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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11월3일 가수 비와 ‘JYP 안무팀’이 이화여대 대운동장에서 열정적인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백댄서 박남용씨(오른쪽)는 비와 너무도 닮아 방송사 리포터한테 인터뷰당한 적도 있다고.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방송 예정 시간은 7시. 현장에 도착한 안무팀은 취재진과 간단한 인사를 나눈 뒤 다급히 의상 준비에 돌입했다. 이날처럼 야외무대는 탈의가 가능한 대기실이 아닌 대기용 천막이 대부분이다. 하는 수 없이 팀원들이 돌아가며 차량에서 의상을 갈아입어야 한다.
드디어 비가 무대 위에 오른다. 그리고 남자 넷 여자 셋으로 구성된 안무팀은 무대 뒤편에서 자신들의 순서를 기다린다. 언제나 그렇지만 비는 늘 열광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홀로 무대에 오른 비가 적절히 분위기를 만든 뒤 가죽점퍼를 벗어던지자 드디어 백댄서가 무대 위로 등장, 폭발적인 안무를 선보인다.
무대 위에는 분명 8명이 서 있지만 관객들의 시선은 단 한 명, 비에게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비의 뒤에서 묵묵히 멋진 춤사위를 선보이는 백댄서들이 없다면 비의 무대는 완성될 수 없다. 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도 스타에게 가려지는 이들, 하지만 언제나 그 자리에 서서 완벽한 무대를 만들어주는 백댄서를 밀착 취재했다.
요즘 JYP 안무팀은 정신이 없다. 정해진 시일 이내에 비의 후속곡 안무를 완성해야 하기 때문에 거의 매일 새벽 늦게까지 연습에 몰두하고 있다. 하루 전인 11월2일 역시 오후 4시부터 새벽 4시까지 12시간의 강행군을 소화했다. 오늘도 새벽까지 연습이 계속될 예정.
이들의 다음 행선지는 청담동 JYP 엔터테인먼트 본사 건물 지하에 위치한 안무연습실. 간단한 식사와 각자의 개인 용무를 마친 뒤 안무팀이 다시 모인 시간은 밤 10시경이다. 이미 백댄서 멤버인 최기석씨와 김기현씨는 연습에 들어갔고 안무팀장인 박남용씨와 정성탁씨도 준비중이다.
“가요계가 불황에 허덕이면서 댄스계도 무너져가고 있다.”
요즘 댄스계의 상황을 묻는 질문에 대한 정성탁씨의 답변이다. “예전에는 안무팀마다 팀원이 40명에서 50명씩 있었지만 이제는 4~5명 단위의 안무팀이 대부분”이라는 정씨는 “심지어 한 가수를 위해 두 팀 이상이 프로젝트로 뭉쳐 활동할 정도예요. 예전에 비해 가수와 연기자 지망생은 많이 늘어났지만 백댄서 지망생은 거의 없는 편”이라고 얘기한다.
가장 큰 이유는 음반 시장의 불황때문이다. 가수들의 경우 음반 판매가 부진해도 CF나 연기자 겸업 등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지만 안무팀은 음반 수익에만 의존하고 있다. 음반 판매가 떨어지면서 안무팀에 약속된 금액이 지불되지 않는 최악의 경우도 벌어지곤 한다.
95년부터 2년 정도 호황을 누리던 댄스계는 IMF의 충격을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IMF 당시 절반 이상으로 낮아진 안무팀 임금이 아직도 그대로”라는 박씨는 “요즘에는 댄스 가수도 많이 줄어들어 안무팀 사이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임금이 더 낮아졌다. 97년 이전의 3분의 1 수준”이라며 한숨이다.
| ▲ 후속곡 안무를 연습중인 JYP 안무팀은 요즘 매일같이 밤샘연습중. | ||
가장 기쁠 때는 단연 함께 무대에 오르는 가수가 1위를 차지했을 때다. “가수나 백댄서나 모두 1위 자리를 향해 달리는 사람들이다. 가수가 1위에 오를 때 우리의 보람도 가장 클 수밖에 없다”는 게 김기현씨의 설명이다.
