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패의 열쇠는 개미들 손에 있소이다’
오는 7월 17일 삼성물산 주총에서 엘리엇펀드와 삼성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안건을 두고 서로 맞붙게 됐다.
#양측 확보한 표는 얼마?
일단 ‘확실한’ 지분은 삼성이 특수관계인과 백기사 KCC를 합해 19.8%, 엘리엇펀드가 직접 보유한 지분 7.12%다. 다음은 삼성과 엘리엇펀드가 확보할 것이 유력한 지분이다. 각각 국내와 해외 기관투자가들이다. 국내 기관투자가(국민연금 제외)의 삼성물산 지분은 약 2.45%, 외국인 지분(엘리엇펀드제외)은 26.63%다.
국내기관의 경우 우리 경제 전반에서 삼성이 차지하는 막강한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삼성그룹은 현금성자산만 200조 원에 달한다. 삼성 계열사들이 운용하는 자산도 200조 원이 넘는다. 삼성그룹 임직원과 협력사들의 금융거래까지 감안하면 사실상 삼성의 영향력 밖에 있는 금융권은 없다고 봐야 한다.
익명의 한 금융권 관계자는 “예전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인수경쟁을 할 때 현대차그룹이 외환은행을 통한 직원들의 급여계좌를 옮긴 적이 있다.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삼성이 마음먹으면 국내 금융회사와의 거래를 지렛대 삼아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반대로 삼성과 거래를 트거나, 기존 거래를 늘릴 수 있다면 엄청난 수익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미 자산운용사를 비롯한 상당수 국내기관투자자들은 삼성 쪽 손을 들어주기로 내부방침을 정했다는 게 증권가의 추정이다. 익명의 한 펀드매니저는 “펀드의 경우 의결권 행사 이유를 서류상 남겨야 하지만 어차피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다. 어떤 이유든 만들면 되기 때문에 근거를 남기는 게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귀띔했다.
반대로 외국인투자자들은 엘리엇펀드 편에 서는 분위기가 뚜렷하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과 파이낸셜타임스(FT) 등 미국과 유럽의 유력 매체들은 이번 사안에 대해 엘리엇의 입장에 동조하는 분위기가 뚜렷하다. 외국인투자자 중에서는 운용규모 세계 2위를 자랑하는 네덜란드 APG(네덜란드연기금)가 이미 엘리엇 편에 서겠다고 공언했다. APG의 삼성물산 지분율은 0.26%로 미미하지만, 이 연금이 자산운용을 위탁한 곳은 세계적 기관투자자들이 많다. APG와 같은 편에 설 가능성이 크다.
최근 일본 도요타는 주주총회에서 경영권 방어를 위해 매매가 제한되는 새로운 종류의 주식을 발행하는 안건을 처리했다. 하지만 외국인투자자 39% 가운데 25%가량이 반대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공무원 연금(Calpers)과 캐나다 연금계획투자위원회(CPPIB), 온타리오교직원연금(OTPP) 등은 이번 AA종류주식 발행 안건에 반대표를 던졌다. 국제적인 의결권 자문사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도 이 안건의 문제를 제기했다. 한꺼번에 움직인 셈이다.
외국계 투자은행 출신의 한 관계자는 “삼성물산 외국인 주주로서는 합병비율이 조절되는 것도 이익이고, 그 결과 이재용 부회장 일가의 합병법인 지분이 줄어드는 것도 나쁘지 않다. 최대주주 지분률이 낮아질수록 자신들이 회사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용이해지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따지면 삼성 쪽 지분은 최대 22.25%, 엘리엇 쪽 지분은 도요타의 사례를 적용해 외국인(엘리엇 보유분 제외)의 최대 80%만 가정해도 약 29% 가량이다.
국민연금공단 입구. 일요신문 DB
#국민연금·일성신약 주목
뭉치 지분을 가진 곳 가운데 아직 편을 나눌 수 없는 곳이 있다. 10.15%를 가진 단일기준 최대주주인 국민연금과 2.1%를 보유한 일성신약이다. 이 두 기관이 어느 쪽 손을 들어줄 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한국 경제에서 삼성이 차지하는 위상, 그리고 엘리엇펀드가 투기성 펀드라는 점에서 국민연금이 삼성 쪽으로 기울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 또 국민연금이 제일모직의 주요주주라는 점도 변수다.
