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발 떨어진’ 서해 대신 내륙 타격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연합뉴스
북한군은 최초 도발 직후 서해 군 통신선을 통해 총참모부 명의로 ‘48시간 이내에 확성기를 철거하지 않으면 추가 행동에 나서겠다’고 선전포고 했다. 북한군은 또한 본인들의 선제공격자체를 부인했다. 최초 도발은 우리 군이 먼저 시작했다는 것. 일단 우리 군은 북의 도발에 대해 심리전을 계속하면서 단호히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라 주말 휴전선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다.
그런데 지난해 <일요신문>과 만난 한 대북전문가는 “북한이 내년에 한두 차례 대남도발에 나설 가능성이 아주 높다”며 “도발 지역은 이전 서해전선이 아닌 내륙의 중·서부전선이 매우 유력하다”고 넌지시 경고한 바 있다. 그가 내륙 전선을 주목한 이유는 이렇다.
“그동안 북한의 무력도발은 주로 서해전선에서 있어왔다. 북한군은 1999년 6월 1차 연평해전을 시작으로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까지 수차례에 걸쳐서 우리를 위협했다. 순차적으로 놓고 보면, 도발 강도는 점점 높아져 갔다. 이전의 학습효과를 대비해 파급력을 염두에 두고 급기야 마지막엔 민간인 거주 지역까지 타깃으로 삼은 것이다. 북한 입장에서 다시 서해전선의 도발을 통해 메시지를 던지기엔 다소 무리가 있을 것이다.”
그의 말을 종합해 보자면, 북한군 입장에서 이제 더 이상 서해전선을 통한 ‘선 공격 후 수습’ 레퍼토리가 이제 우리 정부에 먹혀들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북한의 서해전선 도발은 우리에게 있어서 그동안 많은 피해를 입긴 했지만, 이제 더 이상 전면전 이외엔 높일 수 있는 단계도 없을뿐더러 너무나 익숙하다는 것. 결국 또 다른 파급력과 효과성을 계산해보면 다음 타깃은 내륙지역이 될 것이 유력하다는 논리였다.
그리고 5년 만에 발생한 남북 간의 포격 교전이 실제 그의 말대로 내륙의 서부전선에서 발발했다. 이전과는 다른 패턴의 도발에 우리 군과 정부도 적잖게 당황한 눈치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추가 도발 위협에도 대북심리전을 계속한다는 방침이다. 북이 요구하는 대북방송 중단은 당분간 유보하며 추가 도발에 대해선 단호히 대응한다는 것.
현재 북한의 대남도발에 대한 배경을 두고 갖가지 해석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일단 북한의 요구사항에서도 알 수 있듯, 가장 큰 원인은 지난 8월 10일부터 재개한 우리 군의 대북방송이다. 지난 8월 16~26일 진행되는 ‘을지 프리덤 가디언(UFG)’ 한-미 합동군사훈련도 하나의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북한은 이미 수차례에 걸쳐 훈련 중단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8월 21일 오전 용산역에서 시민들이 북한 포격과 관련한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하지만 이러한 표면적인 이유로는 설명이 부족한 점이 없지 않다. 이미 대북방송에 앞서 북한은 목함지뢰 매설을 통해 빌미를 제공한 셈이다. 한-미 합동군사훈련은 항상 북한에 큰 위협으로 여겨졌지만, 매년 반복되어온 이벤트였다. 물론 북의 도발에 한 배경으로 작용할 수는 있지만 그 전체를 설명하기엔 부족한 셈이다. 앞서의 대북전문가는 사건 발발 직후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이에 대해 의미 있는 해석을 내놨다. 그가 주목한 것은 외부보다는 내부였다.
“지난해 북한의 대남도발 가능성을 얘기한 것은 북한 내부의 상황 탓이 컸다. 현재도 별반 다르지 않다. 김정은의 리더십 문제다. 군 내부 장악력이 이전 김정일 때와 비교해 빈약하다. 김정은에 대한 군 내부의 불만이 이미 증폭된 상태다. 젊은 지도자의 리더십에 대한 의문을 떠나서, 비자금 동결로 인해 김정은의 통치 상황이 어렵다. 특히 장성택과 현영철 처형이 군에 준 파급력이 크다. 대남도발을 통해 군 내부에 증폭된 에너지를 빼내지 않으면 폭발할 수밖에 없다. 이번 도발 역시 이러한 북한 내부 사정이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한마디로 북한과 김정은의 노림수 안에는 대남도발을 통해 군 내부의 불안한 입지를 다잡겠다는 내부적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이제 초점은 북한의 다음 행보에 맞춰진다.
북한군은 도발 직후 추가 도발을 예고했다. 김정은은 ‘준전시상황’을 선포한 후 최전방에는 완전무장 명령을 내려 우리를 압박했다. 그러면서도 북한은 군의 이러한 극단적 움직임과 함께 김양건 통전부장 겸 당 비서의 명의로 ‘관계개선’ 의지가 담긴 서한을 동시에 보냈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화전양면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일종의 퇴로를 마련하며, 이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선 공격, 후 수습’에 방점을 찍겠다는 태도였다.
결국 남북은 8월 22일, 최고위 회담에 합의하며 대화 국면에 접어들었다. 애초 ‘김양건-김관진’ 테이블을 요구한 북한의 제의에 대해 우리 정부는 황병서 총정치국장의 참석을 요구했고, 결국 북한이 이를 받아들여 ‘김관진, 홍용표-황병서, 김양건’ 테이블이 성사된 것. 현재는 마라톤 회담을 진행하면서 이번 대남도발 사안은 물론 남북관계와 관련해 폭 넓은 주제로 조율에 나선 상황이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