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은커녕 몇 달 만에… 그들 머릿속엔 지우개가 들었나
▲ 각종 사건 사고에 연루돼 한동안 활동을 중단했던 연예인들. 왼쪽부터 김지수, 신은경, 성현아, 오현경, 황수정. | ||
요즘 가장 뚜렷한 성장세를 보이는 산업은 단연 연예계다. 어찌 보면 연예계가 눈부신 성장을 거듭할 수 있는 까닭 역시 ‘규제 완화’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각종 물의에 휘말린 연예인들이 다시 연예계로 돌아오는 데 아무런 규제도 없는 오늘의 현실이 연예계의 ‘거침없는 하이킥’을 가능케 한 것. 이제는 자숙기간이라는 단어조차 사라진 연예계의 규제 완화 히스토리를 들여다본다.
@음주운전
연예인이 가장 흔하게 빚는 사회적 물의는 음주운전이다. 최근에는 단 몇 시간 만에 잊히는 대수롭지 않은 사안이 됐지만 90년대엔 스포츠신문 1면에 오를 만큼 화제를 양산하는 사건이었다.
지난 96년 11월 영화배우 신은경은 무면허 음주운전에 교통사고, 여기에 뺑소니까지 더해진 대형 사건에 이름을 올렸다. 인기 절정의 신은경은 재기가 불가능할 정도의 위기를 맞았으나 이듬해 영화 <노는계집 창>으로 컴백했다. 거장 임권택 감독의 영화인데다 파격적인 노출 연기를 감수해 예상외로 빠른 연예계 컴백이 가능했던 것.
98년 7월에는 탤런트 이승연이 운전면허 불법취득 사건에 휘말려 연예계 활동을 중단했다. 역시 인기 절정이던 이승연은 두 차례나 연예계 컴백을 시도했지만 네티즌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컴백이 무산됐고 결국 당시 관례이던 1년여의 자숙기간을 채운 뒤 연예계로 돌아왔다.
이런 분위기는 2000년 7월 탤런트 김지수를 통해 완전히 달라졌다. 무면허 음주운전에 교통사고까지 휘말린 김지수는 단 3개월 만에 MBC 일일드라마 <온달왕자들>과 KBS 주말연속극 <태양은 가득히>에 동시에 출연한 것. MBC 드라마국 관계자는 “당시엔 겹치기 출연도 종종 물의를 빚곤 해 무면허 음주운전 이후 짧은 자숙기간을 가진 그를 캐스팅하는 게 상당한 부담이었지만 다행히 두 드라마 모두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면서 “그 후 더 이상 음주운전 관련 자숙기간은 그 의미를 잃었다”고 설명한다.
@마약류 복용
대마초 및 필로폰 복용 사건 역시 음주운전만큼이나 자주 발생해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어왔다. 단순 음주 운전의 경우 법적 처벌 수위는 그리 높지 않아 사회적인 지탄을 받는 수준에서 마무리되곤 했지만 마약류 복용은 법적 처벌 수위도 만만치 않아 파장도 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일정 기간의 사법 처리기간에 자숙기간까지 필요해 연예계에 복귀하는 시간은 더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70년대까지만 해도 연예인이 마약사건에 휘말리면 적어도 3~4년간 반성의 시간을 가져야 정부의 해금조치를 받아 연예계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지난 10년 사이 마약류 복용 사건에 휘말린 대표적인 연예인을 보면 99년 신동엽, 2001년 싸이 등이 대마초 흡입으로 구속된 바 있고 2001년 황수정이 필로폰 복용, 2002년 성현아가 엑스터시 복용으로 구속됐다. 신동엽과 싸이는 1년여의 자숙기간을 거친 뒤 연예계로 돌아왔고 성현아는 집행유예 판결을 받고 두 달여 만에 영화 <보스상륙작전>에 출연했지만 실질적인 컴백은 2004년 홍상수 감독의 영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를 통해 이뤄졌다. 당시 성현아의 매니저였던 윤선재 실장은 “세계적으로 능력을 인정받는 홍 감독의 영화인 만큼 2년여의 자숙기간을 마치고 되돌아오는 데에는 최고의 작품이었다”라며 “안 좋은 일을 겪었지만 인간적으로 성숙해 더 좋은 연기를 선보일 수 있었다”고 말한다.
가장 오래 연예계를 떠나 있어야 했던 이는 황수정으로 장장 6년여 만인 올해 초 드라마 <소금인형>을 통해 컴백했다. 황수정은 필로폰 복용에 간통까지 얽힌 탓에 다른 마약류 사건 연루 연예인과는 차이가 있다. SBS 관계자는 “황수정의 경우 다른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과 달리 방송출연규제심의위원회에서도 논란이 많았지만 어려운 결정을 했고 황수정이 좋은 연기로 이에 화답했다”고 설명한다.
