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제자리에 있을 때 아름답다 - 8
금은제 라마탑형 사리구. 사진출처=보스턴미술관
일제 강점기 이래 한국은 도굴꾼들의 천국이었다. 도둑들은 귀신같은 직감과 안목으로 유물이 있을 만한 곳들을 파헤쳤다. 수많은 유물들이 도굴됐다. 보통사람에게 분묘를 파괴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무덤 속에서 나온 물건은 화를 부른다고 믿었다. 집안에 들이는 것조차 꺼렸다. 무덤 속에 있는 부장품이 돈이 된다는 것을 알려준 이는 일본의 도굴꾼들이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거치면서 막강한 군사력을 보호막 삼아서 ‘굴옥(堀屋)’이라는 도굴단까지 등장했다. 관이나 학자를 중심으로 한 문화재 반출도 많았다. 하지만 도굴꾼과 골동품점이 빼돌린 유물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당시 일본 고미술상의 활약은 대단했다. 특히 야마나카 사다지로(山中定次郞)의 야마나카 상회(山中商會)는 오사카에 본점을 두고 뉴욕, 보스턴, 파리, 런던 등에 지점을 두고 있던 세계적으로 유명한 동양미술상이었다. 간송은 당시 한옥 15채의 가격을 지불하고 야마나카 상회에서 ‘혜원 전신첩’을 사들였다. 야마나카 상회를 비롯해, 일본의 고미술상들은 도굴꾼과 골동품 점을 통해 헐값으로 유물들을 사들였다. 그리고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문화재의 전시회를 열었다. 서구열강의 박물관이나 미술관, 개인수집가들이 이들을 대규모로 사들였다.
미국 보스턴미술관은 고려시대의 은제 금도금 주전자와 받침(승반·承盤) 세트를 소장하고 있다. 1935년 5월 2일 야마나카 상회 뉴욕 지점에서 구입한 유물이다. 고려시대의 은제 주전자 중 유일하게 현존하는 유물이다. 조형성과 제작 기법 면에서도 고려시대 은기(銀器) 중 최고 수준으로 평가된다. 이와 쌍벽을 이룰 만한 고려시대 은제 유물이 또 하나 있다. 금은으로 만든 라마탑형 사리구다. 사리보탑은 22.5㎝로 금은제 도금의 공예 소품이다. 티베트의 라마교 사원에서 볼 수 있는, 위가 넓고 밑이 좁아지는 불탑모양을 하고 있다. 사리구의 내부에는 높이 약 5㎝의 팔각원당형의 소형 사리탑 다섯 개가 안치되어 있다. 각각의 탑신에 새겨진 명문으로 부처 진신사리와 당대의 고승인 지공스님, 나옹스님 등의 사리가 함께 있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보스턴 미술관이 1939년 야마나카 상회에서 구입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은제 금도금 주전자와 받침. 사진출처=보스턴미술관
2004년 불교계에서 라마탑형 사리구가 보스턴미술관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4년 뒤인 2008년 5월 조선불교도연맹으로부터 사리구 반환과 관련한 일체의 법률적 권한을 위임받아 그해 12월부터는 보스턴미술관과의 반환 협상을 시작했다. 이후 문화재제자리찾기(대표 혜문스님)를 필두로 불교계는 보스턴미술관 측에 지속적으로 사리구의 반환을 요구했다. 미술관 측은 사리구의 반환은 (불법유출 여부가 확인되지 않아서) 불가능하지만 종교적 신성물인 부처님과 고승들의 사리는 원산국으로 반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문화재청이 사리구와 사리를 분리해서 반환하는 데 반대하였고 답보상태에 있다가 2011년 정부가 태도를 바꿨다. 2013년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 혜문스님이 보스턴미술관 측과 다시 협상에 들어갔으나 “한국 정부가 사리구 없는 사리는 안 받겠다고 거절했기 때문에 돌려줄 의사가 없다”는 답만 들었다.
환수 과정에서 민간단체와 정부 간의 손발이 맞지 않아 반환 자체가 불투명해져버린 것이다. 앞서 소개했던 문정왕후 어보 환수과정도 민·관의 전략이나 실행계획상의 엇박자가 드러났다. 불법 유출되거나 약탈된 해외 소재 우리 문화재를 환수하는 일에, 국외소재문화재재단 등 정부가 전적으로 맡아서 나서기에는 아무래도 외교적 부담이 크다. 따라서 환수 과정에서 불법유출 여부 연구는 학술기관의 참여가 필요하다. 초기 환수협상 단계에선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한 민간의 참여가 긴요하다. 최종 단계에 들어서면 어차피 정부에 반환하는 형태라 정부도 일정 부분 개입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정부와 민간의 역할 분담이 중요하다.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 혜문스님은 “무조건 ‘우리 것이니까 돌려줘!’가 아닌 ‘돌려줄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 문화재 환수의 비법이라고 말한다. ‘모든 물건은 제자리로 돌아간다’는 ‘환지본처(還至本處)’의 믿음으로 문화재 환수를 추진해야 한다. 문화재는 제자리에 있을 때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