기쁨은 이것 하나뿐이지만 슬픈 일은 너무나 많다. 최기석씨는 “함께 고생하며 연습했던 신인 가수는 스타가 되어도 우리는 늘 같은 자리일 때 마음이 공허해진다”고 얘기한다. “외국은 가수가 대박나면 안무팀도 같이 명성과 수익을 얻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정씨는 “가끔 외국 무대에 서면 댄서 역시 연예인으로 존중하고 정당한 대우를 해준다. 백댄서를 ‘춤이나 추는 애들’ 정도로 여기는 우리와는 인식 자체가 다르다”고 설명한다.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백댄서인 케빈 페더린와 결혼한 것을 예로 들며 “우리나라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잘라 말한다.
그렇다면 백댄서에서 가수로 성공한 비의 경우처럼 이들도 ‘꿈’을 갖고 있지 않을까. “(정)지훈(비의 본명)이는 가수 준비를 위해 백댄서를 한 것”이라는 정씨는 “가수로 변신한 백댄서가 망하는 경우를 하도 많이 봐서 엄두를 못낸다. 게다가 요즘에는 립싱크도 안돼 춤만 잘 춘다고 가수가 되는 시대는 지났다”고 토로한다.
백댄서가 되기 위해서는, 아니 이렇게 탄탄한 안무팀에 들어가는 방법을 묻자 대답은 간단했다. 사지 멀쩡하고 열의만 있다면 누구나 오디션을 통과할 수 있다고. “요즘 애들은 너무 끈기가 없고 나약하다”는 박씨는 “우리 때는 50명가량 되는 안무팀의 막내로 생활하며 얻어 맞아가면서 악착같이 배웠는데 요즘은 한번만 큰소리를 쳐도 나오질 않는다”라고 얘기한다. 안무팀에 들어와 1년을 채 못 버티는 이들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요즘 댄스계는 가장 막내에 해당하는 이들도 경력 5년차 이상이라고 한다.
비의 이번 3집 앨범 안무의 가장 큰 변화는 처음으로 등장한 여성 백댄서다. 현재 백댄서로 활동중인 이들의 남녀 비율은 대략 7 대 3 정도. 이번에 합류한 세 명의 여성 백댄서 가운데 한 명인 김화영씨는 그동안 JYP 안무팀에서 신인들의 레슨을 담당해오던 베테랑이다.
“이번 앨범 쇼케이스에서 처음 무대에 섰을 당시에는 팬들의 질투가 대단했다”라는 김씨는 “하지만 요즘에는 질투가 아닌 응원을 보내주시는 팬들이 많아 힘이 난다”며 웃는다.
자정에 시작된 라디오 스케줄까지 끝마친 비가 안무 연습실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1시 반경이었다. 그동안 이것저것 동작을 바꿔가며 후속곡 안무를 연습중이던 안무팀은 비와 함께 몇 차례 호흡을 맞춰본다. 이번 앨범을 위해 안무팀과 비는 지난 8월부터 석 달 동안 타이틀곡과 후속곡 두 곡의 안무를 맹연습했다. 타이틀곡의 경우 LA에 직접 가서 현지 안무팀의 도움까지 받아가며 완성도를 높였다.
요즘 밤을 새워가며 연습하는 것은 이미 완성된 후속곡의 안무의 분위기를 조금 바꾸고 보완하기 위해서다. 지금이 이 정도인데 새로 안무를 짤 때는 어느 정도 연습을 할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다.
한 시간가량의 연습이 끝난 뒤 비는 연습실을 떠났다. 그리고 다시 계속되는 안무팀의 연습. 오늘도 새벽 4시 내지는 5시가 돼야 연습이 마무리 될 것으로 보인다.
기자와의 대화에서 답답한 가요계 현실과 댄스계의 불안한 미래를 얘기하던 이들의 어두운 표정이 연습 과정에서는 모두 사라져버렸다. 안무에 온 몸을 내맡긴 채 연습에 몰두하는 그들의 얼굴에서는 신명 가득한 희열만이 엿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