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일 저녁 대구가톨릭대학 축제 무대에 선 장윤정. 열혈팬들의 열광은 여느 톱가수 못지 않았다. 사진=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자옥아>의 박상철로 시작된 새물결은 최근 정상의 자리에 선 <어머나>의 장윤정으로 이어지면서 중장년층의 전유물이었던 트로트를 젊은 층도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
다양한 지역 행사가 열리는 가을은 트로트 가수들이 가장 바쁜 시기. 일반 가요 가수들과는 전혀 다른 활동 영역에서 움직이고 있는 트로트 가수들을 취재하기 위해 취재진은 <어머나>의 장윤정을 24시간 밀착 취재했다.
‘어머나’의 장윤정에게 9,10월은 단 하루도 쉴 수 없는 ‘잔인한 두 달’이다. 매일 두세 개의 스케줄을 소화하는 장윤정의 움직임은 거의 ‘홍길동’에 가깝다. 심지어 하루 동안 대전, 광주를 찍고 대구를 돌며 세 군데 일정을 소화하는 날도 있을 정도다.
취재진이 함께한 지난 7일 장윤정의 일정은 울산시민의날 행사 축하공연과 대구가톨릭대학 축제 무대였다.
6시30분 시작이 예정된 울산시민의날 행사. 먼저 현지에 도착한 취재진에 이어 장윤정 일행이 6시10분 무렵 행사장 무대 뒤에 도착했다. 출발이 늦어져 서울에서 2시에 나섰다는 이들은 총알 질주로 4시간 만에 울산에 닿았다.
장윤정이 차에서 내려 취재진과 인사를 나누는 사이 ‘자옥아’의 박상철이 다가와 인사를 건넨다. 트로트 계에 젊은 바람을 불러일으킨 두 사람은 평소에도 각별한 선후배의 정을 나누고 있었다.
2000년에 데뷔한 박상철은 지난 5년여 동안의 변화에 대해 얘기하며 남다른 감회를 보인다. “당시에는 무명 트로트 가수들이 갈 곳은 MBC 라디오국뿐이었다. ‘MBC 라디오에서 노래가 나오면 뜬다’는 징크스 때문에 라디오국을 찾아 PD들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 유일한 홍보수단이었다”는 박상철은 “지금은 지역 민방을 중심으로 다양한 트로트 프로그램이 생기면서 트로트 가수들의 방송 활동 기회가 많아지고 있다”고 좋아했다.
지역 민방 7개사가 공동 제작하는 <전국톱10 가요쇼>나 트로트계에선 가장 유명한 순위 프로그램 iTV <트로트 베스트30> 등 트로트 전문 프로그램 대부분이 최근 2~3년 새에 신설된 것들이다.
이런 흐름이 가능해진 것은 박상철과 장윤정과 같은 신세대 트로트 가수들이 대거 등장해 젊은 층의 반응을 이끌어낸 데서 비롯됐다. 두 사람의 뒤를 이어 여러 명의 신세대 트로트 가수들이 등장했고 지금도 6명가량이 데뷔를 준비중이다.
7시20분 쯤 첫 번째 축하 공연으로 김흥국이 무대 위에 올랐다. 히트곡인 ‘59년 왕십리’와 ‘호랑나비’, 그리고 구수한 입담으로 분위기를 달궈놓은 김흥국의 무대가 끝나자 박상철의 ‘자옥아’가 분위기를 최고조로 띄운다. 그 다음 무대에 오른 장윤정의 ‘어머나’가 시작되자 울산 시민들은 노래를 따라 부르며 흥겨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울산시민의날 행사에 이어 구미에서 열리는 국화축제, 그리고 대전 지역 민방 녹화가 있다는 박상철은 무대에서 내려오기 바쁘게 구미로 출발했다. 이제부터는 시간 싸움. 장윤정 역시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다음 행선지인 대구로 출발하기 위해 차량으로 뛰어간다. 장윤정이 울산을 떠난 시간은 저녁 7시40분. 그리고 다음 도착지인 대구가톨릭대학(대가대)에 도착한 시간은 9시10분. 울산에서 대구까지 1시간30분 만에 도착하기 위해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장윤정의 차량을 쫓는 취재 차량 또한 정신없는 레이스를 벌여야 했다.
