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세 인맥 업고 ‘춘추전국’ 평정
박근혜 정부의 금융권 4대 천왕으로 부상한 4명의 인사들. 왼쪽부터 홍기택 산업은행 회장, 임종룡 금융위원장, 하영구 은행연합회장, 김용환 농협금융 회장.
#‘기업 CEO 쥐락펴락’ 홍기택 산업은행 회장
홍기택 KDB산업은행 회장은 산업은행이 지분을 갖고 있거나 주요 채권단인 기업들의 CEO 인사에 수시로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 대기업 오너와 관련해 자주 이름이 등장하면서 금융실세로서의 막강한 파워를 과시하고 있다. 지난해 말 이뤄진 KDB대우증권의 사장 선임 경우 김기범 당시 사장이 돌연 사퇴한 뒤 4개월 넘게 파행을 거듭하다 결국 홍 회장의 서강대 후배인 홍성국 부사장을 사장에 앉혀 무성한 뒷말을 낳았다.
대우증권은 지난해 7월 김기범 당시 사장이 갑작스럽게 사의를 표명하고 회사를 떠났다. 김 사장이 물러나게 된 배경에 대해서도 홍기택 회장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등의 억측이 난무했지만 본인이 굳게 입을 다물면서 관심사는 자연스럽게 후임 사장으로 옮겨갔다.
당시 대우증권은 6인의 사장추천위원회(사추위)를 꾸렸고, 일찌감치 사장 후보자가 낙점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대우증권은 수차례 거듭된 이사회에도 불구하고 후임자를 선임하지 못했다.
결국 이 혼란은 홍기택 회장이 대학후배이자 ‘서금회(서강대 금융인회)’ 멤버인 홍성국 당시 리서치센터장 겸 부사장의 손을 들어주면서 일단락됐다. 선임이 지연되는 과정에서 청와대 개입설이 불거지고 후보자간 상호비방과 투서가 난무하는 등 이전투구가 벌어졌지만 홍 회장이 결단을 내리면서 상황이 정리됐다.
최근에는 금호그룹 핵심 계열사인 금호산업 매각과 관련해 ‘홍심’이 화두로 떠올랐다. 금호산업을 인수하면 아시아나항공을 비롯한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손에 넣을 수 있어서다. 금호산업은 금호아시아나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서있는 사실상의 지주회사다. 금호산업은 아시아나항공 지분 30.1%를 가진 최대주주며, 아시아나항공은 금호터미널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금호터미널은 다시 금호고속 우선매수권을 갖고 있다. 금호산업 인수에 성공하면 금호그룹 핵심계열사들을 줄줄이 손에 넣게 되는 셈이다.
박삼구 회장이 채권단 보유 주식 가운데 ‘50%+1주’에 대한 우선매수청구권을 갖고 있다는 점이 변수다. 문제는 박 회장에게 그만한 자금력이 있는지 의문이라는 점이다. 금호산업은 주가만 기준으로 삼아도 5000억 원 수준의 자금이 필요하고,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계산할 경우 최소 8000억 원은 잡아야한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박 회장은 자금마련을 위해 재무적투자자를 찾고 있으며, 산업은행의 참여를 바라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홍기택 회장은 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홍 회장은 최근 “인수자가 누가 됐건 산은이 금호산업 인수금융에 참여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면서 “특히 박삼구 회장에게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공정성에 문제가 있고 특혜시비가 일 수 있어 가능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주목되는 것은 홍 회장이 박 회장과 거리를 두면서 다른 기업 오너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재계에서는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홍 회장과 회동을 가졌다는 소문이 나도는 등 ‘홍심’을 잡기 위해 오너들이 직접 뛰고 있다는 소식이 계속 들리고 있다.
동부그룹 구조조정과 관련해서는 경기고 선배인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을 향해 아들이 보유한 동부화재 지분을 담보로 내놓으라고 직접 압박을 가하는 대담함을 보였다. 홍 회장은 김준기 회장 측이 장남 김남호 씨가 보유한 동부화재 주식을 내놓을 수 없다고 버티자 “김 회장은 아들의 지분이 본인과 상관이 없다면서 담보제공을 거부하고 있다”고 공개한 뒤 “아들 남호 씨가 자수성가한 사업가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서 직격탄을 날렸다.
#‘중재의 달인’ 임종룡 금융위원장
지난 2월 농협금융지주 회장에서 금융당국 수장으로 파격 발탁된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2013년 국무총리실을 끝으로 공직을 떠날 때부터 ‘금융 쪽에서 한 자리 할 사람’으로 불렸던 인물이다. 전남 보성 출신인 그는 지난 2013년 5월 신동규 전임 회장이 농협금융지주의 고질적인 지배구조 문제에 불만을 표하며 갑작스럽게 퇴진하면서 민간금융사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올랐다.