지난해 5월 대마초 흡입 혐의로 입건됐던 고호경은 아직 연예계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마약사건과 관련해선 여전히 연예계 복귀가 어려운 것처럼 보이지만 고호경이 아닌 다른 톱스타였다면 얘기는 전혀 달라졌을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 신동엽, 싸이 | ||
가장 연예계 복귀가 어려운 사안은 국민 정서에 반하는 사건에 휘말릴 경우다. 대표적인 경우가 돌연 미국 국적을 취득하며 ‘병역기피’라는 낙인이 찍힌 가수 유승준이다. 여전히 국내 연예계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는 그는 입국마저 거부당해 한국행 자체가 요원한 상황이다. ‘병역기피’라는 사안이 워낙 국민 정서를 자극하는 사안인데다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했다는 괘씸죄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병역기피 의혹 역시 더 이상 연예계 복귀에 걸림돌은 되지 않는다. 지난 2004년 송승헌 한재석 장혁 등 톱스타들이 줄줄이 병역비리 사건에 휘말렸다. 결국 이들은 군에 입대해야 했고 당시 분위기는 유승준 사건만큼이나 뜨거웠다. 그렇지만 연예계 복귀에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우선 한류스타 송승헌은 전역과 동시에 대규모 팬 미팅 행사를 벌이며 연예계로 복귀했다. 군 전역 직후 기자회견에서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과분하고 시기적으로 성급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고 얘기할 정도로 송승헌 역시 자숙기간 없는 이른 연예계 복귀에 부담감을 보였다. 그는 현재 영화 <숙명>을 촬영 중이다.
작품을 통해 가장 먼저 컴백한 이는 드라마 <고맙습니다>의 장혁이다. 그 뒤를 이어 한재석은 드라마 <로비스트>에 출연 중이다. 군 복무 기간을 자숙기간으로 인정하지 않을 경우 이들은 국민정서에 반하는 사건에 휘말리고도 아무런 규제 없이 연예계 복귀에 성공한 셈이다.
@섹스스캔들(비디오·원조교제)
이미지가 생명인 연예인에게 가장 결정적인 사건은 사생활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섹스 스캔들이다. 이런 경우 자숙기간은 물론 연예인 본인이 타인의 시선을 극복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만만치 않다.
최근 드라마 <조강지처클럽>으로 10년여 만에 연예계로 돌아온 탤런트 오현경이 대표적인 경우. 사생활이 담긴 비디오 유출 사건에 휘말린 탓에 피해자 입장이었지만 정신적인 상처를 극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오현경의 컴백을 도운 것으로 알려진 이명순 모닝엔터테인먼트 대표는 “나를 비롯해 언론계 법조계 정계 교육계 대중문화계 인사들로 꾸려진 ‘오사모(오현경을 사랑하는 모임)’ 회원들이 오현경의 재기를 도왔다”며 “고통을 이겨내고 어렵게 용기를 낸 만큼 연기자로서 행복한 제2의 삶을 살았으면 한다”고 얘기한다. 비슷한 사안으로 눈물의 기자회견을 갖고 연예계를 떠났던 백지영은 역시 3년여의 시간이 흐른 뒤 발라드곡 <사랑안해>를 통해 부활했다. 비슷한 사안으로 눈물의 기자회견을 갖고 연예계를 떠났던 백지영 역시 3년여의 시간이 흐른 뒤 <사랑안해>라는 발라드곡을 통해 부활했다.
반면 섹스스캔들에서 가해자의 위치에 선 연예인은 연예계 컴백이 좀처럼 쉽지 않다. 지난 2000년 원조교제 사건에 휘말린 영화배우 송영창은 4년여의 자숙기간을 가진 뒤 영화 <형사 Duelist>로 연예계에 복귀했다. 자숙기간에 여의도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며 연예계를 떠나있었지만 평소 친분이 두터운 이명세 감독의 권유로 어렵게 영화에 출연하게 됐다고 한다. 또한 지난 2002년 원조교제 사건에 휘말렸던 이경영 역시 3년여의 공백기를 가진 뒤 영화 <종려나무숲>의 조연으로 연예계에 복귀했다. 하지만 두 배우 모두 주연급 배우였음을 감안할 때 본래 자신의 자리를 찾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듯하다.
이외에도 다양한 사건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은 많지만 더 이상 자숙기간이라는 단어는 그 의미가 없어 보인다. 예를 들어 지난 97년 해외 원정 도박 사건에 휘말렸던 개그맨 황기순이 매우 힘겹게 연예계로 복귀한 데 반해 지난 2005년 카지노바 도박 사건에 휘말렸던 신정환은 단 4개월여 만에 연예계로 돌아왔다. 최근 가라오케 파문에 휩싸인 정준하는 자숙기간은커녕 오히려 추석 연휴 내내 TV에 가장 많이 나온 연예인이었을 만큼 더욱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결국 인기만 있다면 안 될 게 없다는 인식이 연예인들 사이에 확산되면서 심각한 모럴헤저드가 우려되고 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