결국 9시30분으로 예정된 출연 시간을 20분 남기고 여유있게 도착한 대가대에는 이미 많은 학생들이 무대 주변에 둘러 앉아 장윤정의 이름을 연호하고 있었다.
트로트 가수와 대학 축제, 쉽지 않은 조합이다. 하지만 이미 지난 9월에만 10여 군데 대학 축제를 다녀온 장윤정은 10월에도 10여 차례 스케줄이 잡혀있다고 한다. 대학 축제는 대부분 이벤트 업체를 통해 출연 요청이 들어온다. 대가대에서 만난 한 이벤트 업체 관계자는 “요즘 대학가에서 장윤정이 섭외 1순위다. 길보드 차트에서도 그의 노래가 최고 인기일 정도”라고 설명한다. 그만큼 젊은 층에서 장윤정을 좋아한다는 얘기. 이는 장윤정이 무대 위에 오르면서 분명히 확인됐다.
장윤정이 등장하자 정돈된 대형은 완전히 무너졌다. 학생들이 전부 무대 주변으로 몰려들었고 휴대폰카메라(폰카) 플래쉬가 일제히 터지기 시작했다. 장윤정의 무대 매너 역시 뛰어났다. 학생들의 손을 잡아주고 자신을 향한 폰카를 집어 들어 직접 자신의 사진을 찍은 뒤 돌려주는 등 팬들과 호흡하는 장윤정에게 학생들은 열광했다.
준비한 4곡의 노래가 끝난 뒤 앙코르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준비한 반주 음악이 4곡뿐이었던 장윤정은 노래방 기계 반주를 통해 왁스의 ‘부탁해요’를 앙코르 곡으로 선사했다.
▲ 지난 7일 저녁 울산시민의날 행사에서 <자옥아>를 열창하고 있는 박상철(왼쪽). 오른쪽은 같은 행사 무대에서의 장윤정. | ||
모든 스케줄이 끝난 시간은 밤 10시경. 장윤정 일행과 취재진은 대가대 인근의 음식점으로 자리를 옮겨 늦은 저녁을 함께 했다. 재미난 사실은 음식점까지 따라온 대가대 학생들의 뜨거운 반응. 승용차를 타고 뒤를 따라와 음식점 앞에 차를 세운 이들은 카오디오로 ‘어머나’를 크게 틀어놓고 장윤정을 연호했다. 이들과 사인을 해주고 기념사진까지 촬영한 장윤정은 “1년 전 데뷔할 당시만 해도 트로트 가수들에게 사인을 부탁하는 사람은 없었다. 정말 많은 것이 변하고 있다”고 즐거워했다.
지금까지 ‘어머나’ 한 곡의 홍보용 CD로 활동해온 장윤정은 곧 정식 1집 앨범을 발표한다. 음반 제작을 맡은 업체는 EMI. 주로 팝송 음반을 제작해온 업체가 트로트 가수의 앨범을 제작한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만큼 트로트에 대한 인식이 변하고 있다는 얘기.
막강한 10대 팬클럽의 열광적인 지지, 화려한 공중파 방송 출연 등의 기회가 이들에게는 쉽지 않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과 함께 호흡하며, 대학생들과 함께 열광하는 신세대 트로트 가수의 모습은 또 다른 충격으로 다가온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없지만 서민들과 호흡하는 무대에서 최선을 다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오랜 세월 그들만의 문화로 묶여있던 트로트가 다시 대중들에게 돌아왔음을 절감하게 한 트로트 취재 현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