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웃음도 시원시원 지난 7월28일 <얼굴없는 미녀> 기자간담회에서 김혜수가 시원하게 웃고 있다. 임준선 기자 | ||
“아휴, 말이 안 나와.”
김혜수는 김태우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김혜수가 저렇듯 긴장한 모습은 처음이었다. <얼굴없는 미녀>가 처음 공개된 지난 6월28일 기자시사회장, 역시 처음으로 완성된 영화를 본 김혜수를 만났다.
“오늘 새벽에 스태프들끼리 기술시사를 했어요.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이 자리에서 처음 보고 싶어서 꾹 참았어요. 잠도 설칠 만큼 긴장되네요.”
상기된 표정의 김혜수는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말 잘하기로 소문났고, 당당하기로 유명한 그녀라지만, 역시 자신에 대한 ‘평가’를 앞둔 자리는 긴장되는 법인가 보다. 더구나 이번 영화 속 김혜수의 ‘변신’은 놀랄 만큼 눈에 띄었고 김혜수 자신에게도 남다른 의미가 있다. 어떤 반응이 내려질지 기대와 우려가 가득한 것 같았다.
“<얼굴없는 미녀>는 <장희빈> 촬영할 때 시나리오를 받았어요. 처음 느낌은 ‘잘 모르겠다’는 거였죠. 김인식 감독님(영화 <로드무비> 연출경력)은 원래부터 좋아했고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함께 일해보고 싶었어요. 일단 감독님 작품이라는 얘기에 ‘OK’를 했는데 시나리오가 잘 이해되지 않는 거예요.”
<얼굴없는 미녀>에서 김혜수는 정신질환의 일종인 ‘경계선 장애’를 앓는 지수로 등장한다. 그녀는 결혼 전 사랑하던 사람과의 이별의 아픔을 고스란히 안고 산다. 또 남편의 불륜과 자신이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괴로워한다. 그녀의 심리치료를 맡은 정신과 의사 김태우(석원 역)는 지수의 치명적인 아름다움에 빠져들고 결국 최면상태의 그녀와 ‘관계’를 가지는 ‘죄’를 짓고 만다. 김혜수가 고민했던 지수의 캐릭터는 이렇듯 복잡다단한 내면심리를 표현해야 하는 힘든 역.
또한 김혜수 스스로는 불만스러워하고 있지만, 예상보다 파격적인 노출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영화가 완성되기까지 김혜수의 영화 속 노출수위에 대해 알려진 정보가 많지 않았기에 더 놀라울 정도였다. 그녀는 김태우와 옛사랑 한정수(장서 역), 두 사람과 번갈아 섹스신을 촬영했다. 알려진 대로, 김혜수가 ‘베드신을 찍다가 구토를 했다’는 것도 당시 상황을 들어보니 무리가 아닌 듯 했다.
▲ 얼굴없는 미녀 | ||
김혜수는 한정수와 용평스키장 근처의 온천 목욕신에서 처음 가슴을 드러낸다. 영화제 등 시상식장에서 그간 김혜수가 과시해온 노출의상에 익숙해진 터이지만, 몸을 고스란히 드러낸다는 것은 배우로서 더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더구나 김혜수는 가슴뿐 아니라 힙과 중요부위까지 보이며,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맨몸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그럼에도 김혜수는 ‘노출’에 초점을 맞춘 영화는 아님을 몇 차례나 강조한다.
“노출하는 것에는 사실 배우로서 별다른 거부감이 없어요. 노출을 염두에 두고 찍은 작품도 아니고, 영화에서 필요한 신이면 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어요.”
“배우로서 용기 있는 선택”이라는 기자의 평에, 김혜수는 “크게 중요하다고 보진 않아요. 베드신이 중요한가요, 영화가 중요한 거죠”라며 냉정하게 입을 닫는다. 오히려 그녀는 영화가 ‘야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입장.
김혜수는 역시 말을 잘했다. 토크쇼 진행경험까지 있는 그녀가 아니던가. 다소 민감하게 느껴질 수 있는 질문에도 김혜수는 요령 있고 여유 있게 대처해 나갔다. 얼마 전 만난 한 시나리오 작가는 김혜수에 대한 생각을 이렇게 피력했다.
“김혜수는 직접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싶어한다. 대다수 배우들은 매니저를 통해 대신 입장을 전하거나, 인터뷰에 응하는 것 자체를 귀찮아도 하는데 김혜수는 멘트 하나에도 정성을 기울인다.”
김혜수가 말을 잘한다는 것은 ‘자기관리’가 철저하다는 뜻과도 같다. 그녀는 자신의 말 ‘한마디’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싶으면, 다시한번 표현을 바꾸어 뜻을 전한다. 배우로서 갖춰야할 것 중 하나가 어떠한 현장도 자신의 분위기로 압도할 수 있는 ‘카리스마’라고 한다면, 김혜수는 충분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녀와 인터뷰를 나눈 기자들의 평 역시 언변에 관한 한 배우로서 최고라는 것이다.
김혜수는 당분간 휴식을 취하며 다음 작품을 고를 생각이라고 한다. 관객과 다시 만나게 되는 날, 김혜수는 또 다른 얼굴로 우리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