는 대상이다.
시대 흐름에 대한 주인공들의 반응도 사뭇 다르다. 한모의 삶은 한국 현대 정치사의 굵직한 사건들과 맥을 같이한다. 사사오입 개헌은 결혼의 계기가 되고 4·19는 아들의 탄생과 궤를 함께한다. 5·16을 계기로 청와대 이발사가 되지만 1·21사태(김신조 사건)를 빗댄 ‘마루구스병’(간첩들이 걸린 설사병)은 설사를 하는 아들을 하체 불구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70년대를 마감하는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은 아들의 병을 고치는 계기가 된다. 결국 한모의 인생사가 일종의 현대사 교과서인 셈.
반면 태웅은 정치적 사건보다는 당시의 세태에 민첩하게 반응한다. 5·16 직후 조직폭력배 일제 소탕으로 주먹 세계를 떠난 태웅은 60년대 황금기를 맞이한 영화계에 제작자로 투신하고 이후 미군 군납업과 건축업으로 큰돈을 번다. 성장 위주의 경제 정책에 발맞춘 그의 행보는 담합과 로비 등을 통해 구체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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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류인생>에서 태웅역을 맡은 조승우(왼쪽) | ||
반면 임권택 감독은 99번째 작품인 <하류인생>을 통해 자신이 살아온 60~70년대를 극화시켜 스크린에 담았다. 결국 태웅은 그의 시대적 경험이 집약된 인물인 것이다.
이런 두 감독의 의도 차이로 인해 두 영화는 동일한 시대를 다른 각도로 그려낸다. ‘간접 경험’ 세대인 임찬상 감독은 당시의 인권과 정치현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독재정권으로 인해 인권을 유린당하는 서민들의 모습이 성한모로 대변되는 것. 유신시대 때 하체 불구가 됐지만 박정희 대통령의 사망 이후 다시 일어서게 된 한모의 아들은 인권의 회복을 의미하고, 아들을 치료하기 위한 한모의 뜨거운 부성애는 유신시대에 맞서온 민주화운동을 암시하고 있다.
반면 임권택 감독은 <하류인생>을 통해 당시의 경제 성장의 그늘을 얘기하고 있다. 권력에 로비하며 이권을 챙기는 ‘태웅’의 모습은 당시 대기업의 빗나간 행태를, 미군 군수업으로 큰돈을 버는 대목에서는 미국 위주 경제 정책의 한계를, 또한 건설업의 기형적 급성장은 성장 위주의 경제 정책의 한 단면을 엿보게 한다. 이 과정에서 부를 누리지만 정신적으로 황폐해지는 태웅의 모습은 결국 고속 경제성장의 폐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결국 두 편의 영화를 통해 그려진 60~70년대는 핍박받는 서민들의 한숨 섞인 현실과 권력에 아첨하는 부자들의 황폐해진 모습으로 정리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는 어떤 모습일까. 지금 우리의 모습 역시 언젠가 영화의 주요한 소재가 되어 미래의 관객들과 만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