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된 참모가 없어 온 나라가 무림세계 됐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냈던 김병준 국민대 교수는 “지금 우리는 청와대 기능이 마비된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며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번 유승민 축출 사태를 지나면서 선거의 여왕이라던 박근혜 대통령은 권력투쟁에는 성공했지만 대통령으로서 국정능력은 낙제점이라는 평가가 많다. 남은 임기 2년 반 동안 아무 것도 되지 않는 식물 청와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원인이 무엇이며 어떤 점을 잘못하고 있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또한 박 대통령이 무엇을 바꿔야 오늘의 국정난맥을 극복할 수 있을까.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냈던 김병준 국민대 교수를 만났다. 집권 5년 동안 노무현 대통령과 동고동락하며 국정 전반을 관장했던 경험을 들어보기로 했다. 김 교수는 “정말 이런 말 안하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다. 이런 청와대 시스템은 건국 이래 처음이다. 지금 우리는 청와대 기능이 마비된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무슨 의미인가.
“지금 대통령은 국정운영을 하지 않고 권력투쟁을 하고 있다. 정치가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대통령은 국가, 시장, 공동체 등 대한민국 전반의 관리자로서 비전과 목표를 제시하는 ‘플레이어’가 돼야 한다. 대통령이 청와대 공식회의에서 집권당 원내대표를 정치적 배신자로 낙인찍으며 온 나라를 무림의 세계로 되돌려버렸다. 점수를 단 1점이라도 줄 수가 없다. 현재의 박 대통령 통치점수는 0점이다. 전형적인 마이너스 정치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달라.
“국회법 개정안에 위헌요소가 분명히 있다. 그러면 공론의 장에서 논의를 붙여야 한다. 그게 민주주의다. 대통령의 중요한 책무 중 하나는 국민 스스로 많이 느끼고 고민하도록 하는 것이다. 논쟁이 살아있어야 국가의 수준도 높아진다. 이걸 대통령이 원천적으로 막아버렸다. 집권당 원내대표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대통령이 핏대를 세우며 찍어내려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이 정도 일이면 비서실장이나 청와대 수석 1명이 알아서 할 일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가 나왔을 때 청와대 정책라인에서 국회에 이견을 내고 법안 통과를 시도하는 국회의장에게 조목조목 반박했으면 이렇게 되지 않았다. 심지어 국회의장이 요구를 요청으로 단어수정을 할 때 청와대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기다렸다는 듯이 맹공을 퍼부었다.”
-대통령이 원내대표를 솎아내려다가 되려 대선후보 한 명을 키웠다.
“이게 대통령이 바라던 바인가. 대통령 판단에 심각한 오류가 있었다는 반증이다. 국회법 문제도 제대로 못 다루면서 결국 내년 총선 공천권, 잔여 임기 레임덕 문제로 집권당 군기잡기에 나선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무리한 행동이 당심도 잃고 민심도 잃은 것 아니냐. 불필요한 소모전의 중심에 왜 대통령이 서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친박이 당 운영의 중심에 서는가. 또한 이들이 주도하면 내년 총선에 승리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국정운영 책임자로서 박 대통령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소수의 절대적 지지자가 있지만 국민 다수가 기대하는 대통령상이 아니다. 심하게 말하면 박정희 정권 시절의 대통령상에 머물러 있다. 현실을 모른다는 얘기다. 세상은 무지무지하게 복잡해졌고 대통령의 힘은 과거와 달리 엄청나게 떨어졌다. 거기에다 박정희 대통령은 각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 수준의 식견을 갖고 있었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이에 미치지 못한다. 모든 게 과거와 달라졌는데 정작 본인이 과거에 머물러 있으니 동원할 수 있는 게 힘밖에 없다. 힘이 통할 수 있는 영역은 소위 말하는 권력기관이다. 대한민국 국민이 권력기관을 무서워할지 몰라도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동력으로 누가 생각하고 있는가. 시대착오적이다.
-구체적인 정책으로 가보자. 경제정책 어떻게 보는가.
“사령탑이 매우 중요하다. 내각은 장관 임기가 짧기 때문에 단기성과 중심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높다. 하지만 청와대는 임기 5년 동안 정책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장기적인 국가 미래 계획까지 수립해야 한다. 심지어 10년, 20년 뒤를 내다보면서도 경제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청와대는 최경환 부총리에게 모든 정책을 맡겨놓은 듯하다. ‘초이노믹스’라는 경제정책을 한 번 봐라. 부동산 띄우고, 환율 잡고, 돈 풀고, 이자 낮춰서 경기를 활성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최 부총리가 초급 공무원 때부터 해왔던 정책이다. 청와대는 국내 산업구조의 거시적 재편, 국제 경제에 관한 전략적 대응 등과 같은 중장기 과제를 제시하고 정답을 찾아가는 곳이어야 한다.
-사회적 갈등 조절 역할은 어떤가.
