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좋아 99편이지 내 초기작 가운데는 부끄러운 작품들도 많아. 그래서 100번째라는 데 별 의미를 두고 싶지 않아.”
지난 2004년 영화 <하류인생> 기자시사회가 끝난 직후 극장 뒤편 계단에서 홀로 담배를 피우던 임권택 감독이 기자에게 들려준 얘기입니다. ‘별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얘긴 했지만 99번째 영화를 내놓으며 다시 100번째 영화를 준비해야 하는 고뇌 섞인 거장의 얘기가 오래도록 기자의 귓가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100번째 영화를 준비하는 3년여의 시간 동안 임 감독에게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흥행 제일주의, 스타 우선주의가 만연해진 충무로에서 흥행보단 작품성, 스타보단 배우를 고집한 거장의 100번째 영화에 투자가 쉽게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태흥영화사 이태원 사장과 임 감독이 결별해 충무로 최고의 트로이카였던 ‘제작 이태원-감독 임권택-촬영 정일성’이 깨지는 아픔도 있었습니다. 다행히 이번에도 촬영은 정일성 감독이 맡았습니다.
영화 <천년학>의 개봉을 앞둔 요즘 상황에서 충무로는 계속 위기에 노출돼 있습니다. 나날이 한국영화 극장 점유율이 하락하고 투자 열기도 싸늘해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스크린쿼터까지 절반으로 축소돼 마지막 보루마저 잃어버린 형국입니다.
지난 99년 영화계의 스크린쿼터 사수 투쟁 당시 임 감독은 삭발 시위에 앞장서기도 했습니다. 한국 영화계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거장이 삭발까지 감수하며 지켜온 한국 영화계가 그의 100번째 영화가 개봉되는 지금 커다란 위기에 봉착해 있습니다.
스타 권력화는 물론이고 스타 감독의 권력화까지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요즘, 세계적인 거장인 임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이 영화인들 스스로 반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됐음 하는 바람입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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