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들 단합대회 때 나홀로 각개전투
새정치연합 안철수 전 공동대표가 당 워크숍은 불참하고 라디오 방송에 출연, 대선 출마 의사를 공식화해 비판을 받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지난 6월 2일 새정치연합 워크숍에 참여한 의원들은 휴대전화 금지, 외출 금지, 중도 복귀 금지 등 ‘셀프연금’이라고 표현할 만큼 힘든 일정을 소화했다. 하지만 안철수 전 대표는 고려대에서 열린 라디오 프로그램 일정을 이유로 행사에 불참했다. 김한길 대표도 감기 등을 이유로 행사에 참여하지 않았다. 당 일각에서는 안 전 대표의 워크숍 불참에 대해 “하필 워크숍 하는 날 의원들은 땀 흘리며 고생하는데 본인은 방송에서 대권 도전 선언을 하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안철수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불참이 불가피했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그는 “지난 29일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처리로 새벽까지 이어진 본회의 때문에 원래 참석하려고 했던 고려대 강연에 참석하지 못해 1주 미뤘는데 그 날이 워크숍 날짜와 겹쳐 참석을 못했다”며 “500명 학생들과 한 약속이라 도저히 미룰 수 없었고 강연 끝나고 중간부터 참석하는 것도 특권같이 보일 수 있었다. 다음날 오전에는 메르스 대책위로 보건복지위 소속 의원들이 워크숍 일정을 뒤로하고 퇴소했기 때문에 보건복지위 소속인 안 전 대표도 어쩔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안 전 대표뿐만 아니라 김한길 전 대표까지 불참하면서 비노계 나름의 ‘저항’ 의사를 표명한 것 아니냐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새정치연합 의원실 한 보좌관은 의원들의 행사 참여 여부는 명확하게 ‘개인 의지의 차이’라고 말했다. 이 보좌관은 “의원실에서 일정 조정은 통상업무다. 무엇을 우선순위로 하느냐의 문제이며 그것이 선약이든 후약이든 중요도에 따라 조정한다”며 “잘 알겠지만 정치는 입보다 손, 발을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행동이 우선이고 논리는 후에 만들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평론가도 안 전 대표가 라디오 일정을 핑계 삼은 점은 올바르지 않은 처신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문 대표가 이끄는 워크숍에 갈 수 없다고 선을 긋든가, 참석해서 싸워보던가 했어야지 라디오 방송을 핑계로 의원 대다수가 참석하는 워크숍에 참석하지 않은 것은 옳지 못했다”고 말했다.
사실 안 전 대표의 워크숍 불참에 대해 당내에서 이렇다 할 얘깃거리가 없었다. 하지만 안 전 대표가 워크숍 당일인 2일 tbs 라디오 <퇴근길 이철희입니다>에 출연해 대선 출마 이야기를 꺼내면서 상황이 묘하게 꼬이기 시작했다. 이철희 두문정치연구소장이 안 전 대표에게 “2017년 대선 출마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던지자 “그건 제 몫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판단은 국민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며 즉답을 피했다. 하지만 이 소장이 반복해서 질문하며 “의향은 있으시죠?”라고 재차 묻자 안 전 대표는 “그럼요”라고 짧게 대답했다. 이 대답은 즉각 ‘안철수 대권출마 선언’으로 인식되며 당 안팎에서 큰 반향이 일었다. “의원들이 워크숍하며 혁신을 이야기하는 자리에는 가지도 않고, 정작 본인은 대권 얘기나 하고 있느냐”는 비판도 그래서 나왔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유기홍 의원 등이 지난 3일 경기도 양평 가나안 농군학교에서 진행된 국회의원 워크숍 중 산행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기에다 지난 3일 정대철 새정치연합 상임고문이 안 전 대표의 대권 도전 선언 파문에 기름을 부었다. 그는 자신과 안 전 대표와의 식사자리를 언급하며 당시 나눈 대화 일부를 언론에 공개해 더 큰 파문을 낳았다. 채널A에 따르면 정 상임고문은 ‘안 전 대표가 다음 대선은 제대로 준비하겠다’, ‘대통령 후보 하기 위해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안 전 대표 측에서는 “안 전 대표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는데 정 전 고문이 주목을 받기 위해 그렇게 한 것 같다”라고 해명했다.
