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반기 국정동력 확보엔 딱인데…
사정당국이 롯데그룹을 전방위 압박하고 있는 가운데, MB정권 때 특혜 의혹이 수사선상에 오를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2008년 9월 18일 당시 청와대에서 악수를 나누는 신동빈 롯데 부회장(왼쪽)과 이명박 대통령. 청와대사진기자단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경영권 다툼이다. 매우 실망스럽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롯데를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최 부총리는 8월 6일 기자들에게 이같이 말하며 “롯데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불투명한 기업 지배구조와 자금 흐름을 엄밀히 살펴볼 것”이라고 경고했다.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부총리가 특정기업의 문제점을 공개석상에서 언급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더군다나 최 부총리는 친박 핵심 중 핵심으로 꼽히는 실세 정치인 출신이다. 경영권을 놓고 볼썽사나운 집안싸움을 벌이고 있는 롯데를 바라보는 여권 시선이 싸늘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롯데를 겨냥한 움직임은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여론에 민감한 정치권도 재빠르게 나섰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6일 기업 총수가 가진 해외 계열사 지분을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법률을 개정하기로 합의했다. 한국과 일본에 걸쳐 416개에 달하는 복잡한 순환출자 고리를 통해 그룹을 지배하고 있는 신격호 회장 일가를 염두에 둔 법으로 풀이된다. 김정훈 정책위의장은 “적은 자본으로 순환출자를 통해 기업을 경영하는 것은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시대적 통념에 맞지 않다”며 지적했다. 김용태 정책위 부의장도 “총수가 보유한 해외 계열사 지분 현황 공시를 의무화하는 데 당정이 공감했다”고 설명했다.
우선 공정거래위원회는 베일에 쌓여있는 롯데 지배구조에 대해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했다.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광윤사를 비롯해 일본롯데홀딩스, L 투자회사 등 해외 계열사가 주요 타깃이다. 이를 위해 공정위는 롯데 측에 해외 계열사의 주주 및 임원현황과 지분에 대한 자료를 요청한 상태다. 공정위 관계자는 “롯데는 진작부터 예의주시하고 있던 그룹이다. 여러 번 일본 계열사 자료를 달라고 한 적이 있는데 받지 못했지만 이번엔 다를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해외계열사와 관련해 법 위반 사항이 드러나면 신격호 회장 검찰 고발을 비롯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금융당국도 가세했다. 금융감독원은 롯데 계열사 4곳(호텔롯데 롯데물산 롯데알미늄 롯데로지스틱스)에 대해 최대주주 대표자와 재무 현황 등의 정보를 제출하라고 했다. 이들 회사는 정체불명의 L 투자회사가 최대주주로 있는 곳이다. 한국 롯데 지주회사 격인 호텔롯데만 하더라도 L 투자회사 지분은 72.65%에 달한다. 이처럼 막대한 영향력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룹 내부에서조차 철저하게 정체가 가려진 회사에 대해 실태파악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공정위와 금감원의 이러한 조치가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에 대해선 의문부호가 달린다. 일본 이사진이 자료 공개를 거부할 경우 강제할 만한 수단이 없는 이유에서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국세청 세무조사는 롯데에게 가장 위협적인 압박이 될 듯하다. 이미 롯데 광고 대행을 하는 주 수입원으로 하는 대홍기획에 대해 세무조사를 실시하고 있는 국세청은 또 다른 롯데 계열사들을 상대로 특별조사 준비를 완료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세청 관계자는 “위에서 ‘사인’만 내려오면 된다”며 세무조사가 임박했음을 털어놨다. 불과 2년 전 주요 계열사에 대한 정기 세무조사를 실시했던 것을 감안하면 이번 조사는 경영권 다툼으로 인해 비롯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관전 포인트는 그동안 ‘친MB 기업’으로 불렸던 롯데그룹의 지난 정권 특혜 의혹이 수사선상에 오를지 여부다. 이에 대해 검찰 고위 인사는 “검찰이 안 한 게 아니지 않느냐. 못한 거다. 재계 5위 그룹을 치는 수사다. 정권 차원에서 결정해야 할 수 있다는 얘기”라면서 “롯데와 관련해 상당한 파일을 갖고 있는 상태다. 지난 정권에서 제기됐던 의혹들, 예를 들면 제2롯데월드나 인·허가 문제 등도 포함돼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복수의 사정기관들이 동시에 롯데를 조준하고 있는 것은 여권 핵심부의 강경한 기류와 무관하지 않다는 관측이다. 익명을 요구한 새누리당의 한 친박계 의원은 “신격호 회장 일가 눈에 우리나라 국민이나 정부가 보이기는 하는지 묻고 싶다. 공개적으로 말은 안 하지만 괘씸해하는 의원들이 제법 있다. 박 대통령도 롯데 사태에 대해 보고를 받고 우려를 표한 것으로 안다”면서 “검찰 수사 등은 차치하고서라도 앞으로는 롯데가 면세점을 비롯해 지금처럼의 혜택을 받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지지율 정체에 허덕이고 있는 박근혜 정부에 ‘롯데 때리기’가 호재가 될 것이라는 말도 들린다. 이에 대해 앞서의 친박 의원은 “추측일 뿐이다. 메르스로 인해 내수가 크게 위축된 상황에서 롯데 사태는 우리 경제의 마이너스다. 이는 박근혜 정부에도 악재”라면서도 “물론 반재벌 정서가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롯데를 강하게 몰아붙이면 박 대통령 지지율이 올라갈 순 있을 것이다. 임기 후반기 국정 동력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본다면 롯데를 향한 사정드라이브는 나쁘지 않은 카드가 될 수 있다”고 귀띔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