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 ‘토크쇼’는 TV서나 하시죠
어느새 익숙해진 연예인들의 ‘교수’ 꼬리표. 과연 무대가 아닌 강단에 서는 연예인들의 모습은 실제 어떤지 각 대학을 찾아 학생들의 입을 통해 직접 들어봤다.
“거기는 목소리 톤을 올려야지!” “대사만 읊지 말고 이야기의 흐름을 생각하면서 표정을 바꿔!” 늦은 7시 한 대학교 소극장에서는 학생들을 향해 날카로운 지적이 쏟아졌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세종대학교 연극영화과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배우 이순재. 그는 무려 10년간 공연 위주의 수업인 ‘워크숍’ 강의를 진행해왔다. 학교 측은 이순재에게 일주일에 한 번 4시간 강의를 제안했지만 그는 일주일에 4번은 연습실에 들러 저녁 7시부터 밤 11시까지 학생들의 연기를 지도하고 있다. 예상대로 ‘이순재 교수’에 대한 학생들의 평가는 100점. 연극영화과라 해도 실질적으로 무대에 설 기회가 없던 이들에게 이순재의 수업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경험인 것이다. 한 학생은 “촬영 때문에 바쁘실 텐데도 틈만 나면 학생들을 지도하러 나오신다”며 “연기에 대해서만은 엄격하지만 끼니를 못 챙긴 학생들에게 밥을 사주고 아픈 학생들을 일일이 챙기는 자상한 교수님”이라고 말했다. 이순재는 “처음에는 대학에서 ‘서울에 있는 학교니까 오고가면서 학생들에게 몇 마디만 해 달라’고 부탁했다”며 “내가 전문지식을 가진 것도 아니고 가진 거라고는 체득한 연긴데 그렇게 할 거면 할 필요가 없다고 해서 연기가 주가 되는 이 수업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얼마전 A 씨가 서울대에서 특강을 했다. 대학 측의 거창한 홍보와 달리 60여 명이 채 안 들어가는 작은 강의실에서 열린 이 특강은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A 씨가 약속시간보다 30분이나 늦어 점심시간도 반납하며 수업을 듣고자 했던 학생들의 원성을 샀던 것. A 씨가 강의실에 모습을 드러내자 학생들이 호기심에 강의실로 몰렸지만 수업 시작 후 10분이 채 안 돼 한두 명씩 자리를 떠났다. A 씨가 자신의 전문 분야와 무관한 과에서 무려 1시간 동안 자신이 어떤 일을 해왔는지 하나하나 나열했기 때문이다.
▲ 세종대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는 이순재. 경험을 바탕으로 생생한 수업을 진행하는 연예인들도 많았다. | ||
이처럼 대학 강단에 선 연예인들의 모습은 극과 극이었다. 비록 정규 과정을 거쳐 교수가 된 건 아니지만 일부 연예인들은 학생들에게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으며 또 다른 일부는 유명세에 편승해 무리하게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전자의 경우는 학생들의 평가도 좋은 편. 수업에 대한 만족도가 높진 않았지만 연예인들의 소탈한 면을 볼 수 있어 좋다는 의견이 많았다. 또한 연예인과 친분을 쌓을 수 있다는 점에 후한 점수를 줬다. 연예인 수업의 특징인 실기 위주의 수업은 학생들의 참여도를 높이는 데 공헌하고 있다고. 수원에 위치한 한 대학에서 만난 학생은 “처음에는 연예인이기 때문에 다가가기 힘든 점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교수와 학생으로 만날 수 있게 됐다”며 “무엇보다 (연예인 교수들은) 다른 교수들보다 학점을 후하게 줘서 좋다”고 웃어보였다. 서울의 한 학교에서 만난 학생은 “일단 연예인에 대한 선입견이 깨졌고 연예인들도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좋은 수업이라 단정짓기엔 부족한 면도 있지만 아무래도 풍부한 현장 경험을 직접 들을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반면 교수 직함을 달고 있지만 강단에서 볼 수 없을뿐더러 학생들에게도 좋지 않은 평가를 받고 있는 연예인들도 있었다. 그나마 서울 근교에 위치한 대학은 사정이 나았다. 예상보다 휴강일이 적었고 수업에 착실히 참여하는 편이었다. 문제는 지방대학. 강의하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직접 보기 위해 각 대학에 문의를 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개설된 강의가 없다”였다. 각 대학 홈페이지 교수 명단에는 버젓이 이름이 올라와 있음에도 정작 수업은 하지 않고 있다는 것. 그 이유를 묻자 대학 측은 “휴강일이 많아지다 보니 학생들의 항의가 빗발쳤고 더 이상 수업을 개설할 수 없었다”고 대답했다.
