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의 인물 ‘5억 주면 합의’ 제안
지난 9년간 일관되게 무죄를 주장해온 정 PD가 증거가 철저히 조작됐다는 J 씨의 증언을 바탕으로 ‘강간미수 및 폭행치상 사건에 대한 증거조작의 진실규명과 이로 인한 정신적 피해의 위자료 청구소송’을 제기한 것. 만약 J 씨의 얘기처럼 조작된 증거로 인해 정 PD가 유죄를 선고받았음이 인정될 경우 한창 인기가도를 달리고 있는 Y는 연예계 활동에 치명타를 입을 수도 있다. 그런데 Y의 소속사 측에서 전혀 다른 주장을 펼쳐 눈길을 끌고 있다.
이번 사건은 지난 98년 여름 동남아시아의 한 섬에서 벌어졌다. 당시 무명 연예인이었던 Y는 오지체험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그 섬을 찾았다. 일행은 외주제작사 소속이던 정 PD와 카메라맨 등 3인이 전부였다.
문제는 저녁에 함께 술자리를 가진 뒤 정 PD가 Y의 방을 찾으면서 벌어졌다. 이에 대해 정 PD는 출국 일정 등을 알려주기 위한 방문이라 주장하지만 Y는 로비에서부터 흑심을 품고 따라왔다고 맞서고 있다. 귀국 이후 Y는 정 PD를 강간치상(강간미수) 및 폭력행위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검찰에 고발했고 정 PD는 6개월의 조사를 받은 뒤 강간미수죄가 적용돼 구속됐다. 구속 상태에서 1심과 2심을 거쳐 징역 1년6월 집행유예 2년의 형을 선고받는 과정 동안 정 PD의 부친은 뇌출혈로 사망했고 일본인 아내와도 이혼해야 했다.
일관되게 무죄를 주장해온 정 PD가 재심청구 기간은 물론 공소시효까지 끝난 현 시점에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Y의 전 소속사 직원이었던 J 씨의 심경변화다. J 씨가 정 PD에게 당시 재판에서 쓰인 증거가 모두 조작된 것이라고 밝혀왔기 때문. J 씨는 9년여 만에 심경변화를 일으킨 이유를 안타까운 정 PD를 돕기 위해서라고 밝히며 당시엔 소속사 직원으로서 Y를 위해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J 씨가 심경변화를 일으킨 시점이 아리송하다. Y와 전 소속사는 현재 여러 건의 소송에 휘말려 있다. 최근 법원 판결이 나왔는데 Y는 전 소속사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아냈고 전 소속사가 Y를 상대로 낸 소송은 기각되고 말았다. 법원 판결과 비슷한 시기에 전 소속사 직원의 심경변화로 인해 정 PD가 Y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자 뒷말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
이에 대해 Y의 전 소속사 측은 “J 씨는 이미 몇 달 전에 회사를 떠난 만큼 우리와는 무관하다”며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 또한 9년 전 상황에 대해 “당시 Y는 우리와 전속계약을 체결한 소속 연예인도 아니었고 친분이 있어 일을 봐줬을 뿐”이라며 “공항으로 마중 나간 J 씨에게 Y가 도움을 청해 재판 과정을 도왔을 뿐”이라고 설명한다.
결과적으로 이미 Y의 전 소속사와의 관계를 끊은 J 씨가 개인적인 판단에서 정 PD를 돕고 있다는 얘기가 되는데 이럴 경우 Y가 상당히 불리한 입장이 된다. 특히 정 PD가 유죄를 받은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주장하는 증거가 모두 조작된 것임이 밝혀질 경우 정 PD에 대한 동정 여론이 고스란히 Y에 대한 비난 여론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 조작됐다는 증거는 모두 세 가지다. ‘귀국 당시 Y의 상반신에 멍이 들어 있었다’는 Y 매니저의 증언, 멍이 든 것으로 보이는 Y의 당시 사진, 그리고 Y가 폭행당하던 와중에 찢겨졌다며 제출한 원피스 등이다. 이에 대해 J 씨는 멍든 사진은 립스틱을 이용해 멍이 든 것처럼 보이게 조작해 Y가 직접 촬영한 것이며 원피스 역시 Y가 스스로 찢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매니저 증언 역시 조작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Y의 현 소속사 측은 이 같은 주장이 모두 사실무근이라며 법정에서 명백한 진실을 밝혀낸 뒤 정 PD와 J 씨, 그리고 전 소속사 대표 등을 형사 고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Y의 현 소속사 C 대표는 “조작됐다는 증거는 당시 재판에서 증거로 채택도 되지 못한 것들이라 지금 시점에서 다시 언급할 가치도 없다”면서 “판결문에 따르면 그때 동행한 카메라맨의 증언과 정 PD가 Y의 방에 들어간 의도를 바탕으로 유죄가 결정난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누군가가 중재하겠다고 찾아와 5억 원을 요구하기도 했지만 우리는 절대 합의할 생각이 없다”며 “반드시 법정에서 진실을 밝힌 뒤 민·형사상으로 그들의 책임을 묻겠다”고 강하게 말했다. C 대표를 찾아와 중재를 조건으로 5억 원을 요구한 인물에 대해서는 정 PD와 J 씨, 전 소속사 모두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는 입장이다. C 대표는 또 당시 재판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증인으로 지목된 카메라맨도 찾고 있다.
과연 어느 쪽의 주장이 사실일지 법원의 판단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