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액션’ 박사모 ‘친박’도 외면
▲ 지난 3월22일 미국 방문 후 귀국하는 박근혜 대표를 박사모 회원들이 환영하고 있다. 오른쪽은 강재섭 원내대표. | ||
박근혜 대표에 우호적인 원내외 세력들이 명실상부한 주류를 형성하며 위상을 과시했던 것도 잠시, 향후 당 운영과 2007년 대선 레이스에 대해 이견을 노출하기 시작하면서다. 내부 역학구도와 ‘대안 부재론’에 근거해 ‘전술적으로’ 박 대표 편에 섰던 중진그룹들이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등 외곽 친위세력의 급격한 행동반경 확대 움직임에 브레이크를 걸고 나섰기 때문이다.
재보선 승리를 계기로 내친 김에 ‘박근혜 대세론’을 굳히려는 친위그룹과 아직은 이에 대해 반신반의하고 있는 ‘비판적’ 친박그룹 간에 본격적인 헤게모니 쟁탈전이 시작된 것이다.
범 친박 진영 내 갈등은 외형상 박사모의 선거 후 행보에 대한 비판론에서 촉발됐다. 재보선 직후 일부 박사모 회원들이 이재오 홍준표 권철현 원희룡 남경필 정병국 고진화 배일도 의원 등 ‘반박’ 핵심 8명에 대한 ‘축출’을 주장하며 논란을 일으킨 데 이어 최근엔 조직 차원에서 ‘당 접수’ 선언으로 비칠 수 있는 행동계획을 발표한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박사모는 14~15일 충북 충주 충주호리조트에서 1백80명의 핵심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워크숍을 가졌다. 지난해 3월17대 총선을 앞두고 박 대표가 ‘탄핵 후폭풍’에 허덕이던 한나라당의 ‘구원 투수’로 나선 것에 발맞춰 창립된 후 처음 갖는 대규모 정치집회였다. 박사모는 토론을 통해 향후 활동방향과 관련, “2007년 박 대표의 대선 승리를 위해선 한나라당부터 개혁돼야 한다”며 “회원들이 한나라당 책임당원으로 가입, 당 개혁과정에 박사모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해 나가야 한다”는 입장을 정리했다.
박사모는 이 같은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현재 3만4천 명 수준인 회원 수를 연말까지 10만 명으로 늘리고, 이중 최소한 5만여 명은 한나라당 책임당원으로 가입하도록 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른바 박사모판 ‘10만 양병설’과 ‘5만 결사대론’이다. 박사모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당내에서 보수세력을 위장해 활동하면서 박 대표를 흔드는 진보세력들과의 일전도 불사하겠다”(최진무 워크숍 준비위원장)는 등 반박 진영에 대한 선전포고도 서슴지 않았다.
박사모가 민감한 이슈인 당내 대권주자들 간의 ‘역할 분담‘을 거론하고 나선 것도 당내 갈등을 증폭시킨 계기가 됐다. 정광용 박사모 회장은 17일 평화방송의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 출연, ‘한나라당 내에서 박 대표의 라이벌인 이명박 서울시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추진력이 대단한 분이다. 박근혜님이 대통령이 되고 이명박 총리가 되면 얼마나 멋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고 말해 파문을 낳았다.
정 회장은 한걸음 더 나아가 ‘이 시장측에서는 오히려 이명박 대통령, 박근혜 총리면 좋다고 주장하지 않겠는가?’라는 질문에 “이 시장과 박 대표와의 지지율을 보거나 그분들이 제시하는 국가 비전을 보거나 할 때 그 부분은 좀 표현이 이상하다”며 사실상 ‘이명박 불가론’을 펴기도.
박사모가 보여준 일련의 ‘파격 행보’는 소장파와 친 이명박계 등 반박 진영은 물론 당내 친박그룹 내에서도 비판을 불러왔다. 당장 강재섭 원내대표와 맹형규 정책위의장, 김무성 사무총장 등 당내에서 ‘박근혜 체제’를 뒷받침하는 핵심 중진들이 비판대열의 선두에 섰다. 강 원내대표는 “특정인을 사랑하는 박사모가 당을 시끄럽게 하는 사람들을 증오하면 안된다. 어떤 게 당에 좋은지 신중하게 해야 한다”고 자제를 당부했고, 맹 의장과 김 총장도 각각 “박사모는 ‘노사모’와 달라야 한다. 자신들만이 ‘절대 선’이라는 독단에서 벗어나야 한다”, “박사모가 너무 정치에 간여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 것도 좋지 않다”며 ‘일침’을 가했다.