전라남도의 한 대학에서 교수직을 맡고 있는 이승연. 그는 2년 전부터 이 대학의 객원교수로 초빙됐다. 대학 측에서는 이승연에게 개인 사무실까지 마련해줬지만 그가 이곳에서 강의를 한 횟수는 손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적다. 객원교수는 정규 강의를 할 수 있는데 이승연은 한 학기에 한두 번 특강을 한 게 전부였다고. 학생들의 불만은 꽤 컸다. 이승연이 소속된 학과의 한 학생은 전화통화에서 “학교에서 몇 번 수업을 듣긴 했지만 그 분이 우리 학교 교수인지 몰랐다”며 놀란 눈치였다. 이승연을 초빙한 담당 교수는 “이승연 씨가 워낙 바빠서 어쩔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승연이 수업을 개설하면 몇 백 명이 몰릴 정도로 인기지만 휴강이 많아서 수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담당 교수는 오히려 “이승연의 사회 경험이나 현장 경험이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고 홍보 효과도 누릴 수 있다고 판단했다”며 “바쁜 시간을 쪼개 강의를 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이승연의 매니저는 “(매니저) 일을 맡기 전에 있었던 일이라 잘은 모르겠지만 이미 (교수를) 그만둔 걸로 알고 있다”고 전했으며 전 매니저는 “잘 모르겠지만 정식 교수는 아니었던 걸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학 측은 2005년부터 3년간 이승연과 계약했다고 전했다.
▲ 이승연(왼쪽), 강원래 | ||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학생들은 몇몇 연예인들의 강의를 ‘신변잡기’식이라고 비꼬았다. 가끔 연예인들의 사생활 관련 얘기를 들으면 재미있지만 수업이 그쪽에 치중되면 수업의 의미가 없어진다는 것. 한 연예인의 특강 수업에 참여한 한 학생은 “특강 같은 경우는 아무래도 연예인들을 직접 볼 수 있고 궁금한 걸 물어볼 수도 있고 사생활 관련 얘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실제 대학에서 300여 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열린 한 특강은 연예인의 심경 고백과 타 연예인들의 사생활에 대한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웠다.
연예인들이 대학 강단에 서기 시작한 건 1998년 대학이 급증하면서부터다. 교수 인원을 확충하지 못한 대학들이 앞 다퉈 유명인들을 초빙하게 된 것. 그러나 대학 강단에서 10년 이상 강의를 해온 연예인들은 손에 꼽힌다. 1년이 채 되지 않아 그만두는 경우도 허다하고 이마저도 허술하게 진행된다. 게다가 연예인 교수가 일주일에 하루 6시간을 강의한다고 했을 때 받을 수 있는 강의료는 한 달에 200여만 원. 여기에 교수에게 지급되는 일정한 기본급을 합치면 적지 않은 액수다. 그럼에도 몇몇 연예인들은 교수직을 성실히 수행하지 않고 있다. 이순재는 “연예인들의 실전 경험이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경우도 물론 있지만 휴강을 밥 먹듯하는 몇몇 연예인들 때문에 학생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며 “연예인들은 교수라는 직함을 받는 것에만 머무르지 말고 돈을 내고 배우러 온 학생들에게 미안함과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재현 객원기자 hong92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