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왜 ‘그녀’들 앞에서 작아지는가
▲ 영화 <툼레이더>의 섹시한 여전사, 앤절리나 졸리. | ||
생각해보면 잡지사에 유난히 싱글이 많기는 하다. 그것도 화려한 싱글이 아닌 남자관계 참 깔끔한 솔로. ‘연애 못해 본 지 1년이 넘었다’ 정도는 한탄 축에도 못 낀다. 친구들이 애 둘을 낳을 동안에도 여전히 본인은 남자의 헷갈리는 문자 메시지 하나에 가슴이 콩닥대는, 그런 솔로들로 사무실은 차고 넘친다. 일반 회사원과 다른 출퇴근 시간이나 마감을 핑계로 대보기는 하지만 본인들도 안다. 어쩌면 스스로에게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잡지사뿐만이 아니다. 여자들만 모여 있는 집단에는 유난히 올드미스가 많고 싱글들이 넘쳐난다. 간호사들이며 초등학교 교사, 종종 마주하는 홍보녀들만 봐도 그랬다. ‘주위에 남자가 없어서’를 이유로 대자면 거리를 활보하는 저 거친 테스토스테론들은 뭔가. 물론 길거리의 남자가 모두 내 남자일 수야 없지만 인터넷과 돈이면 무엇이든 구할 수 있는 요즘 세상에 설마 흔해빠진 ‘남자가 없어서’라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렇다면 대체 왜. 아마조네스 왕국에서 생활하는 혹은 머물렀던 청일점과 민자, 디자이너 정, 그리고 잡지계를 떠난 타잔에게 물었다.
#1 청일점님 입장하셨습니다
일점: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간호사입니다. 일한 지는 1년이 좀 넘었고요. 대학교 땐 84명 중에 5명이 남자였는데 한 명이 중간에 그만두었고, 지금 일하는 곳에선 저 혼자입니다.
앙앙: 여자들로 가득한 곳에서 생활해보시니 어떻던가요?
일점: 저희끼리 ‘여자 공대생은 공주, 남자 간호대 생은 머슴’이라는 농담을 주고받곤 했는데 이건 사회생활이 시작되어도 마찬가지더군요.
앙앙: ‘백의의 천사’라고까지 불리는데도 간호사들 중엔 참 솔로가 많잖아요.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일점: 3교대기 때문에 남자들이 별로 원하지 않는 경우도 있긴 해요. 데이트 약속 잡기도 힘들고. 하지만 제가 봤을 땐 여자들의 수다가 가장 큰 걸림돌이에요. 여자들만 있다 보니 여긴 비밀이 없어요. 동료 중 누군가가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하면 몰려들어 이것저것 따지고 물어보죠. 당사자들이 먼저 이야기를 털어놓기도 하고요. 그럼 ‘그 사람은 이게 별로네’ ‘그냥 접어라!’ 식의 말들이 오갑니다. 안 좋은 말을 듣게 되면 당연히 마음이 흔들리고, 여기에 동료의 다른 남자친구와 비교하기 시작하면 눈은 끝도 없이 높아지는 거죠.
지역조차 밝히지 말아달라는 조건으로 초등학교 남자 선생님 한 분이 인터뷰에 응했다. 7년차에 접어든 그는 스스로 민 선생 대신 ‘민자’로 불린다고 말할 정도로 여자들과의 생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른 듯 초연한 모습이었다. “남자의 비율이 15% 안팎이라고 보면 됩니다. 처음에는 쑥스러운 게 많았죠. 이젠 야한 얘기도 끼어들고, 같이 찜질방 가서 수다도 떨고. 허허. 소수라서 남자들끼리 잘 뭉치죠. 학교에는 여자만의 모임은 없어도 남자만의 모임은 반드시 있습니다. 남교사회 같은 것.” 1등 신붓감이라는 초등학교 교사들에게도 그녀들만의 연애 딜레마가 있을까. 그는 여기에 대해 그것이 바로 함정이라고 지적했다. “모두가 선호하는 직업이다 보니 여교사와 적당히 눈을 맞출 수 있을 정도로 남자도 조건이 받쳐줘야 하는데, 특히 지방에서는 찾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요즘은 여교사도 남교사를 좋아하긴 하는데, 남교사도 흔한 게 아니고. 그렇다고 아무나와 막 결혼하기는 내심 아깝지 않겠습니까? 요즘은 뭐든 그렇게 먹고 살기가 힘드네요. 남자마저 영양가가 없으니. 하하. 그러니 어디 시집가겠어요?”
