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신 본능 부활…소화불량을 조심해!
서울 마포구 이랜드리테일 사옥. 일요신문 DB
올해 들어 건영의 콘도미니엄부문을 200억 원에 사들이고 광릉포레스트CC를 300억 원에 인수했다. 또한 미국 운동화브랜드 수프라를 약 700억 원에 인수하고 더파인트리앤스파콘도도 1600억 원에 사들이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이밖에 매물로 나온 3000억 원 규모의 웅진플레이도시 인수후보로 거론되고 있으며 또한 시내면세점 참여와 M&A를 통한 화장품사업 진출도 검토하고 있다.
박성수 회장의 여동생 박성경 부회장은 지난해 “화장품 사업은 노하우가 부족해 M&A를 통해 진행하려고 한다”며 “화장품 제조 기술과 영업 노하우를 지닌 기업을 인수하고 싶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랜드그룹은 레저사업 확대를 위해 골프장과 리조트를 매입하는 것은 물론 돈이 될 만한 사업은 적극 품에 안고 있다.
2013년 대구의 특급호텔인 프린스호텔과 전주 코아호텔을 사들이고, 갤러리아 동백점을 인수하고 미국의 스포츠 브랜드인 K-스위스와 만다리나덕, 코치넬리 등 의류·잡화 브랜드를 대거 사들였다.
또한 이랜드그룹은 2020년까지 호텔·레저 사업을 육성해 150개의 지점과 1만 8000개의 객실을 갖춘 세계 10대 글로벌 호텔 레저그룹을 완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2012년 중국 광시성의 구이린호텔을 샀고, 사이판의 레저 시설 퍼시픽아일랜즈클럽(PIC)과 팜스 리조트, 코럴 오션 포인트(COP), 베어스타운을 잇달아 인수한 바 있다. 다만 지난해에는 풍림리조트를 인수하는 것에 그쳐 잠시 숨 고르기를 했다.
그러나 올해 들어 박성수 회장이 M&A 본능을 다시 깨우고 있다. 박성수 회장이 죽어 가는 곳을 인수해 부활시킨다는 원칙 아래 동물적 감각으로 사냥감을 고르면 그룹 내 M&A팀이 주도적으로 딜을 이끄는 것으로 알려졌다. M&A업계 관계자는 “이랜드그룹은 수십여 건의 M&A를 통해 내부 M&A팀이 웬만한 IB(Investment Bank:투자은행)와 비슷한 역량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랜드가 올해 들어 인수했거나 인수 추진·검토 중인 사업들.
박 회장도 이러한 M&A팀의 역량을 높이 평가해 의견을 경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이 괜찮은 매물에 대한 인수 검토를 지시하더라도 M&A팀이 반대하면 이를 따른다는 것이다. 인수한 회사들이 대부분 수익을 내 현재까지 이랜드는 M&A시장에서 성공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특히 K-스위스의 경우 이랜드그룹에 인수된 지 1년 만에 적자에서 탈출했다. 인수 직후부터 인원과 생산, 매장, 상품 등 전 분야를 대대적으로 개편한 것이 효과를 발휘했다.
하지만 이랜드가 항상 M&A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투자수익과 광고효과를 노려 지난 2012년 미국 프로야구 LA 다저스 인수를 추진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대신 이랜드는 방향을 틀어 프로축구 2부리그에 서울을 연고로 둔 축구팀 ‘서울이랜드FC’를 창단했다.
인수·합병으로 몸집 키우기에 성공한 이랜드그룹이지만, 재무부담감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승자의 저주’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또한 계열사에 제공한 지급보증이 이랜드리테일과 이랜드월드에 고스란히 재무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이랜드그룹의 연결기준 차입금 규모는 4조 8000억 원으로 부채비율과 차입금의존도가 각각 366.4%와 58.3%로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차입금 대부분이 1~2년 내에 만기가 도래해 차환부담도 크다. 그룹의 캐시카우 역할을 이랜드월드와 이랜드리테일, 중국법인이 연간 7000억 원의 규모의 현금 창출력을 보이면서 버티고 있지만, 나머지 계열사가 수익성에 기여하지 못하고 중국시장 성장도 둔화돼 수익성 악화 위험성도 내재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이랜드그룹은 우선 작년 말에 골드만삭스 등 글로벌 투자은행(IB)과 사모펀드 등에서 30년 이상 경력을 쌓은 신동기 부사장을 재무최고책임자(CFO)로 영입해 조직을 정비했다. 이와 함께 다양한 방식의 유동화에 나서고 있다. 골프리조트그룹 미션힐즈와 손잡고 국내에 건설예정인 테마파크와 리조트 내 빌라를 아시아 부자들에게 분양해 현금을 확보하며 2016년까지 이랜드리테일의 상장도 추진할 예정이다.
최근 아시아 부호들을 대상으로 리조트 내에 있는 50억~200억 원 이상의 초고가 빌라를 직접 건설해 5370세대 분양을 마무리 지은 미션힐즈그룹의 노하우를 국내에서도 적용한다는 전략이다. 또한 이랜드리테일이 보유하거나 향후 출점 예정인 11개 아웃렛과 쇼핑몰 매장을 매각 후 다시 빌리는 방식으로 현금 1조 원을 조달한다.
이 가운데 6000억 원은 금융사로부터 대출을 받고 나머지 4000억 원은 지분형태로 현금을 확보할 방침이다. 평균 5%초반 금리를 보장하고 5년 뒤 이랜드가 다시 사는 구조를 제안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투자자 모집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기관투자자들의 최종 투자 결정이 늦어지면서 애초 이달 초 투자를 집행하려던 목표에 차질이 생겼다. 투자자들은 이랜드리테일의 신용등급이 BBB+로 낮아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조건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랜드리테일 상장에 대해서도 시장에서는 내년에 가봐야 알 수 있다는 분위기다. 이랜드리테일은 10년째 상장을 하겠다고 약속을 하고 있지만, 이를 지키지 않아 ‘양치기 소년’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랜드그룹이 보유 자산의 유동화에 성공하지 못할 경우 자금확보에 어려움을 겪어 향후 M&A 계획 등이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또한 성장 중심의 경영전략으로 재무적 피로도가 계속 쌓여 조그마한 외부 충격에도 흔들릴 수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박성수 회장이 1년 중 절반은 중국에 있는 등 중국시장에 공을 많이 들이고 있다”며 “중국시장 매출이 여전히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잇따른 몸집불리기로 재무부담이 커진 만큼 수익성 제고를 위한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패션사업으로 일어나서 국내 재계 44위까지 올라선 박성수 회장. 그가 최근 레저사업 등 새로운 먹을거리 확보를 위해 공격적인 M&A를 멈추지 않는 상황에서 이랜드가 승자의 저주에 걸려 사라질지, 글로벌기업으로 자리매김할지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진환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