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3(방송사 배우 작가)축도 ‘쩔쩔’, 누가 돌을 던지리오
▲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 종방연에 참석한 김수현 작가. 그는 인간 내면의 정곡을 찌르는 대사와 흡인력 있는 스토리로 드라마계의 ‘흥행 보증수표’로 알려져 있다. | ||
지난 6월 20일 SBS 목동 사옥에서 열린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 종방연 현장에 모습을 나타낸 김수현 작가는 작은 체구의 세련된 노 여사였다. 비록 체구는 작았지만 그가 내뿜는 아우라는 SBS 목동 사옥에 모인 수십여 명의 취재진, 그리고 모든 방송 관계자들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 방송국 사장급 직접 챙겨
“오늘 꼭 김수현 선생님을 뵙고 싶어 종방연에 왔습니다. 원래 다른 일이 있어 못 오신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와주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종방연을 찾은 SBS 하금열 사장의 격려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SBS를 대표해 종방연에 참석한 하 사장이 참석 이유를 드라마 관계자 격려보다 김 작가를 보기 위해서라고 밝힐 정도로 종방연의 중심은 김 작가였다.
공중파 방송 3사의 김 작가 드라마 유치 경쟁이 톱스타 캐스팅 경쟁보다 더 치열하게 벌어지곤 한다. 드라마 <부모님 전상서>의 경우 KBS 정연주 사장이 직접 나선 뒤에야 KBS가 방영할 수 있게 됐을 정도. 최근에는 유독 김 작가의 드라마가 방영되지 않는 MBC 역시 방송국 고위층 인사들이 직접 김 작가 드라마 유치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실제 그가 받는 대우와 영향력은 여느 톱스타의 그것을 상회한다. 올해 초 세고엔터테인먼트와 매니지먼트 계약을 체결한 김 작가는 곧이어 삼화네트웍스와 드라마 두 편 집필 계약을 맺었다. 그가 드라마 두 편을 집필하는 조건으로 받은 돈은 무려 36억 원. 게다가 이들 두 회사는 김 작가 영입으로 톱스타 영입을 훨씬 능가하는 주가 상승 효과까지 봤다. 이 정도면 그의 힘이 주식시장에서도 통한다는 사실이 입증된 셈.
이런 힘의 원천은 단연 시청률에 있다. 정곡을 찌르는 심리묘사로 정평이 난 김 작가의 드라마는 늘 작품성과 흥행성에서 모두 높은 점수를 받는다. 아무리 톱스타라 해도 등락을 거듭하기 마련이지만 김 작가는 늘 최상의 드라마 대본을 집필할 수 있다는 부분에서 뚜렷한 차이점을 보이고 있는 것.
비판의 소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사장은 물론 드라마국 고위급이 총출동해 김 작가 잡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분위기가 일선 PD들의 눈에 곱게 보이지만은 않은 것. SBS에서 <사랑과 야망>이 리메이크될 당시 SBS의 한 PD는 “새로운 것도 많은데 왜 예전 드라마를 다시 하려 하는지 모르겠다”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또한 김 작가의 드라마에 집착하는 것 역시 시청률 지상주의가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다. 이런 분위기에 대해 문화평론가 김헌식 씨는 칼럼을 통해 “인간의 감추고픈 본능들이 부딪치는 선정성은 최고지만 결론은 항상 유야무야되는 게 김수현 드라마의 특징”이라며 “21세기에 아직도 김수현 드라마가 통한다는 것은 한국사회의 문화적 편협성을 의미할 수도 있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 지난 20일 있었던 SBS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 종방연.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김수현 사단’ 누가 되나
사실 김 작가의 스타일은 배우들이 함께하기 힘든 타입이다. 대사와 행동은 물론 표정 하나하나까지 구체적으로 묘사된 완벽한 대본으로 유명한 김 작가는 매번 대본 연습 현장에 참석한다. 이 자리에서 김 작가는 모든 배우에게 자신의 대본에 딱 들어맞는 연기를 요구한다. 행여 조금이라도 못 미친다 생각되면 혼쭐이 난다.
이에 대해 배종옥은 “때론 엄격하시지만 그 속에 합리적인 이유가 있기 때문에 배우로서 당연하다고 받아들인다”라고 얘기한다. 하유미 역시 “만약 캐릭터 공부를 안 하거나 숙제를 덜 해오면 가차 없이 혼내신다”며 “선생님이 의도하신 대로 연기하면 칭찬도 해주신다. 정도 많고 따뜻하신 분”이라고 설명한다. 중년 연기자 송재호는 “많이 부드러워졌다. 예전의 무서운 분위기에서 푸근한 할머니의 모습으로 변했다”며 “이젠 대본 연습에 김 작가가 없으면 더 어색하다”고 말한다.
제작자나 연출자 입장에선 작가의 지나친 관여가 거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제작사 삼화네트웍스의 신현택 회장은 “드라마는 작가의 글에서 시작되는 것으로 이를 연출자와 배우들이 얼마나 소화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며 “김 작가가 직접 이를 챙기는 게 당연하고 그만큼 좋은 결과로 완성된다”고 얘기한다.
# 방송작가협회의 실력자
“20여년 전 김 작가와의 인연이 떠오릅니다. 당시 방송작가협회 이사장이던 김 작가는 저작권 및 작가의 권익 문제를 놓고 방송 3사와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었습니다. 결국 김 작가는 초유의 집필거부로 방송작가협회의 주장을 관철시킨 바 있습니다.”
<내 남자의 여자> 종방연에 참석한 SBS 시청자위원회 한승헌 위원장은 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장 재직 당시 김 작가의 모습을 이렇게 회상했다. 지난 87년부터 95년까지 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장으로 활동해온 김 작가는 지금도 고문직을 맡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방송작가들은 여전히 김 작가가 협회 내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얘기한다. 현 이사장인 박정란 작가는 김 작가의 38년지기다. 이번 표절 시비의 당사자인 류경옥 작가 역시 “김 작가와 만나게 된 계기는 다른 드라마 표절 문제와 관련해 상의를 하기 위해서였다”면서 “비록 고문이지만 그가 한국방송작가협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기에 그를 찾았던 것”이라고 말한다.
다만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한 비토 세력이 감지되기도 한다. 현 이사장인 박정란 작가의 이사장 선출 과정에서 불거진 내홍이 매스컴에 보도되기도 했는데 몇몇 작가들은 이런 내부 갈등이 심각한 상황이라고 귀띔한다.
사실 이번 취재 과정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부분은 칭찬 일변도의 현실에서 김 작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들어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취재는 고작해야 거대한 그의 뒤에 드리운 그림자의 일부를 발견하는 데 그쳤다. 그만큼 그가 완벽한 작가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문화라는 것은 정당한 평가와 비판이 겸비된 비평을 바탕으로 발전할 수 있는 영역이다. 그런데 유독 김 작가와 그의 드라마에 대해선 이런 기준이 비켜가는 듯한 모양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