#3 한 맺힌 ‘디자이너 정’
“성격이 너무 강해요! 남자에게 지기 싫어하고. 자기 할 말 딱 부러지게 해야만 직성이 풀리죠. 평소같이 일하면서 행동하는 것만 봐도 ‘결혼하면 참 피곤하겠구나’ 싶거든요. 그리고 눈이 너무 높아요. 디자인이라는 것 자체가 그렇잖아요. 잘생긴 모델에, 스타일리시한 패션에, 워낙 좋은 것만 보다보니 본인의 처지를 망각하는 거죠. 자기 외모는 상위 3%에도 미치지 못하면서 남자에겐 그 정도의 재력과 스타일을 원하는데, 남자도 눈이 있죠. 그런 남자들은 예쁘고 늘씬한 모델을 원한다고요. 무엇보다 남자에 대해서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 같아요. 왜 공대나 남자들만 있는 직장에 다니는 남자들이 여자의 내숭에 대해 깜빡 속아 넘어가는 것처럼 말이죠. 가끔 여자들끼리 모여서 잘생긴 남자 연예인이나 모델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보면 참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어차피 그 남자는 이 여자들 신경도 안 쓸 텐데 싶죠. 그런 남자만 생각하다보면 연애하기 어렵죠.”
멀쩡한 상태에서 만난 선배는 냉정을 되찾은 듯했다. 그의 불만 역시 앞서 다른 남자들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취향이 너무 분명해. 그래서 소개팅도 못 시켜주겠어. 하다못해 음식점을 추천해줄 때도 그래. 맛있는 집을 알려줘도 음식이 맛있으면 뭐해, 그 집 젓가락이 마음에 안 들면 끝이잖아.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게 절반은 가더라고. 자기 기준의 즐거움만 찾아. 너무 까다로워.” 바로 그 점이 그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이었다. 좋게 말하면 자기주장이 확실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피곤한 타입. 덕분에 그는 달이 갈수록 말수가 줄었다. 살아남기 위해. “대화를 할 때도 자기들 생각과 다르면 인정하지 않더라. 종종 그런 말하잖아. ‘니 여자친구는 어떻게 너를 좋아하니?’, ‘너의 입술에 뽀뽀를 하고 싶대?’ 내가 자기 타입이 아니라고 해서 모든 여자에게 NG일 수는 없는 거잖아. 남자끼리는 아무리 친해도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그런 농담은 하지 않거든.” 한마디로 그에겐 이 아마조네스에서의 8개월이 컬처 쇼크였다. 이 거친 여자들의 끈끈한 의리와 동지애는 인정하지만 그래도 충격은 어쩔 수 없는 거다. 그는 부탁했다. 제발 여자들과의 오랜 생활 탓에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 지나친 솔직함이나 자기주장을 자제해달라고. 타잔은 그렇게 떠났다.
남자들의 세계를 잘 모르는 여자의 연애 스타일은 대게 두 가지 타입으로 나타난다. 난생 처음 남자를 만난 잠자는 숲 속의 공주거나 미지의 것은 일단 적으로 치부하는 정글 속의 여전사거나. 서른이 넘은 순진한 공주님은 부담스럽고 목숨과도 같은 프라이드의 반납을 요구하는 여전사도 무섭다. 아마도 타잔에겐 이 아마조네스 왕국의 거친 여전사보다 금발머리 제인이 더 편안할 것이다. 결국 타잔은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와는 별개로 여자들만으로 이뤄진 이 평화로운 세계는 오늘도 잘 돌아가고 있다.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이 남자들의 연약한 마음을 알아주기만 한다면. 어쨌든 정글에도 꽃피는 봄은 찾아온다.
에디터=이미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