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지기’에 찔린 ‘뽕남뽕녀’ 떨고 있다
▲ 택배 이미지는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더욱 위태로운 부분은 신고를 안 한, 또는 못한 연예인들에게 있다. 행여 도핑테스트를 받지 못한 상황, 다시 말해 현재 마약류에서 자유롭지 못한 연예인의 경우 협박에 순순히 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던지기 수법’의 협박 사건이 잘못하면 대대적인 연예계 마약 파문으로 확산될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된다.
“애초 내가 협박 소포를 받았을 당시에는 이를 검찰에 신고한 뒤 일이 어느 정도 일단락됐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몇 달 뒤 후배 가수로부터 ‘이승철에게 같은 내용의 소포를 보냈는데 응하지 않았다. 그가 어떤 보복을 당하는지 보고 입금 여부를 결정하라’는 내용의 편지와 소포를 받았다는 얘기를 듣고 얼마나 소름이 끼쳤는지 모른다.”
현재 수사 기관에 ‘던지기 수법’의 협박을 받았다고 신고한 연예인은 모두 다섯 명. 이 가운데 가수 이승철이 대표로 나서 취재진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그가 밝힌 범죄 행위 일체는 말 그대로 충격이었다.
수법은 마약유통조직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던지기’였다. 마약을 소포(또는 택배) 등으로 보내거나 소지품(또는 차량) 등에 몰래 숨겨놓은 뒤 피해자가 마약을 소유하고 있다거나 마약을 복용했다고 수사기관에 알리겠다고 협박하는 수법이 바로 ‘던지기’다.
인기 연예인, 특히 마약류와 관련돼 이미 전과가 있는 이들이 그 대상이 됐다. 협박은 소포를 통해 이뤄졌다. 소포 안에는 필로폰이 들어있는 일회용 주사기가 여러 개 들어있었고 협박 내용을 담은 편지가 같이 보내졌다. 협박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너도 모르는 사이에 필로폰 단속에 걸리게 하겠다” 내지는 “필로폰 투약 사실을 알고 있다” 등이었다. 또 “받은 물건이 뭔지 잘 알 거다. 나한테 목매달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게 됐다”는 내용의 편지도 있었다. 결국 원하는 것은 거액의 돈으로 이를 입금하지 않을 경우 수사기관에 신고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현재 수사는 검찰과 경찰에서 각기 이뤄지고 있다. 그 이유는 피해 연예인 다섯 명이 각기 다른 수사 기관에 신고했기 때문이다. 이승철과 또 다른 가수 A 씨의 신고를 받은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과 개그맨 B 씨의 신고를 받은 강남경찰서 등에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수사 기관에선 다섯 명의 연예인을 협박한 범인이 동일범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소포 내용물(일회용 주사기 개수나 들어있는 필로폰 양)과 편지 내용(협박 내용과 입금 방법)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모두 유사한 수법인데다 비슷한 시기에 연쇄적으로 이런 범행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협박 소포에 들어 있는 필로폰이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가량에 달해 마약 관련 범죄 조직이 계획적으로 이 같은 범행을 벌이고 있는 것일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검·경이 수사 관련 기초 정보조차 공유하지 않아 수사 공조보다는 수사 경쟁을 벌이는 양상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지난 5일 ‘던지기’ 사건 피해 연예인 ‘대표’로 기자회견을 하는 이승철. 그는 도핑테스트까지 받아야 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현재까지 드러난 수사 성과는 용의자로 보이는 30대 초반의 남성이 CCTV에 찍혔다는 부분이다. 지난 4일 강남 경찰서는 개그맨 B 씨에게 협박 소포를 배달한 30대 초반의 용의자가 폐쇄회로 TV에 찍혔다고 발표했다. 단순 택배회사 직원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물건수령증이나 영수증을 요구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용의자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수사 기관이 이번 사건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것은 이미 한 달 반에서 두 달가량이 되어가는 데 CCTV 외에는 별다른 단서를 잡지 못한 채 표류 중이다.
결과적으로 검·경이 합동수사를 시작하는 등 수사 규모를 키우는 게 하나의 방법으로 제시되고 있는 데 그럴 경우 연예계에 거대한 마약 후폭풍이 몰려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던지기 수법으로 협박 받은 연예인이 신고한 다섯 명 말고도 여럿 더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수사기관에 협박당한 사실을 신고한 연예인 다섯 명은 마약 관련 도핑 테스트를 받아 마약류 투약 혐의에서 자유로워진 상황이다. 이승철은 “입금에 응하지 않아 그들이 내가 먹는 음식이나 물에 몰래 마약을 넣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럴 경우 구제받으려면 도핑 테스트를 받아야 한다는 권유를 듣고 이에 응했다”면서 도핑 테스트를 받은 경위를 설명했다. 다른 연예인들 역시 같은 이유로 도핑테스트를 받아 음성 반응을 얻은 상황. 그런데 “필로폰 투약 사실을 알고 있다”는 협박 편지 내용처럼 실제 필로폰을 투약하고 있는 연예인의 경우엔 도리 없이 그들의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큰 문제는 이와 유사한 마약 관련 협박 사건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연예관계자들은 예전부터 유사한 사건이 있어왔으나 협박 상대가 조직폭력배로 알려져 무서워서 피해왔다고 얘기한다. 또한 CBS <노컷뉴스>에 따르면 지난 2002년에도 비슷한 마약 관련 협박 사건이 있었으나 당사자들이 신고하지 않고 쉬쉬하며 넘겼다고 한다.
연예계가 이번 사건이 하루 빨리 종결돼 범인이 검거되길 원하면서도 수사가 확대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가 여기 있다. 범인 검거가 늦어져 다른 마약류 관련 전과가 있는 연예인 전반으로 수사가 확대될 경우 협박당한 사실을 파악하기 위해 시작된 수사가 엉뚱하게 연예계 전반의 마약류 투약 여부 수사로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범인이 검거된 이후 협박에 응해 돈을 입금한 연예인 리스트를 수사기관이 확보할 경우에도 그들의 마약류 투약 여부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하다. 결국 이번 던지기 수법의 협박 사건이 연예계 전반의 마약 관련 수사로 연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얘기다.
10년 넘게 가요계에서 활동해온 한 연예관계자는 “얼마 전부터 검·경이 대대적인 연예인 마약 관련 수사를 벌이기 위해 조사 중이라는 소문이 있었지만 그냥 의례적인 조사인 줄 알았다. 이런 협박 사건이 실제로 있었는지는 전혀 몰랐다”면서 “하루 빨리 범인이 검거되길 바라면서도 행여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 한류 열풍에 찬물을 끼얹는 게 아닌지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물론 이런 걱정에 앞서 연예인이 필로폰을 비롯한 마약류의 손길에서 벗어나는 게 우선이고 아직도 그런 연예인이 있다면 응당한 법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 이번에 신고한 다섯 명의 연예인처럼 완벽하게 마약 관련 의혹에서 자유로운 연예인들만 있다면 이와 유사한 협박 사건도 사라질 수밖에 없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