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고 망가지고 경쟁하고… ‘방송의 꽃’ 때론 눈물겹다
▲ 종영한 KBS 드라마 <상두야 학교 가자> 현장을 찾은 리포터. | ||
연예 전문 리포터. 이처럼 그들은 방송의 제3지대에서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를 통해 시청자들이 즐겁다면 자신들이야말로 진정한 방송의 꽃이라는 믿음을 갖고 일한다.
지난 겨울 강남역 인근의 한 술집에서 의미 있는 자리가 열렸다. 공중파와 케이블 방송을 총망라한 연예 전문 리포터와 VJ(공중파에선 리포터, 케이블에선 VJ라고 호칭함) 40여 명이 한 자리에 모인 것. 적어도 6개월 이상 활동한 연예 전문 리포터와 VJ들이 한자리에 모였는데 1세대 연예전문 리포터 조영구도 참석했다.
흥겨운 술자리는 이내 연예 전문 리포터의 고달픈 삶에 대한 하소연으로 이어졌다. “연예인을 기다리느라 24시간 이상을 꼬박 대기해 봐야 진정한 연예 전문 리포터라 할 수 있다”는 리포터 김태진은 “그만큼 상처받는 일도 많고 연예인과의 인터뷰를 원활히 진행하기 위해 스스로를 비하해야 하는 상황도 많아 스트레스가 심하다. 이런 속내를 주고받을 수 있는 자리였다”고 얘기한다.
당연히 이야기는 연예인 뒷담화로 이어졌다. 리포터를 아랫사람 대하듯 하며 막말도 서슴지 않는 연예인, 인터뷰 도중에 질문 하나를 트집 잡아 두말없이 뒤돌아 나가버리는 연예인 등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온 것. 재미있는 사실은 한 리포터에게 그런 행동을 한 연예인은 꼭 다른 리포터에게도 비슷한 행동을 보인다는 점이다.
반면 매너 좋고 친절한 연예인은 어느 리포터에게나 똑같이 후한 점수를 받았다. 가장 좋은 점수를 받은 연예인은 그룹 신화의 이민우. 훌륭한 매너는 기본, 언제 어디서나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반했다는 리포터들이 상당수였다. 이 외에도 매너 면에선 신현준 현빈 김래원 MC몽 하하 등이 리포터들이 좋아하는 연예인 목록에 이름이 올랐다.
▲ VJ 서지영이 슈퍼주니어를 인터뷰 하는 모습.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경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함께 술자리를 가질 때는 동업자 정신에 하나가 되지만 취재현장에선 조금이라도 더 좋은 화면과 인터뷰를 만들기 위해 무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 대부분의 현장은 공식 행사가 끝난 뒤 방송사 프로그램 별 개별 인터뷰 시간을 준다. 가장 좋은 순서는 두 번째. 첫 번째는 아직 입이 풀리기 전이고 세 번째 이후엔 반복되는 질문에 연예인이 지치기 때문이다. 그 순서를 두고 리포터들 사이에 신경전이 벌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지나친 들이대기도 문제. 다른 리포터가 인터뷰를 위해 연예인을 힘겹게 붙잡았는데 다른 리포터가 치고 들어와 질문을 가로채는 경우가 대표적인데 이는 리포터들 사이에서도 가장 피해야 할 사안으로 손꼽힌다. 하지만 워낙 현장이 급하게 돌아가다 보니 이런 약속은 쉽사리 깨지곤 한다.
요즘 가장 심각한 사안으로 부각되는 것은 너무 튀려 하는 리포터들에 있다. 특히 VJ 윌리의 앙리 기자회견 돌발 행동은 언론이 ‘국제적인 망신’ ‘추태’라 규정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었다. 이런 현상이 이어지는 것은 튀는 리포터나 VJ가 신선한 화면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제작진이 튀기를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 이를 두고 고참급 리포터들 사이에선 지적의 소리가 높다. “진정한 연예전문 리포터는 취재 대상인 연예인을 돋보이게 만드는 것인데 너무 튀려는 성향의 리포터와 VJ들은 연예인보다 자신을 더 부각시키려 하는 것 같다”는 한 고참급 리포터는 “이런 현상이 계속되면 정보를 전달한다는 연예전문 리포터의 기본 개념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을 것 같아 걱정스럽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젊은 리포터들의 반응은 조금 다르다. 케이블 방송에서 활동 중인 VJ 서지영은 “리포터와 VJ의 개념이 조금 다른데 리포터는 ‘전달자’의 성향이 강하지만 VJ는 엔터테이너 성향이 강해 자신만의 캐릭터로 연예인을 만나야 한다”고 설명한다.
1세대 연예전문 리포터인 조영구의 생각은 어떨까. 아쉽게도 그는 “연예계 X파일 사건 이후 연예 전문 리포터로서의 인터뷰는 자제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사석에서 이런 튀는 리포터들에 대해 “연예인이 못 웃기면 리포터라도 웃겨야 한다”며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 KBS <연예가중계>에서 생생한 현장 정보를 전달하는 리포터들. | ||
수입 역시 연예인에 한참 못 미친다. 경력이나 지명도에 따라 출연료에 차이가 나지만 공중파의 경우 회당 50만~80만 원 수준이다. 케이블 방송은 평균 회당 10만~30만 원 수준. 따라서 케이블 VJ로 활동하다 공중파 리포터가 되면 당장 회당 출연료가 50만 원가량 오르는 효과가 있다. 그런데 수입 증대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각종 행사에서 MC 섭외가 들어오기 시작하고 다른 공중파 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해 활동 영역을 넓힐 수 있는 기회도 생긴다. 따라서 대부분의 케이블 방송 VJ의 일차 목표는 공중파 연예 프로그램의 리포터가 되는 것이고 실제 이런 단계를 거쳐 리포터가 된 이들이 상당수다.
그렇다고 리포터를 최종 목표로 하는 이는 드물다. 리포터를 통해 MC를 비롯한 연예인으로 발돋움하려는 이들이 많은 것. 이런 까닭에 개그맨이나 가수로 연예계에 데뷔했으나 인기를 얻지 못한 이들이 리포터로 활동하며 절치부심하는 경우도 많다.
아쉬운 부분은 연예전문 리포터의 설 자리가 나날이 줄어들고 있다는 부분이다. VJ의 주 임무가 연예인 인터뷰나 현장 취재를 맛깔나게 전달하는 것이라면 연예전문 리포터의 주된 역할은 단연 연예계 정보 전달이다. 1세대 리포터인 조영구 역시 연예인 사건사고를 주로 담당하며 유명세를 얻은 바 있다. 그런데 요즘 공중파 연예 프로그램은 리포터를 케이블 방송 VJ 수준으로만 활용할 뿐 사건 사고 등 정보성이 강한 코너에는 리포터 대신 아나운서나 기자를 주로 내세운다.
오늘도 연예계 이곳저곳에서 연예전문 리포터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스스로 방송계 3D 업종이라며 한숨을 토로하기도 하지만 그들은 늘 환한 얼굴로 화면에 등장한다. 누가 뭐라 해도 그들 본연의 임무는 시청자를 즐겁게 하며 연예계 정보를 전달하는 것. 시청자들이 외면하지 않는 이상 누가 뭐래도 그들은 ‘방송의 꽃’이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