정 상임고문의 이 같은 발언까지 이어지자 새정치연합 내부에서도 안 전 대표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더욱 증폭됐다. 당은 혁신위원장까지 선임하며 갈등 극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고, 국내 정세는 메르스로 인해 걱정의 목소리가 높은데 정작 안 전 대표는 대권 야욕만 보이고 있다는 비판이다. 새정치연합 한 당직자도 “안 전 대표가 당의 소중한 자산이란 꼬리표가 붙어 있지만 신경 쓰는 사람이 있느냐“며 “(당 내에서) 안 전 대표가 좀 얄미운 캐릭터다”라고 말했다.
앞서의 정치평론가도 안 전 대표의 이번 발언을 작심 비판했다. 그는 “대권에 도전하고, 국회에 입성하고, 당 대표까지 지냈던 안 전 대표가 정치적으로 발전한 점이 있는지 의심스러운 발언이었다”며 “국회의원으로서, 대권주자로서, 당 대표까지 했던 사람으로서의 세 영역 중에서 어떤 영역에서도 부합하지 않는 발언이었다”고 주장했다.
지난 3일 안 전 대표는 새정치연합 메르스 특별대책위원회에 위원 자격으로 참석했다. 회의장 앞에서 잠시 기자들과 만난 안 전 대표는 대권출마 발언에 관한 질문에 대해 과잉해석임을 분명히 했다. 안 전 대표는 “방송을 들어보면 알겠지만 사회자의 거듭되는 질문에 다른 질문으로 넘어가기 위해서 일상적인 말씀, 원론적인 말씀을 드린 것뿐이다”라며 “정 상임고문과의 회동에서도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잘라 말했다. 안철수 의원실 관계자도 “상식적으로 지금 시기가 이런데 대권 출마 선언 같은 것을 할 수 있겠느냐. 질문이 계속되자 대답을 안 하면 대권 불출마 선언, 하면 출마 선언이 될 수밖에 없었다”며 “안 전 대표가 곤혹스럽다는 말을 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안 전 대표의 이 같은 발언을 단순한 실언이 아니라 독자 행보의 첫 걸음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김한길·안철수 전 공동대표와 친분이 있다고 널리 알려진 이철희 소장의 이 같은 질문이 즉석에서, 의도되지 않은 채 돌발적으로 나왔다고는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대선출마 같은 정치적으로 예민한 문제를 사전 조율 없이 불쑥 물어서 ‘대박’을 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최근 안 전 대표가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등과 행사를 만들었고, 혁신위원장직을 거절하면서 몸값을 높이고 있는 와중에 나온 이번 대권출마 발언은 ‘돌발’이 아니라 대권 주자로서의 이미지 선점 효과를 노린 준비된 행동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최근 안 전 대표가 청와대에 대해 부쩍 공세적으로 나오는 것도 주목해볼 만하다. 국회법 개정안을 두고 청와대가 거부권 행사 가능성 이야기까지 나오자 안 전 대표는 청와대를 정면 공격했다. 지난 1일 안 전 대표는 자신의 트위터에 “대통령은 왕이 아닙니다”라며 “시행령 수정 요구는 국민의 대표로 국회에 주어진 고유한 권한입니다”라고 비판했다. 또한 지난 3일 메르스 대책위에 참석한 날에도 역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금은 메르스 상황이 너무나 심각하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에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맡길 수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라며 “문형표 장관이나 최경환 부총리 다 경제전문가다. 그분들이 의학적인 지식들이 있겠나. 그리고 보고를 받는다고 해도 거기에 대해서 제대로 정확하게 의사결정을 할 수 없다”고 공격했다. 이 발언은 의사 출신이자 회사 경영자인 자신의 강점을 분명하게 드러낸 발언이었다.
안 전 대표의 이 같은 행보와 더불어 최근 그가 정치적으로 ‘유들유들’해졌다는 시선도 있다. 메르스 비공개 대책위 회의에 참석한 한 보좌관은 “의사 출신인 안 전 대표에게 대책위원장을 맡으라는 제안이 오기도 했다. 새정치연합 한 의원이 ‘바이러스 전문가이고 의사인 안철수 의원이 대책 특위 위원장을 맡았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하자 ‘저는 살아있는 바이러스가 아니라 딴 바이러스 전문가’라며 능숙하게 거절했다. 예전 같았으면 딱딱하게 거절했을 것인데 유연하게 거절하는 것을 보고 정치적으로 트레이닝이 되고 있는 것 같더라”고 말했다.
안 전 대표는 대권주자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해 가는 노력을 하면서도 표면적으로는 ‘내공을 쌓는 시간’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안 전 대표 의원실 관계자도 “안 전 대표가 지금은 나설 때가 아니라 실력을 쌓고 있을 때임을 강조한다”고 전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