특히 당내 대권레이스와 관련해 박 대표의 ‘잠재적 경쟁자’로 평가받는 강 원내대표는 4·30 재보선 압승의 원인과 당 혁신에 대해 박사모 등 박 대표 친위세력의 견해와 상반된 주장을 펴 눈길을 끌고 있다. 강 원내대표는 19일 당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정말 한나라당은 변했는가? 그래서 지난 재보선에서도 압승을 거둔 것인가?”라고 자문한 뒤 “긍정보다는 부정이 더 많으리라. 재보선에서 이기고 정당지지도가 크게 앞서고, 뒤지던 인터넷에서 앞섰다고 새로운 틀을 만들게 되었다고 착각하지 말자”고 밝혔다.
강 원내대표는 특히 재보선 이후 박 대표 주변을 중심으로 현재 진행중인 당 혁신위원회 활동에 대해 ‘무용론’이 커지고 있는 점과 관련, “기존의 틀을 고수하면서 당의 혁신을 논하려 한다면 이미 혁신이 아니라 안주일 뿐이다. 10년의 야당생활에 안주하면서 대한민국을 이끄는 원동력을 만들 수는 없다”고 비판하기도.
이를 두고 강 원내대표와 가까운 한 재선 의원은 “3월 중순 원내대표에 선출된 후 그동안 ‘투톱’ 체제 안착을 위해 제 목소리 내기를 자제해 온 강 원내대표가 ‘박근혜 대세론’에 대해 본격적인 견제에 나선 것으로 봐야 할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친박그룹의 이 같은 흐름은 외형상 박사모가 당내 분란을 야기시키고 있는 데 대한 비판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이면에는 원내에서 계보를 할 만한 직계 세력이 없는 박 대표가 외곽 대중조직을 강화해 당을 ‘직할 통치’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담겨 있다는 해석. 특히 박사모의 공언대로 5만여 명의 회원들이 책임당원으로 당에 진입할 경우 당 운영과 주요 선출직 후보 결정과정에서 ‘박심’이 관건이 되고, 이 경우 ‘비판적 지지’ 노선을 걸어온 당내 친박그룹이 박 대표 친위그룹의 ‘눈치’를 봐야 하는 처지에 빠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박 대표는 일련의 당내 분란에 대해 소장파들은 원색적으로 비난하면서도 박사모에 대해선 애정을 표시해 상당수 친박 성향 중진들로부터도 “저래선 안되는데…”라는 우려를 사고 있다. 박 대표는 지난 16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박사모 활동에) 내가 간여할 수는 없지만, 박사모의 격려가 내게 큰 힘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박사모도 고칠 점이 있다면 고쳐야 되겠지만 선거 때 당원들은 한표라도 더 얻으려고 발이 부르트도록 뛰어다니는데, 인터넷 게임이나 하고 한나라당에 악영향 미칠 인터뷰를 하는 사람들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박 대표의 언급은 소장파 핵심인 원희룡-남경필 의원을 직접 겨냥한 것. 원 의원은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 ‘카트라이더란 게임에 빠져 있다’고 밝힌 바 있고, 남 의원은 한 인터넷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대로 가면 한나라당의 집권은 어렵다”고 주장한 바 있다.
당내에선 박 대표측이 그동안 자신의 미니 홈피에서 가상 ‘친족’ 개념인 1촌을 맺거나 공식 홈페이지에 회원가입한 네티즌들을 한데 묶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도 예사롭게 보지 않고 있다. 미니 홈피 개설 후 1년여 만에 3백만 명에 가까운 방문자를 기록하고, 1촌이 1만여 명에 이를 만큼 온라인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박 대표가 이들에 대한 직접 관리에 나선 것. 이 경우 박 대표의 대중적 파괴력은 더욱 배가될 수밖에 없고, 자연 당 운영에 친위그룹의 입김도 커질 것이란 우려 섞인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