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줄 놓고 줄다리기 ‘엄마는 헷갈려’
제대혈법 개정을 촉구하는 시민단체들의 시위 모습.
지난 7월 27일,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가족제대혈피해자가족모임’ 등 5개의 시민단체가 모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가족 제대혈 회사에 유리하게 만들어진 제대혈법(제대혈 관리 및 연구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라고 촉구했다. 가족 제대혈은 사용범위가 지극히 적지만 이를 제대로 아는 국민이 많지 않고, 실제 피해 사례가 늘고 있다고 이들은 주장했다. 또 본인만 쓸 수 있고 활용도가 낮은 가족 제대혈 대신 모든 국민들에게 열려있는 기증 제대혈로 정책 방향을 바꿔야 한다는 대책을 내놨다.
이들 시민단체의 릴레이 기자회견으로 소비자들은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포털 육아카페에는 “논란이 많아 가입이 고민된다”, “제대혈 해놓고도 심란하다”는 등의 글이 올라왔다. 집단소송 움직임도 있다. 법무법인 서영은 “가족 제대혈 이용확률, 치료 가능한 질병 등에 대한 허위 또는 과장으로 인해 제대혈을 맡긴 개인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며 온라인 카페를 통해 집단소송 참여자를 모으고 있다. 해당 카페는 개설 20일여 만에 500명이 넘게 가입했다. 법무법인 서영 관계자는 “집단소송 인원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현재 정부에서 파악 중인 가족 제대혈 사용률은 0.07% 정도다. 반면 기증 제대혈 활용도는 3% 수준이다. 또 현재 백혈병 등 혈액 관련 질환에 대해서는 기증 제대혈을 이용하고 있으나, 뇌성마비, 발달장애 등의 난치 질환 치료는 임상단계로, 상용화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가족 제대혈 업체들은 향후 발전 가능성을 내다보고 가입하는 보험 성격이며, 활용범위가 향후 더 넓어질 것이라고 강조한다.
가족 제대혈 업체들의 반격도 만만찮다. 가족 제대혈 업계 1위 기업인 메디포스트는 육아카페에 “가족 제대혈은 질병 치료에 쓸 수 없고 외국에서는 보관이 금지돼 있다”는 내용을 주기적으로 올린 이들을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고소했다. 메디포스트 관계자는 “다양한 난치병 치료에 대한 임상실험이 진행되고 있고, 실제 난치병 치료에 효과를 본 사례도 있다”며 ‘가족 제대혈 무용론’을 반박했다.
업계에서는 가족 제대혈 공격 움직임을 특정 업체, H 사가 주도하고 있다는 얘기도 돌고 있다. H 사는 2011년 제대혈법이 만들어지기 전 선제적으로 제대혈 사업에 뛰어든 곳이다. 당시 이 업체는 수백만 원의 보관료를 받던 다른 가족 제대혈 은행과 달리, 20만~30만 원 수준의 보관료를 받는 공여 제대혈 방식을 택했다. 공여방식은 기증 제대혈과 비슷하지만 제대혈의 소유권이 국가가 아닌 회사에 이양돼, 제대혈을 맡긴 산모는 적은 비용을 내고 추후에 회사에 보관된 타인의 제대혈을 공급받을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하지만 2011년 제대혈법이 제정되며 공여 제대혈 방식은 인정받지 못하게 됐다. 가족 제대혈과 기증 제대혈 두 종류로 나뉘게 된 것. H 사가 보관한 공여 제대혈은 산모에게 돈을 받고 보관을 했다는 의미에서 가족 제대혈로 분류됐고, 관련법에 따라 위탁기간이 종료돼 보관하던 제대혈을 폐기하도록 복지부는 행정처분을 내렸다. H 사는 “혜택 약정기간이 남아 있으며, 6만 6883개에 달하는 제대혈을 폐기할 시 추후에 이식이 꼭 필요한 환자에겐 치명적인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고 반발하고 나섰다.
지난 3월 H 사에 가입된 49명의 회원은 복지부를 상대로 제대혈 폐기 행정처분 취소소송을 신청했지만 7월 23일 서울행정법원에서 각하됐다. H 사 측은 지난 5월 자사 회원들에게 서신을 보내며 공여 제대혈 방식이 인정되지 않은 건 “다수의 가족 제대혈 은행들이 그들의 이권만을 생각한 로비의 결과물이며 행정기관과의 유착이라고 밖에는 달리 해석할 방법이 없다”고 주장했다. 2011년 제대혈법 대표 발의자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었다.
일련의 움직임으로 수세에 몰린 곳은 메디포스트다. 7월 말경부터 주가는 연일 하한가를 기록하고 있다. 가족 제대혈 관련 집단소송을 준비하고 있는 법무법인 서영은 메디포스트에 대해서도 소송을 준비 중이다. 허위 과장 광고를 한 혐의에서다. 이에 대해 메디포스트 관계자는 “제대혈 법 개정을 추진하는 업체 측이 복지부를 공격하는 과정에서 우리만 피해를 보고 있다. 로비나 행정기관과 유착이 있다는 건 억측이다”고 반박했다.
서윤심 기자 heart@ilyo.co.kr
제대혈 제도 무엇이 문제인가? 가족 제대혈 사용 한계 기증 제대혈 확대 추진 제대혈법에 따르면 기증 제대혈은 보관 전 HLA검사를 시행해야 하고, 유핵세포 수 기준이 가족 제대혈에 비해 높아 보관 기준이 까다롭다. 반면 가족 제대혈의 경우 유핵세포수 등의 검사를 위탁자가 동의한다면 생략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가족 제대혈 보관 기준이 지나치게 느슨해 보관량을 늘림으로써 가족 제대혈 업체가 이득을 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자신의 제대혈을 보관할 수 있는 기회가 적어 심각한 보관 부적격 사유가 아닌데도 제대혈 보관을 금지하는 것은 지나치게 국민 선택권을 제한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때 가족 제대혈 업체들의 유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산모들을 상대로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잘못된 정보가 제공되기도 했다. 현재 가족 제대혈은 소아마비, 발달지연, 소아당뇨 등에 대한 임상연구가 진행 중이며, 혈액 관련 질환에 이식한 사례가 일부 있다. 또 성인이 돼서 제대혈을 사용하게 될 때라도 맡겨둔 가족 제대혈 한 유닛만으로는 치료가 어렵다. 성장에 따라 치료에 필요한 유핵 세포 수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 관계자는 “가족 제대혈의 품질 및 안전성 관리를 강화하고 기증 제대혈을 확대하는 방안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