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내서 투자’ 주의보 폭죽이 폭탄될 수도
‘가짜 백수오’ 파동으로 휘청였던 코스닥이 4월 23일 700선 아래로 주저앉았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과열론의 선두에는 신용잔고가 있다. 신용잔고란 자기 돈이 아닌 신용으로 주식거래를 한 투자자가 증권회사에 갚아야 할 기한부 부채이다. 신용잔고는 거의 대부분이 단기적인 시세 차익을 노리고 투자된 자금이기 때문에 언제나 매도 기회만을 노리는 잠재적 매도세력이다.
KB투자증권 김성노 연구원은 “신용융자가 3조 8000억 원 수준으로 증가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는 점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그나마 시가총액대비 신용융자는 1.99%로 2007년 6월 (2.16%, 2.3조 원)보다 높지 않으나, 역사적으로는 높은 상태다”라고 경고했다.
이 같은 코스닥 시장의 신용융자 잔고 규모는 시가총액이 8배나 더 큰 코스피의 잔고보다 1조 원가량이나 많다. 과거 코스닥의 하락기간에도 신용잔고가 높은 종목들이 급락했다. 상승기에는 레버리지(leverage)를 일으킨 신용융자가 상승 탄력에 힘을 실어주는 ‘폭죽’이지만, 하락기에는 신용잔고 차익매물이 급증해 하락압력을 가중시키는 ‘폭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주가가 크게 오른 종목이 많아 기관투자자들의 경우 차익실현 욕구가 이미 높아졌다는 분석도 있다. 기준은 이동평균비율이다. 올해 코스닥의 52주 이동평균비율은 80%까지 상승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쉽게 풀이하면 52주 동안 전체 코스닥 종목 가운데 80%가 주가가 올라 플러스 수익을 냈다는 뜻이다. 그런데 개인들이야 주식을 파는 건 그야말로 각자 마음대로지만, 기관들은 다르다. 내부적으로 정한 투자원칙에 따라 일정 수준 주가가 오르면 차익실현을 해야 하고, 주가가 내리면 손절매를 해야 한다.
IBK투자증권 김정현 연구원은 “최근 코스닥은 개인만 순매수하고 있을 뿐 외국인과 기관은 순매도 확대하며 차익실현을 하고 있다”면서 “개인만의 순매수만으로는 개별 종목의 악재에도 취약해져 단기적인 투자심리 위축과 변동성 확대는 불가피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지금의 약세는 단기적인 조정일 뿐 코스닥 랠리가 상당기간 계속될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한국투자증권 박중제 연구원은 “코스닥이 활황이던 2005년 52주 이동평균비율은 70%까지 급등했지만, 2005년 말에 바이오 열풍이 잦아들기 전까지 내내 70% 수준을 유지했다”면서 “오랜 약세장 이후 나타난 강세장의 과열 국면은 이처럼 생각보다 길게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이베스트증권 양혜정 연구원도 “저금리, 저유가 그리고 원화는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은 환경에서는 대외변수에 영향을 더 많이 받는 코스피보다 코스닥이 수혜를 볼 가능성이 크다”면서 “지금의 매크로 환경, 특히 금리의 방향성이 바뀌지 않는다면 코스닥 시장의 조정은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NH투자증권 김재은 연구원은 “코스닥 시장을 구성하는 종목의 2014년 3분기 순이익은 확실히 개선됐고 4분기 순이익 역시 실적 발표한 기업으로 한정한다면, 과거 4분기보다는 나은 실적을 기록한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결론적으로 코스닥 시장은 2011년 이후 계속된 순이익 감소 추세에서 벗어나 2014년 턴어라운드가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과거와 달리 실적을 바탕으로 한 상승세인 만큼 잠시 조정을 거친 후 질주를 계속할 것이란 분석인 셈이다.
논란이 뜨거워지면서 섣부른 예단보다는 과거 사례를 참고해 시장을 판단하라는 관찰론도 많아지고 있다.
BNK투자증권 변준호 연구원은 시기, 외국인과 코스피의 동향을 핵심 관찰지표로 제시했다. 우선 4월 조정에 대한 설명이다. 금융위기 이후 6년 동안 코스닥은 4월께 연중 고점이 나타났다는 분석이다. 보통 1분기는 정부 정책 발표에 따른 테마 형성, 연말 배당 관련 프로그램 매물이 쏟아지기 때문에 대형주보다는 소형주에 유리하게 전개되는 경향이 있다. 또 중, 소형주의 경우 5월 이후 1분기 실적 발표가 본격화되면서 실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종목들을 중심으로 차익 매물이 출회되면서 하락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풀이다.
외국인도 중요한 변수다. 외국인이 공격적으로 코스피를 순매수하면 코스닥이 상대적으로 주춤한다는 논리다. 실제 코스닥이 약세를 보인 4월 22일 이후에도 외국인들의 코스피 순매수를 계속됐다.
코스피와 코스닥의 동반이론도 있다. SK증권 이은택 연구원은 “과거의 예를 보면 코스닥의 거친 조정은 종종 나왔지만, 코스닥 홀로 고점을 만들지는 않았고, 항상 코스피와 함께였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주장대로면 당장 코스닥을 낙관하기는 쉽지 않다. 코스닥이 정점에서 미끄러지기 시작한 지 불과 이틀 뒤인 4월 24일부터 코스피도 미끄럼틀을 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 사태 우려로 인한 유로존의 불안에다 미국의 경기지표까지 나빠지면서 코스피도 2200 턱 밑까지 올랐다가 2100 초반까지 밀렸다.
최근 강세를 보이는 중국과 비교하는 논리까지 나왔다. 중국 정부가 중국 경제의 고질적인 불균형을 해소하는 수단으로 주식시장 활황을 적극적으로 원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소득불균형 해소를 위해 부동산과 증시 등 자산시장의 부양을 원한다는 공통점 때문이다.
KTB투자증권 김윤서 연구원은 “중국 증시의 강세는 당국의 연쇄적인 기준금리 및 지준율 인하 효과와 추가 부양기대감이며, 코스닥 랠리도 주택담보대출 완화, 기준금리 인하 등의 효과로 볼 수 있다”면서 “결국 내부 정책에 의한 자금이동인 만큼 중국과 우리 금융당국이 어떤 금융정책을 펼치느냐에 따라 추가로 랠리가 진행될지, 아니면 가파른 조정을 받을지가 엇갈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상황이 애매해지면서 최근 코스닥 투자보고서는 옥석 가리기를 하라든지, 실적 모멘텀이 뒷받침 되는 종목들로 압축하라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익명의 증권업계 관계자는 “증권사 입장에서 개인투자자들로부터 수익이 나려면 거래빈도가 높고, 신용잔고 사용 가능성이 큰 코스닥 활황일 때가 최적기”라면서 “게다가 코스닥 담당 애널리스트도 오랜만에 돌아온 활황장에서 실적을 내야 인센티브도 받고 존재감도 확인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