그의 농협금융 회장 취임은 두 가지 측면에서 금융권을 놀라게 했다. 첫째는 그가 이명박 정부에서 장관급인 국무총리실장을 지냈던 인물이라는 점이다. MB정부 시절 요직에 있던 인물들이 줄줄이 옷을 벗는 상황임에도 오히려 발탁인사의 대상이 된 것이다. 회장 선임 발표 직전까지 하마평에조차 오른 적이 없었다는 점도 화제를 모았다. 당시 농협금융 회장에는 금융권에서 내로라하는 거물급 인사들이 대거 거론됐지만 임 위원장의 이름은 거의 거론되지 않았다.
임 위원장은 농협금융 회장 취임 후 ‘중재의 달인’이라는 평에 어울리는 모습을 보이며 박근혜 대통령의 눈에 띄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전임 회장이 농협중앙회와의 갈등으로 자리를 내놓으면서 “제갈공명이 와도 힘든 자리”라고 토로했을 정도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농협금융 회장직을 맡았지만 2년여간 별다른 잡음 없이 자리를 지켰다. 사실 농협금융지주 회장은 직함만 그럴듯할 뿐 공룡조직인 농협의 최고위직 중에서는 ‘미관말직’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서열이 낮은 자리다. 연봉도 민간금융지주 회장과는 비교도 안 되는 수준이어서 ‘자원봉사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올해 2월 금융위원장에 깜짝 발탁돼 또 한번 금융권을 놀라게 한 임 위원장은 금융당국 최고 수장으로 막강한 권한을 손에 쥐게 됐다. 박근혜 정부 최고 실세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최경환 부총리의 연세대 경제학과 2년 후배이며, 전임 금융위원장인 신제윤 전 위원장과는 행정고시 24회 동기다. ‘검투사’로 불리는 황영기 금융투자협회 회장과는 과거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시절 금융, 경제 관련 업무로 인연을 맺은 후 지속적으로 교류를 나눠 오고 있다.
#‘해결사’ 하영구 은행연합회장
한미은행 시절부터 15년간 씨티은행을 이끌며 ‘직업이 은행장’이라는 별명을 얻은 하영구 은행연합회장은 지난해 말 ‘관치금융’ 논란에도 은행연합회장 취임을 강행해 눈총을 받았다. 당시 은행연합회장 자리는 이종휘 전 우리은행장, 조준희 전 기업은행장 등 은행권 CEO 출신들이 경합을 벌일 것으로 예측됐다.
하지만 ‘하영구 내정설’이 갑작스럽게 등장하면서 판도가 뒤집혔다. 당시 은행연합회는 회장 후보추천을 위한 이사회도 열리기 전부터 하영구 행장에 대한 금융당국의 내정설이 돌았고, 그는 실제로 회장에 선임됐다.
2001년 한미은행장을 지낸 뒤 2004년 씨티은행장에 올라 14년 동안 5연속 연임한 장수 CEO인 하 회장은 현 정부 들어 금융권 최고 요직 인선이 있을 때마다 이름이 거론됐다. 지난해 10월 KB금융지주 회장을 뽑을 당시 그는 현직 씨티은행장이었는데도 “KB금융지주 회장 추천위원회로부터 후보 9명에 포함됐다는 통지를 받았다”고 스스로 공개해 논란을 빚었다. 경쟁 금융사 CEO자리에 도전하겠다는 뜻을 대놓고 밝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종규 회장이 KB금융 수장 자리를 차지하면서 다소 머쓱한 입장이 됐던 그는 4대 금융협회 가운데 최고요직으로 꼽히는 은행연합회장 자리를 꿰차면서 체면을 회복했다. 하 회장이 온갖 잡음을 뒤로하고 금융권력의 핵심으로 떠오른 데는 전문성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하 행장의 강점으로는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와 글로벌 금융에 해박하다는 점이 꼽힌다. 5연임을 하면서 관계와 정계, 금융계 다방면에 걸쳐 인적 관계를 구축해 왔다. 세계최대 금융사 가운데 하나인 씨티그룹 CEO로 글로벌 시류에 밝다는 점은 더욱 큰 장점이다. 금융 당국도 그의 이런 전문성을 인정한다. 하 회장은 특히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을 측면 지원하면서 당국의 신뢰를 얻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 회장은 취임 후 ‘신용정보집중 기구’ 설립을 막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 금융사 고객들의 개인정보를 한데 모아 관리하는 역할을 하게 될 이 기구가 별도로 만들어지면 하 회장의 근거지인 은행연합회는 위상이 크게 흔들리게 된다. 현재 은행연합회 전체 업무의 60% 가량이 신용정보와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은행연합회가 보유한 고객정보는 은행은 물론 증권이나 신용카드 등 다른 금융권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근원이기도 하다. 증권계좌를 개설하거나 카드를 발급하려면 고객정보를 제공받아야 하기 때문에 금융사들에게 은행연합회는 영원한 ‘갑’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때문에 하 회장은 최근 결정권을 쥐고 있는 금융위원회를 설득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급부상한 다크호스’ 김용환 농협금융 회장
제4대 회장으로 2년간 농협금융지주를 이끌게 된 김용환 회장은 금융관료와 수출입은행장을 지낸 인물이다. 행시출신에다 재경부, 금융위, 금감원 등 요직을 두루 거쳤지만 ‘금융권력’과는 쉽게 연결되지 않는 이미지였던 그는 금융위원장으로 영전한 임종룡 전 회장에 이어 농협금융 수장에 오르면서 시선을 모았다.
