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곳간서 돈 빼먹는 의원들 있다
지난 2월에 열린 서울시의회 새해 첫 임시회.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이 없다. 연합뉴스
최근 한 여론조사업체 관계자 A 씨는 한 광역의회 의원실에서 조사 발주 의뢰를 받았다. 그런데 조사 주제 자체가 너무 허술했다. 그는 조사를 의뢰받은 입장에서 오히려 의원실에 조사 내용의 구체화를 요구했지만, 조사를 발주한 의원실은 이상하게도 조사 내용 자체에 별 다른 관심이 없었다. A 씨는 얼마 후에야 그 이유를 알았다.
“그 의원실 관계자는 ‘조사 주제와 내용은 업체가 알아서 하시라. 단, 발주 금액의 일부를 우리에게 좀 챙겨달라’고 슬그머니 얘기하더라. 한마디로 조사 의뢰를 대가로 리베이트를 요구한 것이다. 이미 조사 계약을 체결한 후라 조사는 정상적으로 진행했지만, 의원실의 제안은 단칼에 거절했다. 아마도 향후 또 다른 (공공발주) 계약이 어려울 듯싶다.”
이러한 광역의회 여론조사의 리베이트 관행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는 것이 관련 업체 및 의회 내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한 광역의회에서 보좌관으로 활동했던 인사는 “우리 지역의 한 의원실은 지역구의 개발 사업과 관련해 연구 용역을 발주한 바 있는데, 적잖은 금액에도 불구하고 수의 계약이었다”라며 “알고 보니, 발주 업체는 해당 의원실 관계자의 지인이었고, 암암리에 리베이트가 오갔다는 소문이 파다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결국 이러한 것이 가능한 것은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다”라고 덧붙였다. ‘구조적인 문제’는 광역의회에서 집행하는 입법지원비의 계약 주체와 과정을 이야기한다. 각 광역의회 사무처는 해마다 기본적인 의정활동비 외에 입법지원비 명목으로 별도의 예산을 책정한다. 이는 각 의원들의 입법 활동을 함에 있어, 앞서의 경우처럼 여론조사나 정책 연구의 목적으로 쓰인다.
다른 여론조사업체 관계자 B 씨는 “입법지원비 발주는 의원실이 진행 하지만, 그 계약 주체는 의회 사무처가 된다”라며 “의원실이 사업계획을 올리면, 발주한 업체는 의회 사무처와 계약을 맺는다. 그 과정에서 의원실은 실제 예산보다 발주 비용을 높게 책정하고, 리베이트 명목으로 ‘인 마이 포켓(In My Pocket)’을 하는 구조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B 씨는 “광역의회 사무처는 계약의 주체지만, 이러한 은밀한 거래를 필터링하기란 굉장히 어렵다”라며 “여론조사 발주의 경우, 그 내용을 들여다보려면 전문성이 요구되는데, 그러한 인력 자체가 부족한 상황이다. 또한 이렇게 발생하는 리베이트는 철저하게 현금거래로 진행되기 때문에 서류만 검토해서는 잡아내기가 어렵다. 서류 자체로는 별다른 하자가 없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그 계약 형태가 단독 입찰 구조의 수의계약이라면 더욱 의심스럽다. B 씨는 “조달청이 운영하는 ‘나라장터’ 홈페이지를 살펴보면, 광역의회가 발주하는 것들 중에서 수의계약 형태가 있다”라며 “비교적 소규모 금액의 발주는 이러한 수의계약 형태가 다수인데, 이러한 계약 구조에선 리베이트가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 그나마 경쟁 입찰에 따른 외부 발주는 투명한 편”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러한 광역의회 리베이트 발생 의혹은 암암리에 존재하지만, 수사기관이 직접 나서는 것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B 씨는 “결국 이러한 리베이트 의혹에 대해 확인을 하고자 하면, 계좌추적을 통해야 한다”라며 “이것이 유일한 방법이지만, 이는 엄연히 지방자치권에 대한 침범 소지가 있다. 이 때문에 의혹이 있어도 수사기관이 나서기 쉽지 않다”라고 현실적 문제를 언급했다.
그러면서 그는 “결국 이를 감시하는 역할은 지역의 시민사회에 넘겨질 수밖에 없다”라며 “이러한 입법지원비 예산과 이를 통한 외부 발주 및 계약 내용은 ‘백서’를 통해 공개된다. 외부 모니터링 강화를 통해 필터링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본다”라고 지적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공공발주 담합도 문제 돌아가며 입찰…변두리엔 철벽 한 여론조사업계 관계자는 “거의 매년, 관례적으로 이뤄지는 여론조사 공공발주의 경우, 업체들 간 담합이 이뤄지기도 한다”라며 “올해는 A 업체가 발주를 받으면, 업계 내부의 합의에 따라 그 다음에는 B 업체가 발주하는 형태다. 이 때문에 업계 내부에서 담합이 이뤄지면 이전 특혜를 받은 업체는 아예 입찰 지원을 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그 테두리에 들지 못한 변두리 업체들은 이러한 카르텔을 뚫지 못해 발주 기회조차 잡지 못한다. 굉장한 악습이다”라고 지적했다. [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