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현장서 놀았다가 ‘날벼락’
▲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 ||
젊은 층 사이에 케타민 투약자가 암암리에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검거가 사회적으로 상당한 의미를 갖고 있는데 반해 포커스는 엉뚱하게 연예인에 맞춰지고 있다. 연예인 가운데서도 케타민을 투약한 이들이 있을 수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이 사건의 본질 자체보다 더 큰 관심사로 부각돼 버렸기 때문이다.
일부 부유층 유학파 자제들 사이에 해외에서 들여온 케타민이 암암리에 확산되고 있다는 얘기는 이미 몇 년 전부터 나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확한 유통 경로는커녕 투약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간이 시약조차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검찰과 경찰의 케타민 투약자 검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꼬일 대로 꼬여 있는 실타래를 풀어낸 이들은 MBC 취재진이었다. 케타민 투약과 관련된 첩보를 입수한 MBC 취재진이 지난 3월 25일 새벽 두 시경 마포경찰서 강력 2팀과 함께 현장을 급습해 여덟 명의 마약 투약 용의자를 검거한 것. 당시 MBC 취재진은 형사 두 명과 함께 서울 청담동 소재의 한 클럽에 잠입했는데 취재진의 카메라에는 용의자들이 화장실에서 하얀 가루를 흡입하는 충격적인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형사들은 여덟 명의 용의자를 전원 검거해 마포경찰서로 연행했지만 마약류 투약 여부를 가리는 간이 시약 테스트에서 전원 음성 반응을 받아 석방조치했다. 그런데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정밀 감정 결과 이들이 투약한 하얀 가루가 ‘K’ 또는 ‘special K’라고도 불리는 신종 마약, 케타민으로 확인되면서 마포경찰서가 석방된 용의자들을 다시 검거했던 것.
문제는 일부 연예인이 이들과 함께 케타민을 투약했을 가능성이 제기된 데 있다. 이들의 케타민 투약부터 검거 과정을 단독 취재한 MBC는 당시 클럽 VIP룸에 20여 명의 연예인이 있었는데 일부 용의자가 연예인이 있던 VIP룸을 드나들었다는 사실, 그리고 용의자 가운데 일부가 인기 가수 A와 함께 클럽을 찾았다는 사실 등을 근거로 연예인 연루 가능성을 제기했다.
게다가 인기 연예인이 주최한 한 란제리쇼와 이번 사건이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마약 광풍은 더욱 요란해졌다. 당시 란제리 쇼에 참석했던 연예인의 명단이 공개된 터라 이들 연예인의 실명까지 거론되며 누가 수사 선상에 올랐는지에 관심이 집중된 것. 그런데 확인 결과 용의자들이 검거된 시점은 문제의 란제리 쇼가 열린 날이 아닌 그 며칠 전이었다. 결국 란제리 쇼에 참석한 연예인이 당시 클럽에 있었다는 20여 명의 연예인은 아니라는 얘기.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마포경찰서 강력 2팀 관계자는 “동행 취재한 MBC 취재진의 카메라에 당시 연예인 20여 명이 담겨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그렇지만 그들이 케타민을 투약했다는 증언이나 정황이 전혀 없어 연예인은 수사 선상에 올라 있지 않다”고 얘기한다. 연예계로 수사 범위를 확대할 계획은 전혀 없다는 말이다. 엉뚱하게 란제리 쇼가 연관된 것으로 알려진 데 대해서는 “용의자들의 증언을 통해 그들이 란제리 쇼와 관계가 있다는 것은 포착됐지만 란제리 쇼가 열린 날 이들이 검거된 것은 아니다”고 설명한다.
▲ 부유층 자제들이 클럽 화장실에서 마약류인 케타민을 흡입하는 모습이 지난 25일 MBC 카메라에 포착됐다. MBC TV 촬영 | ||
용의자들은 유명 패션업체 사장의 친인척과 유명 패션 디자이너, 대기업 직원 등을 포함한 부유층 자제들인데 이들은 의류업과 관련해 서로 알게 된 사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들 가운데 며칠 뒤 열리는 란제리 쇼와 관계된 이들이 가수 A와 함께 클럽을 찾아 VIP룸을 몇 차례 드나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담당 경찰은 함께 환각파티를 즐기려한 게 아니라 란제리 쇼를 앞두고 업무적인 이유로 만남이 이뤄졌던 것으로 보고 있다.
VIP룸에 있던 연예인 가운데 일부가 이들과 함께 케타민을 복용했다고 보기 어려운 정황은 또 있다. 이번 경우처럼 클럽에서 마약류를 투약하고 환각파티를 벌이는 경우 룸을 잡고 놀면서 그곳에서 마약류를 투약한다고 한다. 마포경찰서 관계자는 “용의자들이 룸을 예약하려 했으나 클럽에 하나 뿐인 VIP룸을 연예인들이 먼저 예약하는 바람에 룸이 아닌 플로어 테이블에서 술을 마시게 됐다”면서 “그래서 몰래 화장실을 찾아 케타민을 투약했던 것”이라고 설명한다. 만약 연예인들도 함께 환각 파티를 벌이려했다면 용의자들이 VIP룸에 합석해 편안하게 케타민을 투약했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같은 클럽에 있었다, 친분이 있어 잠깐 어울렸다 등의 이유만으로 연예인들을 수사 선상에 올릴 수는 없다”며 “최소한 용의자 진술은 있어야 하는 데 연예인 관련 진술은 전혀 없었다”고 단언했다. 이날 클럽에 있었던 연예인들 역시 비슷한 반응이다. 그 자리에 있던 연예인 B의 매니저는 “용의자들이 오가는 걸 잠시 보긴 했지만 술자리에 합석한 일행은 아니었다”고 설명한다.
또한 용의자들이 검거된 클럽 관계자는 “주말이면 1200여 명의 손님이 들어오는데 이 가운데 연예인은 몇 명 되지 않는다. 그런데 마치 연예인이 많이 모이는 클럽인 것처럼 비춰지고 있다”면서 “연예인이 20여 명 있었다고는 하지만 모델 등이 대부분으로 인기 연예인은 많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결과적으로 이번 케타민 투약자 검거와 연예인이 관련된 것처럼 알려진 것은 일부 언론이 경찰 수사 내용보다 앞서간 보도를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번 사안은 얼마 전 마약류를 투약했다는 소문에 휘말린 신하균이 경찰에 자진 출두해 테스트를 받아 스스로 혐의를 벗었던 당시처럼 해프닝 정도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신하균의 경우 검거된 용의자 진술 과정에서 이름이 거론돼 수사 선상에 올랐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정도의 진술도 없는 상황에서 연예인 20여 명이 다시 억울한 처지가 되고 말았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형사들은 케타민 투약자가 최초로 구속된 이번 사건이 연예인 관련 의혹으로 그 의미가 퇴색되는 것을 안타까워했고, 관련 연예인의 매니저들은 일부 유학파 부유층 자제들에게 집중될 비난을 연예인이 대신 받아야 하는 상황을 아쉬워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