특히 최근 금융권을 뒤흔든 ‘성완종 다이어리’에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최수현 전 금융감독원장, 김진수 전 금감원 부원장보, 임종룡 금융위원장 등과 함께 그의 이름이 올라 있는 것이 확인되면서 ‘숨은 실세’로 급부상했다. 성완종 전 회장이 다이어리에 김 회장의 이름을 적은 배경이 무엇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쟁쟁한 금융권 핵심 인사들과 나란히 올라있다는 점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농협금융 회장 선임 과정도 ‘보이지 않는 손’과의 연결고리를 연상시키는 측면이 있다. 5명으로 구성된 농협금융회장 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3월 23일 열린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김용환 회장을 선택했다. 당시 후보로는 조원동, 김대기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유력한 것으로 거론됐고, 내부 출신으로는 김주하 농협은행장과 김태영 전 농협중앙회 부회장, 정용근 전 농협중앙회 신용대표 등이 하마평에 올랐다. 당시 유력 후보군에 김용환 회장이 거론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금융권에서는 “임종룡 전 회장도 장관급인 국무총리실장 출신인 만큼 차기 회장도 장관급 정도의 중량급 인사를 데려올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쟁쟁한 후보들이 많았던 탓에 회추위는 지난 3월 18일부터 1박2일에 걸친 마라톤 회의를 열어 격론을 벌이고도 후보를 압축하지 못하는 등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불과 일주일 뒤 다시 열린 회추위가 만장일치로 내린 결론은 김용환 회장이었다.
이영복 언론인
MB시절 4대천왕 지금은? 야인으로…권력무상 실감 2010년 전후 이명박 정부 당시에는 소망교회 라인인 강만수 전 회장을 비롯해 고려대 라인인 김승유, 이팔성, 어윤대 등 ‘금융 4대 천왕’이 금융계를 쥐락펴락했다. 이들은 한때 경제부처 장관 부럽지 않은 막강한 권력을 자랑했지만 정권이 바뀌고 자리에서 물러난 지금은 야인이나 다름없는 평범한 일상을 보내며 권력무상을 실감케 하고 있다. 우선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낸 뒤 산은지주 회장을 자리를 옮겨 ‘장관급 CEO’의 원조격이 된 강만수 전 회장은 언론기고와 경제관련 강연 등에 나서고 있다. 그는 올해 초 ‘현장에서 본 경제위기 대응실록’이라는 책을 통해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의 긴박했던 대응상황을 회고하기도 했다. 하나금융지주 회장을 지낸 김승유 전 회장은 지난 3월 대한항공 사외이사로 재 선임되며 기업경영과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김 전 회장은 최근 다른 금융사들의 잇따른 영입제의를 모두 거절한 것을 알려져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 이사장직을 유지하면서 비교적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우리금융 회장 시절이던 지난 2012년 재단 이사장을 맡은 이 전 회장은 금융권에서 멀어진 뒤에도 각종 시상식에 수상자로 참석하는 등 이사장직은 여전히 수행하고 있다. 고려대 총장에서 KB금융지주 회장으로 변신해 눈길을 끈 어윤대 전 회장은 퇴임 후 두문불출하고 있다. 최근 고려대 신임총장 취임식에 참석한 것 이외에는 별다른 활동이 눈에 띄지 않고 있다. [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