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여우’ 이제야 깼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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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2003년 11월 이혼해 2004년 11월 연예계로 돌아온 고현정은 금세 톱스타 자리를 되찾는 데 성공했으나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는 못했다. 여전히 재벌가 며느리 시절의 그를 기억하는 이들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다. 지난해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던 ‘삼순이’ 김선아를 능가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올 정도로 고현정은 우량주에서 다시 블루칩으로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그를 좋아하는 이들은 “가식 없는 모습이 너무 신선하다”고 얘기하고 한편에서는 “저 나이에 이렇게까지 망가져가며 떠야 하느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또 별다른 관심이 없던 이들은 “우아한 모습만 있는 줄 알았는데 저런 모습도 있었네”라며 깜짝 놀란다.
영화 <해변의 여인>을 통해 파격적인 연기 변신을 선보인 고현정이 드라마 <여우야 뭐하니>를 통해 본격적인 질주를 시작했다. 엉뚱한 베드신으로 분위기를 잡고 혼자 야한 상상에 빠져 몸부림치며 시청자들의 배꼽을 공격한다. 만취해 해롱대는 연기는 기본이요 짝사랑에 상처받아 눈물을 쏟아내는 모습까지, 영화에선 어지간한 욕설도 서슴지 않는다.
고현정을 잘 아는 사람, 오랜 기간 알고 지내온 이들은 <여우야 뭐하니>를 보며 가장 자연스러운, 고현정다운 연기라고 말한다. 비로소 이혼 이후 계속되던 불안정한 모습을 털어내고 배우 고현정으로 바로 섰다고 얘기하는 이도 있다.
이는 바빠진 스케줄만 봐도 알 수 있다. 2004년 11월에 컴백을 공식 선언한 뒤 2005년 1월 드라마 <봄날>을 통해 브라운관으로 복귀한 고현정은 다시 1년 넘는 공백기를 가졌다. 달라진 건 2006년 봄부터다. 지난 4월 영화 <해변의 여인>이 크랭크인 한 이후 요즘 촬영 중인 드라마 <여우야 뭐하니>까지 고현정은 쉴 새 없이 현장을 지키고 있다.
고현정이 공식적으로 컴백한 것은 2005년 1월이지만 실질적인 연예계 컴백은 2006년부터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그렇다면 이혼 이후 계속된 고현정의 방황이 2005년에도 지속됐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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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라마 <여우야 뭐하니> 속 장면들. | ||
자살설이 퍼진 근본적인 이유는 2005년 1년 동안 그가 보인 행적 때문이다. 2003년 11월 이혼한 고현정은 1년 동안 꽁꽁 숨어 지내왔다. 고현정과 친자매처럼 지내는 ‘똘래’라 불리는 연하의 여성과 함께 살았고 친구 사이로 알려진 소속사인 후크 엔터테인먼트 권진영 대표가 거의 매일 집에 들러 말 동무가 되어줬다. 가끔 외식을 하거나 윤여정, 김종학 PD 등을 만나러 가는 게 유일한 외출이었지만 흔한 일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낸 고현정은 연예계 컴백 이후에도 생활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드라마 한 편에 출연했고 다양한 CF를 통해 브라운관에 노출되는 횟수는 늘었지만 생활 스타일에는 별다른 차이점이 없었다.
컴백 기자회견 당시 그는 “기자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연예계 복귀작 <봄날>이 종영된 이후 고현정은 다시 자기 자신이 만든 성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결혼 생활 또는 이혼과 같은 사생활 관련 언급은커녕 차기작에 대해서도 유구무언으로 보낸 1년여의 시간이 결국 자살설을 불거지게 만든 것이다.
고현정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홍상수 감독과의 만남에서부터다. 자살설에 휩싸인 채 2006년 연초를 맞이하며 어떤 심적 변화가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이는 본인이 직접 입을 열기 전까진 확인할 수 없는 사안이다. 다만 겉으로 드러난 부분만 놓고 본다면 홍 감독과의 만남이 그 시발점으로 보인다.
고현정의 연기에 대한 열정은 결혼 기간 동안에도 변함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연기파 배우로 알려진 한 후배 여배우를 집으로 초대해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며 친분을 다졌고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들의 영화는 빼놓지 않고 관람해왔다. 이런 까닭에 고현정이 애초 컴백작으로 거론된 작품 역시 허준호 감독의 <외출>이었다. 다만 10여 년만의 연예계 컴백작을 스크린 데뷔작으로 결정하는 데 대한 부담감이 커 드라마 <봄날>을 대신 선택했던 것이다. 드라마 <봄날>을 통해 예전 감각을 되찾은 고현정이 1년여의 고민 끝에 역시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명감독인 홍상수 감독의 영화 <해변의 여인>를 차기작으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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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라마 <여우야 뭐하니> 포스터. 서른세 살 노처녀에 성인잡지 기자로 분한 고현정의 변신은 신선하면서도 아직은 어색하다는 평이 엇갈리고 있다. | ||
홍 감독과의 만남에서 고현정은 활짝 나래를 폈다. 기존 출연작에서 볼 수 없었던 고현정의 솔직 담백한 모습이 스크린에 고스란히 담겨진 것. ‘지랄 같다’ ‘긴 다리를 확 잘라버리고 싶다’ 등의 거친 대사를 거리낌 없이 소화해낸 그는 “그런 표현은 누구나 평소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것 아니냐”고 얘기해 눈길을 끌었다. 적어도 고급스럽고 우아한 그는 이런 표현을 사용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세인들의 편견을 한 방에 날려 버린 것이다.
<여우야 뭐하니>에 출연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선배 배우 윤여정의 적극적인 권유 때문이다. 제작발표회에서 윤여정은 “현정이가 망설이길래 출연을 결정하도록 꼬드겼다”고 얘기해 눈길을 끌었다.
그 이유는 고현정이 갖고 있는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공주 이미지를 깨기 위해서다. “CF를 통해 쌓인 과도하게 우아한 이미지가 배우로서는 좋지 않다”는 윤여정은 “만들어진 이미지가 아닌 평소 모습을 연기로 이끌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얘기한다. 극중 모녀 관계로 출연 중인 고현정과 윤여정은 실제로도 모녀지간처럼 가깝고 살가운 사이다. 이혼 뒤 두문불출하며 지냈던 고현정의 모습이 단 한 차례 매스컴을 통해 공개됐는데 바로 윤여정의 집을 방문하는 장면이었다.
배우로서 안정적인 연기가 이뤄지면서 인간 고현정 역시 안정을 되찾은 것으로 보인다. 영화 <해변의 여인> 홍보를 위해 언론과의 인터뷰를 가지며 조금이나마 결혼 생활과 이혼에 대해 입을 열기도 했고 비슷한 시기에 재벌가 며느리가 된 노현정에게 충고의 말을 건네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갈 길은 멀다. 고현정이 참석하는 공식 자리마다 “오늘 주제가 아닌 사생활 관련 질문은 피해주세요”라는 사회자의 멘트가 뒤따르고 보디가드를 대동하는 등 튀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아직도 풀어놓지 못한 채 짊어지고 가는 짐이 많은 것 같다.
<여우야 뭐하니>를 통해 다시금 최고 인기 톱스타의 자리를 넘보고 있는 고현정, 그가 좀 더 편하고 거침없이 자신만의 질주를 펼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