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쳐야 산다”…동시다발 무대 저격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청와대 반대에도 불구하고 야당과 국회법 개정안 처리에 대해 합의한 직후인 6월 2일 친박계 의원들로 구성된 국가경쟁력강화포럼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회법 개정안 위헌논란’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지난해 8월 7일 새누리당 내 국가경쟁력강화포럼 소속 의원 10여 명이 몽골을 찾았다. 의원들의 해외 방문은 흔한 일이라 ‘뉴스거리’가 될 것은 아니었지만 정치권에선 남다른 이목을 끌었다. 포럼이 사실상 친박계 의원들로 구성된 까닭에서였다. 2013년 11월 출범한 포럼은 윤상현 홍문종 이정현 의원 등 핵심 친박 의원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지난해 7·14 전당대회에서 친박 중진 서청원 최고위원이 비박계가 지지한 김무성 대표에게 패한 직후의 일이라 관심을 모았던 것이다. 당시 정가에선 이들이 몽골 현지 식사 자리에서 김 대표를 성토했다는 소문이 돈 바 있다.
그로부터 두 달 뒤 포럼은 의미심장한 세미나를 열었다. 김 대표가 중국을 방문, 개헌론을 언급해 박 대통령은 물론 친박 핵심 인사들이 불쾌함을 내비치던 때였다. ‘차기 대권 전망’을 주제로 한 세미나에서 몇몇 친박 인사들은 반기문 UN 사무총장을 대안으로 고려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김 대표를 겨냥하기 위한 노림수가 담겨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해당 세미나에 참석했던 정치권 관계자는 “대통령 임기 2년차에 주류인 친박이 갑자기 차기 대권을 논의한다는 것 자체가 의아했다. 그런데 반기문 대안론이 나오는 것을 보고 이해가 됐다. 전당대회 후 승승장구하며 유력 대선주자로 급부상했던 김 대표를 견제하고자 했던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러자 정치권에선 국가경쟁력이 아니라 친박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포럼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출범할 때부터 ‘친박 모임’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던 터였다. 이에 대해 포럼 소속의 한 친박 의원은 익명을 요구하며 “친박만 받고자 했던 건 아니었는데 아무래도 가깝게 지내는 의원들끼리 모이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비박 의원들은) 가입할 생각도 안 하더라. 이제는 공개적으로 친박 모임이라고 불러도 틀린 건 아니다”라면서 “정권을 창출한 주류로서 대통령을 뒷받침하기 위한 포럼을 만드는 게 그리 잘못된 것은 아니지 않느냐. 예전에 대부분 계파들이 비슷한 성격의 모임을 통해 대통령 국정을 도왔다”라고 말했다.
그래도 출범 초반엔 계파 색이 덜하다는 평을 받았던 포럼이었지만 올해 들어선 노골적으로 친박임을 드러내는 스탠스를 취했다. 포럼은 여야는 물론 여권 내에서조차 갑론을박이 있던 현 정부의 정책과 현안들에 대해 적극적인 지지 목소리를 냈다. 우선 지난 5월엔 포럼 소속 윤상현 의원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어 국민연금 개혁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했다. 현 정부가 사활을 걸고 추진하던 국민연금 개혁안을 놓고 여야가 치열한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던 상황에서 핵심 친박으로 꼽히는 윤 의원이 박 대통령 지원사격에 나선 것이다.
이어 6월 2일엔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던 국회법 개정안 관련 세미나를 열었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청와대 반대에도 불구하고 야당과 국회법 개정안 처리에 대해 합의한 직후였다. 참석한 친박 의원들은 유 전 원내대표가 밀어붙인 국회법 개정안에 위헌소지가 있다는 데 뜻을 모았다. 김태흠 이장우 의원 등 몇몇 강경파는 세미나 후 기자들과 만나 공개적으로 유 전 원내대표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원내사령탑이 통과시키기로 결정한 법안에 대해 특정 계파가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정치권에선 이날의 ‘결의’가 유 전 원내대표 비토 기류를 확산시킨 계기가 됐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앞서의 친박 의원은 “은근히 유 전 원내대표 편을 들던 상당수 의원들이 포럼 회의 후 뜻을 접었던 것으로 안다. 포럼 뒤에 드리워진 청와대의 그림자를 의식했기 때문 아니겠느냐”라고 반문했다.
유 전 원내대표를 몰아내는 데 성공한 친박의 다음 타깃은 김 대표가 될 것이란 게 정가의 중론이다. 겉으로는 휴전 상태로 보이지만 물밑에선 이미 친박과 비박 간 치열한 힘겨루기가 벌어지고 있다. 일부 친박 의원들은 “김무성 대표와의 ‘허니문’은 끝났다”라고 공공연히 말하는 실정이다. 정치권에선 비박과의 일전에서 포럼이 전초기지 역할을 할 것으로 점치고 있다. 권대우 정치평론가는 “과거 세종시 수정안을 놓고 친박과 비박이 싸울 때 계파 의원들이 소속된 모임들이 선봉에 섰다. 의원들로선 특정 계파를 대표해 치고받는 것보단 정책이나 공부모임에서 목소리를 내는 게 부담이 훨씬 덜할 뿐 아니라 그나마 모양새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정현 의원, 윤상현 의원.
실제로 최근 일련의 상황들을 살펴보면 친박의 변화는 뚜렷하다. 비박계와의 일전에서 그동안 각개전투 양상을 보였던 친박 의원들은 민감한 사안들에 대해 말을 맞추기라도 한 듯 비슷한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물론, 그 타깃은 김 대표였다. 북한 지뢰 도발 사건에 대해 김 대표가 “책임질 사람은 책임을 져야지”라며 여권 핵심부를 향해서 ‘총구’를 들이대자 친박 의원들은 연이어 반격에 나섰다. 윤상현 의원이 바로 “아군 지휘부 겨냥은 옳은 판단이 아니다. 표적 오인은 유감”이라며 역공에 나섰고, 이정현 의원도 “매사는 때가 있는 법이다. 지금은 아군진지에 대고 입에서 혀로 쏘아대는 탄환, ‘설탄’을 쏴대는 게 아니다”라며 그 뒤를 이었다. 김 대표가 내건 오픈프라이머리에 대해서도 이들은 공개적으로 쓴소리를 날린 바 있다. 모두 러시아를 다녀온 이후의 상황들이다.
이에 대해 정치권에선 포럼의 러시아 방문을 계기로 친박의 ‘김무성 때리기’ 수위가 높아질 것으로 점친다. 또 총선 전략이 본격적으로 가동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한 친박 전직 의원은 “러시아를 다녀온 의원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별다른 얘기는 없었고 힘을 합쳐 박 대통령을 돕자는 말이 많이 나왔다고 한다. 그것만 해도 큰 소득 아니냐. 지금까지 비박에 힘을 못 썼던 것은 내부적으로 단결하지 못했던 이유가 컸다”면서 “앞으로 총선 룰 등 국정 주도권을 놓고 김 대표 진영과 치열한 싸움을 벌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