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에선 ‘집나간 며느리’, 친정에선 ‘얄미운 시누이’
▲ 김성주(왼쪽), 강수정 | ||
프리 선언을 한 아나운서에 대한 배제 방침이 확고했던 MBC 아나운서국은 김성주의 기용을 두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지만 예능국에서는 오히려 반기는 기색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이번 MC 발탁이 김성주가 소속된 대형기획사 ‘팬텀’의 힘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같은 기획사 소속으로 이미 SBS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강수정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활동을 재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김성주. 이들의 공중파 출연을 둘러싼 방송국 안팎의 기류와 뒷얘기를 살펴봤다.
MBC가 프리랜서 아나운서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각각 MBC와 KBS 소속 아나운서에서 프리를 선언, 기획사 소속 방송인으로 활동 중인 김성주와 강수정이 차례로 MBC 프로그램에 출연했기 때문. 게다가 KBS 출신 강수정은 프로그램의 게스트로 출연했던 것에 반해 김성주는 MBC 특집 프로그램의 MC로 ‘복귀 신고식’을 마쳐 MBC 내부 반발이 적지 않다. 지금도 프리랜서 아나운서의 배제 방침이 확고한 아나운서국과 ‘스타’ 기용의 문을 열어둔 예능국 간에 미묘한 신경전이 오가고 있다.
MBC 성경환 아나운서국장은 “조금 더 빨리 사실을 알았더라면 경영진에 (김성주의 프로그램 출연을) 숙고해달라고 요청했을 것”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드러냈다. 김성주의 기용은 MBC 소속 아나운서들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행동이며 앞으로 우수한 인재가 돈에 의해 연예기획사로 빠져나가는 일이 많아질 것이라는 게 성 국장의 주장.
성 국장은 이어 “어디에도 적을 두지 않은 이금희, 정은아 프리 아나운서와 달리 김성주는 연예기획사에 소속된 방송인이며 훌륭한 내부 인재를 두고 회당 몇 백만 원의 돈을 들여 그를 출연시킬 이유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KBS도 이와 비슷한 입장이다. KBS 아나운서국 측은 “김성주와 강수정의 활동에 대해서 KBS가 특별히 할 말은 없다”며 말을 아끼는 모습이지만 지금까지 프리 선언을 한 아나운서에 대한 배제 방침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다. KBS 아나운서국 조건진 팀장은 “개인적으로 (강수정이) 잘 되길 바라는 건 당연한 일”이라며 “하지만 소속 아나운서들의 사기 문제도 있고 운영진과 임원진의 의논 하에 결정된 일이기 때문에 당분간은 (KBS) 프로그램 출연이 힘들지 않겠느냐”고 입장을 밝혔다.
현재 MBC와 KBS는 프리랜서 아나운서의 배제 방침 ‘유효기간’을 2년으로 정해놓고 있다. 방송사를 떠난 아나운서가 자사 프로그램에 출연하기까지 2년의 ‘공백 기간’을 두는 것. 이는 일본 NHK의 방침을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2년 후에는 강수정과 김성주의 활동이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하지만 KBS 조 팀장은 “2년 후에 프리랜서 아나운서들이 자사 프로그램에 출연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단순한 문제로는 해석하지 말아 달라”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MBC 성 국장도 “사회가 재미를 추구하는 엔터테인먼트 기능이 강화되고 있고 아나운서도 ‘아나테이너’가 돼야 하는 시대에 시청자들의 욕구가 이들의 출연 가능성을 결정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슈를 만들려는 MBC의 전략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지만 MBC의 한 관계자는 이를 강하게 부정했다. 이슈를 만들고자 했다면 출연이 결정되기 전부터 홍보를 시작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김성주가 MBC 특집 프로그램의 MC를 맡았다는 사실은 MBC 내부에서도 언론에 보도되기 2~3일 전에 알려질 정도로 철저하게 비밀에 부쳤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내부 반발을 우려해서기도 하지만 담당 PD와의 친분 등으로 출연하게 된 터라 쓸데없는 오해(?)를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 프로그램을 연출한 사화경 PD는 “친분으로만 출연한 건 아니고 이제 활동을 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고 김성주 본인으로서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기 때문에 조심스러웠다”고 전했다.
그러나 방송가 일각에서는 김성주의 출연을 두고 기획사 팬텀의 입김 때문이 아니냐는 의견도 흘러나오고 있다. MBC의 한 고위 관계자도 이러한 시각을 전면 부정하진 않았다.
디와이(DY)를 인수한 팬텀 소속 연예인이 현재 진행을 맡고 있는 공중파 방송 연예오락프로그램은 전체의 50% 이상이다(<일요신문> 783호 참조). MBC 고위 관계자는 “팬텀엔터테인먼트는 큰 기획사이고 소속 연예인들을 프로그램에 출연시키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팬텀의 영향력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그렇다면 팬텀 소속 강수정을 <맛 대 맛> <야심만만> 등 간판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영입하고 있는 SBS의 입장은 어떨까.
정미선 SBS 아나운서는 강수정이 고정출연하고 있는 한 프로그램에서 “강수정이 우리의 밥그릇을 빼앗고 있다”는 뼈 있는 발언을 해 한동안 회자되기도 했다. 강수정이 SBS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이어서 SBS 아나운서들의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는 것. 이에 SBS 아나운서국의 공식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을 취했지만 아나운서국은 이와 관련해 언급하기를 꺼렸다. SBS 아나운서국 박영만 팀장은 “SBS가 강수정을 기용한 것은 오래된 일이고 그와 관련돼 할 말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SBS 예능 프로그램의 한 관계자는 팬텀의 영향력에 대해서 “언론에서도 보도됐듯이 예전에 비해 스타들의 힘이 세졌고 굳이 팬텀이라고 한정하기보다는 대형기획사의 영향력이 방송사에 미치는 건 당연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김성주가 출연한 MBC 특집 프로그램 ‘유엔의 날 특집-나눔과 평화 콘서트’는 동시간대 프로그램에 비해 5.0%(AGB닐슨 미디어리서치)라는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했다. MBC는 내부 회의 결과 이번 김성주 기용이 단발에 그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으나 MBC를 통해 활동을 재개할 뜻을 보였던 김성주로서는 시청자들에게 다소 냉혹한 평가를 받은 셈이다.
물론 단 한 번의 특집 프로그램 진행을 놓고 시청률이나 MC로서의 주가를 평하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상당수 연예 관계자들은 “김성주도 이젠 변신해야 한다”라고 입을 모은다. 결국 김성주도 “SBS를 좋아한다”며 너스레를 떨고 있는 강수정과 같이 ‘아나운서’가 아닌 ‘방송인’으로 마음가짐을 바꿔야 한다는 의미다. 한 방송 관계자는 “프리 선언은 자유로워진다는 뜻도 있지만 피를 말리는 무한경쟁에 돌입했다는 뜻도 내포돼 있다”며 “지금부터 김성주가 해야 할 일은 방송인 김성주로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라고 충고했다.
홍재현 객원기자 hong92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