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타고 코스닥 타고 그들이 돌아왔다
그러나 실상은 정반대였다. 연예계가 산업화하는 동안 조폭은 더 빠른 속도로 진화했고 이제는 검찰 수사망에도 잘 걸리지 않을 정도로 고도화된 수법으로 공존공생을 이어가고 있다. 심지어 연예계의 산업화를 대변하는 연예기획사의 코스닥 상장과 연예인과의 계약 과정에도 조폭이 깊숙이 연관되어 있을 정도다. 떼어내려하면 할수록 더욱 강하게 들러붙는 연예계와 조폭의 어두운 동거를 살펴본다.
“명동 사채시장의 큰손이 A 연예기획사의 실질적인 주인이라더라.” “이번에 코스닥에 상장한 B 연예기획사의 뒤를 조폭이 봐준다더라.”
최근 몇 년 사이 연예계 참새떼들의 카더라 통신에 이런 조폭 관련 소문이 부쩍 늘었다. 하지만 카더라 통신의 정확도가 워낙 떨어지는 탓에 연예 관계자들은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최근 검찰이 이와 관련한 수사에 돌입했다는 얘기가 들려와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평소 친분 있는 검찰 관계자에게 수사 관련 협조 요청을 받았다는 한 연예 관계자는 “우회상장을 통해 코스닥에 상장한 어느 연예기획사에 대해 집중 질문을 받았다”면서 “상장 과정에서 유명한 어느 전국구 조폭의 자금을 끌어 쓴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고 보면 해당 연예기획사는 우회상장 과정부터 뒷말이 무성했었다. 그다지 자금력이 풍부해 보이지 않던 회사가 코스닥 업체를 인수해(우회상장인 만큼 표면적으로는 코스닥 업체가 연예기획사를 인수한 형태) 주식으로 큰돈을 벌었다는 부분이 석연치 않았던 것. 사채를 끌어 썼다는 소문이 팽배했지만 검찰은 이를 사채가 아닌 조폭 자금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런데 수사가 쉽지 않다. 이미 검찰은 해당 연예기획사 CEO와 그 전국구 조폭의 보스와의 각별한 친분까지는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자금이 흘러 들어와 우회상장을 통해 엄청난 차익을 챙긴 정황이 정확히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본격적인 수사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것.
이 자리에서 검찰 관계자는 “조폭이라고 무조건 쇠파이프 들고 주먹질이나 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안 된다. 조폭도 기업화된 형태로 운영되고 있어 그들이 행하는 범죄도 나날이 첨단화돼 수사가 쉽지 않다”는 고충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심지어 검찰은 관계도까지 확보해 놓은 상태다. 해당 연예기획사 임원진과 전국구 조폭 관계자의 관계도를 보여주며 여타 연예기획사와의 관계를 물어왔다고 한다.
몇몇 연예기획사의 우회상장에 조폭이 개입돼 있다는 얘기는 여의도 증권가에서도 흘러나오고 있다. 한창 연예계에 우회상장 붐이 일던 당시 여의도 증권가에선 연예계 관련 정보 수집붐이 일었었다. 그동안 증권가 정보팀에서 조사해온 연예계 관련 정보는 사소한 연예인 사생활 관련 루머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몇몇 연예기획사와 한류 스타들이 코스닥 시장을 좌우하면서 연예계 전반에 대한 정보 수집이 절실해졌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우회상장 과정과 이후 주가 변화를 예상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금의 출처 및 흐름. 이 과정에서 몇몇 연예기획사에 조폭이나 사채 자금이 들어갔다는 정보가 흘러나왔지만 정황만 포착했을 뿐 뚜렷한 증거를 확보하진 못했다. 다만 한 증권가 관계자는 “그런 정보를 바탕으로 한 주가 변화 예상이 대부분 정확히 들어맞았다”고 설명한다.
한동안 조폭이 연예계에서 다소 멀어져 있던 게 사실이다. 가장 실질적인 이유는 가요계의 오랜 불황이다. 가요계가 연예계 전체를 좌우하던 시절에는 조폭도 연예계의 일원이었다. 한창 가요계가 호황을 누릴 당시 불법 음반을 판매하는 노점상을 강력하게 압박하던 이들은 공무원이 아닌 검정 양복의 조폭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가요계가 불황으로 접어들면서 조폭도 하나둘 연예계를 떠났다. 이후 영화산업이 발전의 기틀을 닦고 드라마가 한류 붐을 주도하면서 연예계는 산업화 단계로 접어들었다. 연예기획사가 코스닥에 상장해 기업의 면모를 갖췄고 스타의 위상 변화는 각종 연예계 비리를 근절해 나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조폭이 낄 틈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이는 편견일 뿐 더 빠르게 산업화한 조폭이 더욱 복잡하고 치밀한 경로를 통해 조용히 연예계로 재입성한 것이다.