“작년 세월호나 메르스 사태를 봐라. 국가적 위기가 올 때마다 청와대가 없다. 세월호 사건이 터졌을 때 김장수 청와대 안보실장이 뭐라고 했나. 청와대는 안보위기만 담당한다고 했다. 까무러칠 뻔했다. 현대사회에서 안보위기, 비안보위기가 어떻게 나뉘는가. 만약 북한이 전산망 해킹을 하면 안보, 비안보 중 어떤 위기인가. ‘여보세요. 당신이 정말 그 얘기 했어요’라고 질문하고 싶었다. 오늘날 위기는 과거와 완전히 다르다. 초고층건물 붕괴, 산업시설 테러, 첨단교통시설 파괴 등을 생각해봐라. 모든 게 전문지식이 요구되는 예방과 위기관리다. 메르스사태도 마찬가지다. 위기관리 책임자를 전문성이 없는 장관, 부총리, 총리로 높여서 무슨 문제가 해결되나. 가장 전문성이 있는 질병관리본부에 인적 물적 자원 관할권을 주고 청와대가 그 옆에서 버티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청와대는 남 탓만 하며 사태를 걷잡을 수 없이 키웠다. 책임을 두려워하며 비겁하게 도망가는 청와대를 보면 어느 국민이 국가를 믿겠는가. 욕을 먹더라도 끝까지 책임지는 곳이 청와대이어야 한다. 가장 기본적인 책무다.
-도대체 청와대 참모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내가 묻고 싶은 질문이다. 청와대 참모 중 이름이 기억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이번 국회법 파동에서도 제대로 된 참모를 볼 수 없었다. 국민 앞에 직접 나서 국가 대소사를 상세히 설명하고 대통령을 대신해 이해를 구하는 사람이 없다. 대통령의 실질적인 국정운영 동반자가 없다는 것이다. 대통령을 실질적으로 보좌하는 사람이 없고 눈치만 살피는 사람이 대다수라고 봐야 한다. 사실 대통령은 거의 살인적인 수준의 일정을 소화한다. 수면시간을 빼고 대통령 혼자 쓸 수 있는 시간은 많아야 하루 1~2시간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어떻게 국정을 다 챙길 수 있는가. 참모들이 눈칫밥 먹지 말고 대통령에게 직언하며 역할을 분담하든지 아니면 못하겠다고 사표 내고 나와야 한다.
세월호 참사에 이어 메르스 사태를 겪으며 정부 위기관리 시스템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6월 5일 메르스 환자 국가지정 격리병상을 방문한 모습. 사진제공=청와대
-지금이라도 대통령이 청와대 시스템을 바꿔야 하는가.
“당장 바꿔야 한다. 청와대 정책라인을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정책기능 상실이다. 사회전반의 정책을 관리 조정하는 역할이 사실상 마비됐다. 우선 대통령의 과제와 국가비전을 분명하게 만들어야 한다. 큰 그림 아래서 개별정책을 적용하고 이를 실행하면서 국민 평가를 받아가는 것이다. 대통령에게 맞는 대통령 과제가 없고 청와대에 맞는 정책기획, 조정 능력이 없으니 국무총리, 장관업무를 마치 청와대 일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인적 구성도 이해할 수 없다. 법조 출신, 군 출신 참모나 장관은 외국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청와대 구성이다.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에는 민정수석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세간의 지적을 그냥 흘려버릴 게 아니다. 일본만 하더라도 법조 출신을 국가경영에 거의 쓰지 않는다. 엄청난 속도의 변화를 본능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고 기존 체제를 유지하는 데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원시적 자본주의나 초기 산업화 시대에 국가 목표가 단순하고 일사불란한 추진력이 필요한 시절에 볼 수 있었던 형태다. 비서실장이 정책통이거나 정책실을 별도로 만들어 하루속히 정책기능을 회복해야 한다. 현대의 국가 경영에는 행정전문가, 사회정책전문가 등이 훨씬 효율적이다.”
-임기가 절반이 지났다. 바꾼다고 해도 너무 늦지 않았나.
“시간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다고 본다. 남은 임기 2년 반 만에 모든 것을 할 수 없다. 대통령은 역사와 대화해야 한다. 국정운영의 기본 방향을 제대로 찾아 대한민국 10년, 20년 뒤를 위해 메시지를 남긴다는 각오로 일을 해야 한다. 힘에 부치더라도 미래에 평가받을 각오로 역사적 과업을 수행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시절 지역균형발전을 추진했던 정책이 지금 공기업 지방이전, 세종시 등으로 나타나지 않는가. 박근혜 정부가 이대로 가면 역대 최악의 정부로 평가받을 것이다. 청와대가 할 일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총리와 장관에게 권한을 전적으로 위임해야 한다. 민정수석 내세워 부패척결을 할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새롭게 바꿀 산업구조, 세계질서 변화, 문명대전환과 같은 숙제를 대통령이 안고 있어야 한다.
전계완 정치평론가 jkw6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