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그콘서트 출연진(위), 웃찾사 출연진. | ||
사실 이 두 프로그램의 첨예한 경쟁은 시청률 수치를 기준으로 한 다른 방송 프로그램의 그것과는 차이점이 있다. 상당수의 신인 개그맨을 보유한 개그계 양대 파벌의 대립이 방송국에서 대학로 소극장으로까지 이어지며 현재 진행중이기 때문. 시청률 경쟁이라는 표면적인 수치 이면에 ‘개그계의 대부’ 박승대와 ‘갈갈이 패밀리의 수장’ 박준형을 중심으로 한 대학로 양대 개그 극단의 파벌 싸움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파벌 싸움’이라는 단어가 조금은 자극적일 수 있지만 정치권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짜증만 선사하는 정치권 파벌 싸움과 달리 개그계 파벌 싸움은 쉴새 없이 터지는 폭소의 도가니를 선사하고 있으니 말이다.
현재 개그계 최대 계파는 단연 ‘박승대 라인’이다. ‘개그계의 대부’ 박승대가 대학로에서 운영중인 ‘박승대홀’ 출신 개그맨이 바로 그들로 현재 <웃찾사> 출연진의 80%가량이 여기에 속한다.
‘그런거야’의 권성호 김형인 최영수, ‘단무지 아카데미’의 김태현 심진화, ‘깜찍이 끔찍이’의 장경희 김신영, ‘귀염둥이’의 이종규 김형은, ‘동남아보이즈’의 정만호 윤성환 황영진 ‘로보캅’의 최기섭 김필수, 윤진영, ‘병아리 유치원’의 김재우 엄승백 등이 박승대홀 출신의 신인 개그맨들이다.
박승대홀은 개그 아카데미 형식으로 운영중이라 지금도 수십 명의 개그맨 지망생들이 무대 위에서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이들 역시 언제라도 재능만 인정받으면 <웃찾사> 출연이 가능하다. 앞으로도 박승대 라인이 부동의 1위 자리를 유지할 것임을 예상케 하는 대목이다.
▲ 개그 콘서트의 깜빡 홈쇼핑 | ||
개그계 파벌의 구심점은 단연 대학로 소극장이고 이를 꽃피우는 활동무대는 방송이다. 양대 파벌의 결별 이후 박승대 라인이 새로운 방송무대로 SBS의 <웃찾사>를 선택했듯이 갈갈이 패밀리에게는 새로운 구심점이 되어 줄 대학로 소극장이 필요했다. 이에 갈갈이 패밀리의 수장 박준형은 정종철과 뜻을 모아 지난 2004년 4월 대학로에 새로운 소극장을 인수해 이를 ‘갈갈이홀’이라 명명했다. 드디어 양 계파의 진정한 승부가 시작된 것이다.
<개콘>의 출연진 가운데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갈갈이 패밀리 직계 라인은 현재 <개콘>의 실질적인 리더에 해당된다. 박준형 임혁필 박성호(이상 공채 13기) 정종철 조수원 김인석(이상 공채 15기) 김시덕(공채 16기) 김병만 권진영 정형돈(이상 공채 17기) 오지헌 장동혁 김진철 류담 채경선 강주희(이상 공채 18기) 엄경천(SBS 6기) 김대범 황현희 안상태(이상 공채 19기) 등이 갈갈이 라인에 해당된다.
개그계 3대 파벌은 최근 리마리오의 폭발적인 인기로 세 불리기에 나선 컬투 라인이다. 컬투의 정찬우 김태균은 <웃찾사> 출연진 가운데 최고참으로 인기 역시 최고다. ‘컬트프리플’로 활동할 당시부터 대학로 공연을 계속해온 이들 역시 대학로 소극장 컬투홀을 운영하며 신인 개그맨을 양성중이다.
요즘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리마리오를 비롯해 ‘알까리라 뉴스’의 김세아, ‘희한하네’의 한현민 이재형 조영빈 등이 ‘컬투 패밀리’ 멤버들이다. 현재 ‘컬투 패밀리’는 박승대 라인과 보조를 맞춰 <웃찾사>를 이끌어가고 있다.
요즘 방송계 최고의 화제는 <웃찾사>의 거침없는 질주다. <개콘>과의 아슬아슬한 시청률 경쟁을 벌이기 시작하더니 최근 시청률 경쟁에서 <개콘>을 완전히 압도해 버렸다. 그렇다면 <웃찾사>의 가장 큰 저력은 무엇일까.
상대 계파의 수장인 박준형은 “현재 <웃찾사>는 오락성이나 완성도 등에서 고루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고 언급하며 “특히 신인의 저력이 눈에 띄는데 계속적인 신인 공급으로 인한 경쟁 체제가 그 밑바탕인 것으로 보인다”고 얘기한다.
박준형이 언급한 <웃찾사>의 최대 장점인 ‘계속적인 신인 공급’은 KBS와 SBS의 상반된 신인 채용 방식에 따른 것이다.
<웃찾사>의 원활한 신인 수급이 가능한 이유는 SBS가 공채 시스템에 얽매이지 않고 신인개그맨을 채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재능과 끼만 인정받으면 <웃찾사> 무대에 설 수 있다. 그렇다고 그 문이 완전히 개방되어 있는 것은 아니고 박승대가 인정한 ‘누구나’의 경우에만 방송 데뷔가 가능하다.
박승대는 관객들에게 자신을 어필해 실력을 검증받은 신인 개그맨에게 방송 출연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런 희망을 바라보며 박승대홀에 재능있는 지망생들이 몰리고 이들은 대학로 소극장에서 관객들을 웃기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 웃찾사의 비둘기 합창단 | ||
다만 이런 무한경쟁 시스템으로 인해 개그맨의 수명이 짧아지는 현상이 우려된다. 방송 데뷔가 쉬운 만큼 밀려나는 것도 순식간이라 일회용 개그맨만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반면 <개콘>은 공채 문화가 확실하다. 이런 이유로 새로운 공채 기수가 들어오기 전에는 신인 수급이 이뤄지지 않아 신인들의 수시 채용이 불가능하다. 갈갈이홀 역시 수많은 신인 개그맨이 무대에 서고 있지만 이들의 경우 별도로 공채 시험을 준비해야 한다. 공채로 발탁될 경우 방송국의 지속적인 기회 제공으로 방송활동에 안정감이 생긴다는 장점이 있다.
최근 들어 <개콘>도 약간씩 변화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현재 출연중인 변기수와 김현숙은 공채 개그맨이 아니다. 대학로 갈갈이홀에서 얻은 높은 인기를 바탕으로 <개콘>에 출연중인데 이는 매우 이례적인 경우에 속한다.
“방송 데뷔가 쉽다는 이유로 실력있는 지망생들이 계속 박승대홀로 몰리고 있다”는 박준형은 “<개콘> 역시 신인 수급을 원활히 해서 실력있는 신인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담당 PD와 협의중이나 뿌리깊은 공채 문화가 쉽게 변하지는 않을 것”이라 말해 <개콘> 역시 점진적이나마 변화가 있을 것임을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