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삐’ 다시 쥐었을 때 사정없이 몰아친다
박근혜 대통령이 재보선 승리를 기점으로 국정개혁 과제에 박차를 가할 전망이다. 4월 25일 오후(현지 시간) 브라질 상파울루 한 호텔에서 열린 K팝과 함께하는 한·브라질 패션쇼를 지켜보며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 연합뉴스
재보선을 이틀 앞둔 지난 27일 귀국한 박 대통령은 ‘병상 정치’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해외 순방 기간 내내 40°C에 이르는 고열에 시달리면서도 주사와 링거를 맞으면서 순방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흘러나온 데 이어 급기야 청와대는 27일 오전 브리핑을 통해 박 대통령의 ‘와병’ 사실을 전하면서 “(귀국 당일 오전) 서울 모처에서 몸 컨디션과 관련한 검진을 받았고, 검진 결과 과로에 의한 만성 피로 때문에 생긴 위경련으로 인한 복통이 주 증상”이라고 밝혔다. 박 대통령의 ‘와병’ 소식에 새누리당은 막판 유세에서 “박 대통령이 많이 아프시다고 한다. 쾌유할 수 있도록 힘을 달라”(김무성 대표)고 호소하면서 새누리당의 전통적 지지층의 ‘동정표심’을 자극했다. 선거 막판 전해진 박 대통령의 와병 소식에 야당은 “와병 정치를 하느냐”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내면서도 “작년엔 (세월호 기자회견에서) 눈물, 금년에는 링거다. 어떻게 대응할 수 있겠느냐”라고 허탈해했다.
박 대통령은 재보선을 하루 앞둔 28일엔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이 대독한 대국민 메시지를 통해 ‘성완종 파문’에 대한 유감 표명과 함께 참여정부 당시 성 전 회장이 두 차례 특별사면을 받은 것을 둘러싼 특혜 논란을 정면으로 거론하면서 ‘선거 속으로’ 직접 뛰어들었다. 이는 야당의 강한 반발을 유발하면서 보수 유권자들의 결집시키는 한편 정치권 전반에 대한 불신을 높여 무당층의 투표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박 대통령은 과거에도 병상 메시지와 부상 투혼으로 선거 승패를 가른 바 있다. 지난 2006년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대표 재임 당시 지방선거 유세 과정에서 괴한의 흉기에 찔려 병원에 입원했지만 “대전은요?”라는 말 한 마디로 박성효 대전시장 후보의 막판 역전승을 이끌어냈다. 지난 2012년 총선에선 오른손에 붕대를 감고 전국을 누비는 ‘붕대투혼’까지 발휘, 총선 승리를 이끌어내며 위기의 새누리당을 구해냈었다.
이에 대해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역대 정부에서 중남미 순방 때는 통상 중간에 하루를 쉬어가는 일정으로 진행했었다고 하는데, 이번엔 일정을 다소 무리하게 잡으면서 박 대통령은 물론 순방에 동행했던 일부 수석들도 귀국 후에 병원에 입원한 것으로 안다”며 “(박 대통령이) 의도했는지 여부를 떠나 박 대통령의 ‘와병 소식’이 일정부분 재보선 표심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부정하기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재보선 승리로 집권 3년차 국정운영 동력을 확보한 박 대통령은 정치개혁은 물론 공무원연금개혁 등 국정개혁 과제 추진에 ‘올인’할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우리는 각종 개혁에 있어선 누구와도 싸울 준비가 돼 있고,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4·29 재보선 다음날인 30일 재보선 결과에 대한 입장문을 내고 “이번 국민의 선택은 정쟁에서 벗어나 경제를 살리고 정치개혁을 이루라는 국민의 준엄한 명령”이라고 의미부여를 하며 “경제활성화와 공무원연금개혁을 비롯한 4대 개혁, 그리고 정치개혁을 반드시 이뤄 국민의 뜻에 보답하겠다”고 밝혔다.
와병 중인 박 대통령은 업무에 복귀하는 즉시 ‘성완종 리스트’ 파문의 원인으로 꼽은 적폐와 부정부패 척결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비롯한 노동·금융·교육·공공 부분 등 4대 개혁과제 추진에도 속도감이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위해 후임 총리 인선 작업도 빠르게 진행할 것으로 점쳐진다. 새 총리가 정해져야 이번 파문으로 흔들린 국정이 조기에 안정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박 대통령은 도덕성과 개혁과제 추진력을 겸비한 인사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도덕성이 충족되면서 개혁 과제를 밀어붙일 수 있는 인사가 적임자가 아니겠느냐”고 밝혔다. 민 대변인은 “(총리 인선과 관련) 구체적인 일정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만 말했다.
다만 여전히 ‘성완종 리스트’ 등 국정운영에 제동을 걸 장애물들은 남아 있는 상태다. 재보선에서 전패한 새정치연합이 내홍을 겪고 있지만, 언제든 강력한 대여 공세로 내부 갈등을 돌파하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는 30일 재보선 결과와 관련한 입장을 내고 “이번 선거 결과는 저희의 부족함에 대한 유권자들의 질책일 뿐이지,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에 면죄부를 준 것이 아니다”며 “만약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이 민심을 호도하며 불법정치자금과 경선 및 대선자금 관련 부정부패를 되풀이하거나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가로막으려 한다면 우리 당은 야당답게 더욱 강력하고 단호하게 맞서 싸울 것”이라고 전면전을 선포했다. 특히 성완종 전 회장의 특사와 관련한 검찰수사가 진행되면서 그 칼끝이 문 대표를 향할 경우, 야당의 거센 반발에 부딪힐 가능성도 있다. 이를 감안한 듯한 청와대 관계자는 “특사 부분은 이제 우리가 관여할 게 아니다. 검찰에서 알아서 수사하는 것”이라면서도 “문 대표를 조사하게 되면 야당의 엄청난 반발을 살 텐데 수사하는 게 쉽겠느냐”라고 했다. 박 대통령이 선거 전 특사 의혹도 철저하게 밝혀야 할 것이라고 말한 대목과 비교할 때 한발 물러선 모양새다. 청와대가 재보선에 완승한 만큼 굳이 야당 대표까지 건드릴 필요가 없어진 셈이다.
또한, 후임 총리 인선도 쉽지 않은 과제다. 박근혜정부가 ‘총리 낙마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만큼 후임 총리 인선이 자칫 국정 운영의 최대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래선지 청와대 내에선 ‘인사청문회 통과 가능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는 기류다. 청와대 관계자는 “후임 총리 인선이 재보선 승리로 겨우 마련된 국정운영의 동력을 상실시켜선 안 된다”고 말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의 호흡도 지켜볼 만한 대목이다. 재보선 승리로 여권 내 힘의 균형추가 김 대표에게 쏠리면서 박 대통령과 긴장 관계가 형성될 수도 있어서다. 청와대 내에선 “박 대통령이 지금 믿을 수 있는 사람은 김 대표 뿐인데, 서로 잘 호흡을 맞춰가지 않겠느냐”는 낙관론과 “김 대표가 대권에 대한 욕심으로 박 대통령과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부정적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박현경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