연기금의 한 고위관계자는 16일 “아직 공시가 안 돼 알려지지 않았지만 국민연금은 제일모직 지분도 5% 가까이 보유하고 있다”며 “2분기 보유 지분 규모는 5%를 넘어섰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유진투자증권도 “국민연금이 1조 원 이상의 제일모직 지분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전했다. 설령 삼성물산의 합병비율이 낮게 책정됐다 판단하더라도 이는 제일모직 주주가 얻을 상대적 수혜와 상쇄되는 만큼 굳이 반대를 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반면 국민연금이 올해부터 적극적인 의결권 강화를 위해 외부 전문가 자문을 받기로 한 만큼 엘리엇펀드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도 있다. 국민연금이 의결권 행사관련 자문을 받기로 한 곳 가운데 서스틴베스트는 이미 이번 합병에 대해 반대의견을 공표했다. 또 다른 자문기관인 한국지배구조연구원도 아직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문제점을 제기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지배구조연구원의 지난해 기업지배구조 관련 평점을 보면 삼성물산은 S, A+, A, B+, B, C, D의 7등급 가운데 중간 이하인 B등급을 받았다. 또 한국지배구조연구원과 자문계약을 체결한 직후인 지난 3월 국민연금은 현대차 주총에서 회사 측의 사외이사 재선임에 반대표를 던지기도 했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삼성 편을 들고 싶어도 외부 의결권 자문기관과 계약을 체결한 첫 해에 이들의 의견을 무시하기도 부담스러울 수 있다. 자문기관 조언을 받아들이든 그렇지 않든 결국 의결권행사위원회를 열어 최종의사결정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일성신약의 경우 이번 합병비율에 만족할 수 없다는 입장은 이미 밝힌 상태다. 하지만 주총에서 찬성표를 던질지 반대표를 던질지는 밝히지 않고 있다. 국민연금과 일성신약의 지지를 얻는다면 삼성 측 지분은 34.5%까지 올라갈 수 있다.
#최대변수 소액주주의 선택
보유 지분이 많은 기관투자자들의 선택에 관심이 쏠려 있지만, 31.78%에 달하는 소액주주들의 힘도 무시할 수 없다. 주총에서 합병안건이 통과되려면 참석주주의 3분의 2의 찬성(최소 발행주식의 3분의 1 이상 찬성)을 얻어야 한다. 엘리엇으로서는 발행주식의 3분의 1을 초과하는 33.34%의 지분만 확보한다면 주총 참석률에 상관없이 합병을 저지할 수 있다. 엘리엇이 다른 외국인 투자자 가운데 80%의 지지만 확보한다면 5%가량의 국내 소액주주 위임장만 받으면 되는 셈이다.
국내 기업평균 주주들의 평균 주총 참석률은 약 70%다. 이런 출석률을 감안해 볼 때 삼성으로서는 국내기관투자자, 국민연금, 일성신약의 지지를 모두 얻어도 최소 14%가량의 소액주주 지지가 필요하다. 게다가 외국인 투자자들은 대부분 기관들이어서 주총에 적극적으로 참석한다. 14%로도 안심할 수 없다. 삼성이 가진 막강한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엘리엇펀드의 승리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는 이유다.
현재 삼성물산 소액주주 가운데는 삼성과 인연이 깊거나, 헤지펀드의 대기업 경영권 견제에 반대하는 주주도 존재하며, 소액주주 권리를 주장하는 엘리엇 입장에 동의하는 주주도 존재한다. 결국 양측이 소액주주들로부터 얼마나 지지를 얻느냐가 이번 승부를 좌우할 가장 큰 변수다. 익명의 증권사 임원은 “외국인을 제외하면 주주 영향력에서는 삼성이 앞서지만, 엘리엇펀드의 주총 표 대결과 관련된 경험과 노하우도 무시할 수 없다. 예측할 수 없는 승부다”라고 설명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