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부’와 연락 끊고 10년간 홀로 양육
▲ 지난 94년 장영자 씨가 어음사기사건으로 구속 수감될 당시. 암울했던 장 씨의 집안은 장손을 찾으면서 한줄기 희망을 본 듯하다. | ||
하지만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을지라도 희망은 자라나는 법. 지난해 장영자 씨 일가가 10여 년 동안 숨겨져 있던 장 씨의 손자를 찾아 일가족으로 맞아들인 사실이 확인됐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이 아이의 모친이 유명 여자 연예인 A 씨라는 부분. 그 내밀한 사연 속으로 들어가 본다.
신장암이 재발해 1년여의 투병생활 끝에 결국 세상을 떠난 김주승은 사망 사실을 지인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빈소도 공개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눈길을 끄는 대목은 비록 이혼했지만 전 부인 김 씨와 딸이 빈소와 장례식장을 찾지 않았다는 것이다.
과연 어떤 이유로 김 씨와 딸이 장례식장을 찾지 않았는지가 세간의 관심사로 떠올랐는데 당시 김 씨가 부친의 병간호로 정신이 없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김 씨의 부친이자 장영자 씨의 전 남편 김 아무개 씨가 중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도 세간에 전해졌다. 장 씨의 첫 남편인 김 씨는 이혼 이후 장 씨와의 사이에서 얻은 두 자녀를 키워왔으며 상당한 재산을 소유한 자산가로 알려져 있다. 현재는 중병을 앓고 있어 오랫동안 종합병원 중환자실에서 지내고 있다.
지난 2000년 200억 원대 구권화폐 사기사건으로 구속된 장영자 씨는 지난해 6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10년 확정판결을 받고 복역 중이다. 이 판결을 시작으로 딸 김 씨의 이혼, 첫 남편 김 씨의 투병, 게다가 김주승의 사망까지 장 씨일가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운 것.
더욱 안타까운 점은 지난 2002년 뺑소니 사고로 화제가 됐던 아들 김 아무개 씨 역시 해외 도피 생활 도중 뜻하지 않은 질병을 얻어 정상적인 생황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사고 이후 대만, 이탈리아, 중국 등을 전전하다 2004년 8월 입국과 동시에 경찰에 체포된 김 씨는 ‘대뇌수축증’이라는 희귀 질병으로 기소 전 보석 조치를 받아 석방됐다.
당시 뺑소니 사고 유가족이 끝까지 김 씨가 거짓으로 행동하는 것이라며 중한 처벌을 주장했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뒷말이 무성했던 것도 사실. 게다가 김 씨가 지난해 결혼했다는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실제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게 맞느냐’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측근들에 따르면 김 씨는 실제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한다. 이로 인해 부친 김 씨가 입원한 뒤 병간호를 딸 김 씨가 도맡고 있다는 것.
평소 장영자 씨는 아들 김 씨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다고 한다. 그가 뺑소니 사고에 휘말린 뒤 해외로 도피하자 복역 중이던 장 씨가 아들의 무죄를 주장하는 탄원서를 한 일간지에 보냈을 정도다. 아들에 대한 남다른 사랑은 부친 김 씨 역시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이런 어두운 그림자가 장영자 씨 일가를 암울하게 만들고 있는 상황에서도 희망은 자라나고 있었다. 외부에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던 장 씨 일가의 장손, 그러니까 아들 김 씨의 아이와 가족의 재회가 10여 년 만에 이뤄진 것. 90년대 중반 김 씨와 연인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났으나 아이의 모친이 홀로 키워왔다고 한다. 그런데 이 아이가 지난해 극적으로 10여 년 만에 친아버지를 만나고 장영자 씨 일가의 일원이 된 것. 더욱 눈길을 끄는 대목은 아이의 모친이 유명 연예인 A 씨라는 점이다.
80년대에 데뷔해 90년대 들어 인기가도를 달리기 시작한 A 씨가 장영자 씨의 아들 김 씨를 만난 것은 90년대 초반. 우연한 계기로 만난 두 사람은 이내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A 씨의 측근은 두 사람이 3년가량 거의 함께 살다시피 했을 정도로 뜨겁게 사랑했다고 전한다. 또한 1994년 장영자 씨가 사기혐의로 다시 4년형을 선고받아 김 씨가 힘들어하는 과정에서도 A 씨가 큰 힘이 되어 줬다고. 이렇게 아름다운 사랑을 키워온 두 사람이었지만 ‘결혼’까지 이르기에는 한계가 있었던 듯, 결국 김 씨와 A 씨는 90년대 중반 결별한다.
두 사람이 헤어질 즈음 A 씨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됐지만 ‘싱글 맘’의 길을 선택했다. 김 씨 역시 A 씨의 임신 사실을 알고 있었고 출산 당시에는 산부인과를 찾아가기도 했다고 한다. 이미 싱글 맘의 길을 선택한 A 씨는 그 후 자신의 힘으로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는 내실을 다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연예계를 떠나 유학길에 오른다. 해외에 나가면 김 씨와 자연스럽게 떨어져 지낼 수 있을 것이란 생각도 어느 정도 작용했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A 씨는 개인적인 사정 등으로 김 씨와 연락을 끊고 지냈다. 게다가 몇 년 뒤 김 씨가 뺑소니 사고로 해외 도피 길에 오르면서 두 사람의 사이는 더욱 요원해지고 말았다.
A 씨와 김 씨가 다시 만난 것은 김 씨가 지병으로 보석 조치를 받은 뒤였다. 김 씨가 해외에서 생긴 질병으로 인해 정상적인 생활이 힘든 상황이라는 소식을 접한 A 씨는 아이 아버지의 불행에 가슴 아파했고 결국 10여 년 만에 재회를 결심하게 된 것. 김 씨를 다시 만난 A 씨는 아이에게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에 아이와의 만남을 주선하게 된다. 그렇게 아버지와 자식의 극적 만남이 이뤄졌고 이후 1년에 몇 차례 정도 김 씨 가족들과도 만나는 사이가 됐다. 장영자 씨 일가는 10여 년 만에 집안의 장손을 찾게 된 것이다.
주변에선 A 씨와 김 씨가 다시 결혼할 가능성을 점치지기도 했지만 몇 달 뒤 김 씨가 지금의 부인과 결혼하면서 두 사람은 아이의 부모로만 남게 됐다. A 씨의 한 측근은 A 씨가 장영자 씨 일가의 일원이 되는 데 상당한 부담감을 갖고 있었다고 전한다.
현재 아이는 어머니인 A 씨 그리고 외할머니와 함께 지내고 있다. A 씨의 측근은 “아이가 공부도 잘하고 홀로 자신을 키우는 어머니에 대한 효심도 남다르다”고 얘기한다. 또한 아버지 김 씨를 많이 닮아 상당히 잘생긴 편이라는 얘기도 덧붙인다.
아이는 안타까운 사연을 뛰어 넘는 부모의 사랑으로 바르게 자라나고 있다. 어두운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웠던 장영자 씨 일가가 이제는 희망을 향해 나아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