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C 주말연속극<사랑을 할거야>촬영현장 | ||
드라마 촬영은 세트 촬영과 야외 촬영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이 가운데 품이 많이 드는 것은 단연 야외 촬영. 이를 피하기 위해 100% 세트 촬영으로 진행되는 일본 드라마가 힘겨운 야외 촬영을 게을리 하지 않는 한국 드라마에 밀려 일본이 한류 열풍에 휩싸인 것이다.
결국 한국 드라마의 수준이 향상된 결정적인 이유 역시 야외 촬영 현장의 노고가 바탕이 되었다는 얘기. 이에 <일요신문>은 최근 인기리에 방영중인 드라마 몇 편의 야외 촬영 현장을 찾아 브라운관에선 보이지 않는 뜨거운 현장의 열기를 생생하게 담아본다.
지난 7월1일 대치동의 한 레스토랑에서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 MBC 주말연속극 <사랑을 할거야>의 야외 촬영장. 강수확률 70%로 언제 비가 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촬영팀은 한 장면이라도 많이 찍기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오전 8시경에 시작된 레스토랑 촬영은 11시30분쯤 마무리됐다. 한 시간의 점심시간 뒤 다시 이동해 오후 1시부터 강남성모병원에서 촬영이 재개됐다. 그리고 다시 2시쯤 이동을 시작한 촬영팀은 교대 부근의 한 냉면집에서 몇 장면을 더 촬영한 뒤 3시 반이 되자 또 다른 장소로 움직였다.
이렇게 바삐 움직이는 야외 촬영은 하루에 보통 15신에서 20신 사이를 소화한다. 새벽에 시작해 새벽까지 촬영이 계속되는 날이 다반사인 셈. 너무 바쁜 촬영 일정으로 인해 장면 하나하나를 (카메라로) 찍는 게 아니고 (기계로) 찍어낸다는 얘기까지 나돌 정도다.
별다른 NG가 없으면 대부분 OK. 다만 같은 장면일지라도 다양한 관점에서 촬영해야 한다는 게 어렵다. 원샷(one shot : 인물 한 명만 촬영하는 샷), 투샷(인물 두 명만 촬영하는 샷), 전체 샷(장면 전체를 잡는 샷), 그리고 개인별 바스트샷(가슴 위 얼굴 위주로 촬영하는 샷) 등 다양하게 촬영한 뒤 편집 과정에서 이들을 조합해 하나의 장면을 만드는 것이다.
샷이 바뀔 때마다 카메라 위치를 기준으로 조명, 마이크, 각종 전기선까지 각종 장비도 함께 움직인다. 이를 옮기는 스태프의 얼굴에는 땀이 마를 새 없고 대부분의 얼굴엔 피로가 역력하다.
이동시간에는 10여 대의 차들이 줄지어 다음 촬영지로 향한다. 어느새 관광버스 안의 스태프들은 시체처럼 늘어져 깊은 잠에 빠져든다. 이렇게 피곤한 육신들의 헌신이 모여 한편의 드라마가 완성되는 것이다.
6월30일 오전 10시경 일산의 어느 허름한 집. 새벽부터 시작된 SBS 주말드라마 <작은 아씨들>의 촬영이 한창이다. 이날은 방송작가 지망생인 미득(유선 분)이 ‘소녀가장을 위로하라’는 숙제 때문에 소녀가장의 집을 방문한다는 내용.
기자가 도착했을 당시 이곳에선 미득이 건태(오대규 분)에게 목물을 해주는 촬영이 한창이었다. 그런데 터프한 캐릭터로 인해 유선이 너무 강하게 물을 끼얹는 바람에 오대규의 바지는 물론 팬티까지 젖어버렸다.
▲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작은 아씨들>,<왕꽃선녀님>의 야외 촬영 현장을 찾았다. | ||
연기자는 멋지게 폼 잡고 연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면 오산. 한 장면을 두고 여러 각도와 인물별로 수십 번 반복해 촬영하며 같은 연기 톤을 유지해야 한다. 게다가 이날처럼 육체적인 어려움까지 더해지면 괴로워지는 수준에까지 이른다. 팬티까지 젖을 정도의 격렬한 목물을 20여 차례나 반복한다는 건 일종의 고문일 수 있다.
지난 6월30일 오후 2시50분경 방배동에서 진행된 MBC 일일연속극 <왕꽃선녀님> 촬영 현장. 이날 촬영 분량은 형우(박형재 분)가 공사장 인부들에게 영험한 점쟁이의 얘기를 듣는 단 한 장면으로 매우 간단한 촬영이었다. 하지만 실제 촬영은 한 시간을 훌쩍 넘겨 4시 반쯤에나 마무리됐다. 이유는 인근 공사장 소음 때문.
이날 촬영 현장에서 가장 많이 NG를 외친 사람은 연출가가 아닌 음향 감독이었다. 이날 현장은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간 한 고급 빌라의 공사현장 3층. 물론 이 건물의 공사는 전면 중단되었지만 인근에 또 다른 빌라 건물이 공사중이라 소음이 계속됐다. 특히 전기톱 소리가 문제였다.
결국 촬영이 계속 중단됐고 스태프들은 인근 공사장을 모두 뛰어다니며 잠깐만 공사를 중단해 줄 것을 부탁하러 다녀야 했다.
물론 공사장 장면에서 공사장 소음이 들어가는 것은 별 문제가 안된다. 다만 음향 톤을 맞춰야 한다는 부분에서 문제가 된다. 브라운관에서의 한 장면은 사실 여러 각도에서 촬영된 샷들이 합쳐져서 만들어지는 것. 때문에 투샷에서 들리던 소음과 원샷에서 들리는 소음이 다르면 편집에서 애를 먹게 된다. 따라서 음향 감독이 정말 미세한 소음인 전기톱 소리 때문에 촬영을 중단시킨 것이다.
소리만큼 무서운 것이 없는 게 드라마 야외 촬영 현장인 셈이다.
지난 7월1일. 일기예보에 의하면 이날 중부지방은 오전부터 비가 내리며 다시 장마가 시작될 예정이었다. 이날 야외 촬영이 예정돼 있던 <사랑을 할거야> 진행 스태프 이영민씨에게 전화한 기자는 “비가 올 것 같은 데 야외 촬영은 차질 없이 진행되느냐”고 묻는 우를 범했다. 전화상이었지만 언짢은 기색이 역력했던 이씨는 “촬영팀한테 비 온다고 얘기를 하다니, 실수하신 겁니다”라고 말한다. 이씨는 “오늘 강수 확률이 70%였지만 우리는 30%를 믿고 모였다. 이런 촬영팀에게 비와 관련된 얘기는 절대 금물”이라고 설명한다.
비가 천재지변이라면 인재는 연기자의 잦은 지각과 작가의 대본이 늦어지는 것. 이 두 가지 역시 현장 스태프들에게는 괴로운 일. 이날 촬영 역시 오후 1시경에 시작될 병원 장면이 연기자 한 명이 지각해 30분 가까이 지연됐다. 언제 비가 내릴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한 장면이라도 더 촬영해야 하는 스태프에게 기다림은 피를 말리는 일이다.
반면 <왕꽃선녀님>의 촬영 스태프가 두려워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임성한 작가의 대본 주는 속도다. 현재는 촬영에 전혀 지장을 주지 않는 편이지만 전작 <인어아가씨>에서처럼 중반 이후 대본이 늦어질까봐 걱정이라고. 사실 현장에서 모든 준비를 마치고 한 장씩 쪽대본으로 들어오는 팩스만 기다리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