조폭이 뒤에서 검은 자금을 투자해 차익만 챙기는 수준이라면 그들이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특히 연예인과 소속사 계약 관련 다툼에 조폭이 조직적으로 개입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부터 연예계에서 나돌기 시작한 충격적인 소문이 이런 분위기를 입증한다.
소문의 주인공은 몇몇 프로그램에서 리포터로 활동해온 한 20대 초반의 여자 연예인 A 양. 지속적인 활동으로 지명도를 쌓은 A 양은 얼마 전 소속사를 옮기려 했으나 실패한 뒤 활동이 뜸해졌다. 그런데 그 이유가 조폭의 협박 때문이라는 소문이다. 소속사에서 보낸 조폭들이 A 양의 집을 찾아가 A 양과 어머니에게 심한 폭력과 협박을 가했다는 것. 더욱 놀라운 사실은 A 양의 소속사 CEO가 명문대 출신의 엘리트라는 것. 연예기획사가 기업화하면서 일반 (대)기업 출신 인사가 CEO로 영입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그런데 조폭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엘리트 출신 CEO가 조폭을 동원해 소속 연예인을 협박하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이 기획사 외에도 몇몇 엘리트 출신 CEO들이 연예계 적응을 위해 조폭과 근거리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비록 제한된 일부의 이야기지만 조폭과 연예계의 연계 구도를 청산해 줄 것이라 믿었던 그들이 오히려 조폭을 끌어들이는 촉매제가 되고 있는 모양새다.
요즘 들어 연예인이 소속사를 옮기는 과정에서 법정 다툼이 벌어지는 경우가 흔하다. 혹자는 이를 두고 그만큼 연예계가 깨끗해졌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상당수인 것으로 보인다. 연예인 노예 계약 실태가 크게 줄어들며 재계약이나 계약 파기 과정에서 소송이 제기되는 사례가 급증했는데 이 과정에 조폭이 개입하는 경우가 빈번해지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섹스비디오까지 동원해 연예인을 압박하는 경우도 있다.
얼마 전 요즘 최고의 주가를 올리는 여자 연예인 B 양이 소속사와 계약 파기 관련 다툼을 벌였는데 당시 소속사 CEO의 측근을 통해 B 양 섹스 비디오가 존재한다는 얘기가 흘러 나와 눈길을 끈 바 있다. 조폭과 마찬가지로 사라진 줄 알았던 계약 파기를 대비한 보험용 섹스비디오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세계화 역시 연예계보다 조폭이 더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특히 야쿠자와 같은 해외 조작과의 연대를 통해 요즘 조폭은 해외 사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한류도 중요한 사업 부문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한류와 관련해 해외에서 열리는 각종 행사(팬 미팅, 콘서트 등)에 조폭들이 관여하고 있다는 것. 특히 연예인 섭외 과정에서 협박이나 알력이 동원되곤 한다. 최근 화제가 된 조폭 출신의 김태촌이 권상우를 협박했다는 얘기도 크게 보면 이에 해당된다. 김태촌 본인이 협박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지만 일본에서 예정된 행사에 권상우가 참석을 거부한 직후 두 사람이 전화 통화를 한 것은 사실로 드러났다. 검찰이 수사를 시작한 만큼 곧 누구의 말이 맞는지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검찰 주변에선 김태촌이 아닌 또 다른 조폭도 당시 권상우의 일본 행사에 관여했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연예인이 부와 명예를 얻는 것은 그들을 사랑하고 성원하는 팬들에 의해서다. 그런데 연예인과 팬들 가운데 놓여있는 조폭이라는 불법적인 장벽이 양측의 교류를 힘들게 하고 있다. 검찰의 적극적인 수사와 동시에 연예계 종사자들의 의식 변화가 이뤄져 하루 빨리 연예계와 조폭의 어두한 동거가 청산돼야 할 것 같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