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알고 싶어요” 짝퉁 유혹 주의보
아크라에서 인터넷 사기 행각을 전문으로 하고 있는 ‘고스트’. 작은 사진은 피해 여성 아네트 에거, 오른쪽은 에거를 속이기 위해 벤틀리 존스라는 이름으로 올린 가짜 프로필 사진.
뜻밖의 쪽지에 에거는 곧장 남성의 프로필 사진을 확인했다. 꽤 미남이었다. 미국인이었으며, 심장학과 전문의에 나이는 45세, 그리고 아들 하나를 둔 싱글대디였다. 운동으로 다져진 몸과 매력적인 미소, 그리소 세련된 스타일의 남성은 딱 에거의 이상형 그대로였다. 그가 아들과 함께 파티를 즐기거나 낚시를 하거나 소파 위에 앉아 있는 여러 장의 사진을 보면서 에거는 곧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에거는 아주 뚱뚱하지도, 아주 날씬하지도 않은 보통 체격에 지하철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스타일의 여성이었다. 싱글이 된 지는 한참 됐기 때문에 늘 외로움에 사무쳐 있었다. 때문에 인터넷에서 짝을 찾아 헤매는 데는 이미 베테랑이 된 지 오래였다. 많은 경험을 해봤기에 더 이상 놀랄 일도 없다고 생각했던 그녀였지만 뜻밖의 괜찮은 남자가 다가오자 흔들리기 시작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왜 나를 선택했죠?”라고 묻자 존스는 “당신 프로필이 마음에 들었어요”라고 대답했다. 그 후부터 존스는 에거의 마음에 쏙 드는 행동과 말만 하면서 에거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늘 칭찬을 쏟아냈고, 그녀를 ‘여왕님’ 혹은 ‘자기야’라고 불렀다. 그리고 함께할 미래에 대해서도 열성적으로 설명을 하곤 했다. 그녀가 묻는 질문에 늘 친절하게 대답을 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가령 ‘아이 엄마는 어떻게 된 거냐’는 질문에는 ‘아들을 낳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이때만 해도 에거는 앞으로 다가올 불행을 전혀 예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몇 차례 채팅과 쪽지가 오가자 존스는 현재 자신이 미군부대 소속으로 카불에 배치를 받아서 근무하고 있다고 말했다. 단, 일곱 살 아들에게 좋은 엄마가 되어 줄 인생의 반려자를 만나고 싶어 여자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매일 밤 채팅을 하면서 애정을 확인하던 어느 날 에거가 화상 채팅을 위해 웹캠을 설치할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존스는 군부대 내에서 웹캠을 사용하는 것은 금지라며 이 제안을 거절했다.
그리고 2014년 12월 23일. 존스가 갑자기 가나에 보관해둔 현금 상자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그는 “당신에게 아주 중대한 비밀 하나를 털어놓을게요. 사실 현금이 든 상자를 가나의 보안업체에 맡겨 두었어요. 상자에는 현금과 함께 프로젝트 관련 서류가 들어 있어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돈으로 언젠가 독일에서 개인병원을 차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는 “세관 문제로 현금 상자를 카불로 가져오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보안업체에 관리비로 지불하는 돈만 나가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그는 슬쩍 에거에게 “나 대신 그 돈을 은행을 통해 가나로 송금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존스에게 푹 빠져 있었던 에거는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그 후부터 에거는 가지고 있는 돈을 조금씩 가나로 송금했다. 처음에는 1800유로(약 240만 원)를, 그 다음에는 2000유로(260만 원)를 보냈다. 그 후에도 여러 차례에 걸쳐 돈을 송금했다. 결국 월급과 저축 통장까지 탈탈 털어서 송금한 후에도 돈이 부족하자 에거는 두 차례 대출까지 받았다.
2015년 1월 20일. 더 이상 보낼 돈이 없어서 난처해진 에거에게 존스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돈을 더 보내야 해요. 당신에게 약속할게요. 성공하면 영원히 당신에게 감사하면서 살게요. 그리고 영원히 당신을 자랑스럽게 여길 거예요.” 이런 존스의 말을 들은 에거는 되레 죄책감을 느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도와줄 수 없는 자신을 원망스러워했다.
그리고 2015년 2월 초, 마침내 존스가 그녀를 만나러 독일로 오겠노라고 약속했다. 존스는 “카불에서 테헤란을 거쳐 뮌헨으로 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렸던 에거는 부푼 마음으로 공항으로 나갔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존스는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한 여성이 다가오더니 존스가 테헤란 공항에서 총에 맞아 숨졌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그 순간 에거는 서서히 꿈에서 깨어났다.
사실 그녀가 알고 있던 벤틀리 존스라는 남성의 정체는 모두 거짓이었다. 그는 미국인도, 의사도, 그리고 싱글대디도 아니었다. 그는 다름 아닌 가나에서 인터넷을 이용해 사기를 치는 사기꾼, 즉 ‘사카와 보이즈(sakawa boys)’였다. ‘사카와’란 원래 특정 인터넷 사기 수법을 의미했지만 지금은 인터넷으로 사기를 치는 모든 수법에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보통 외국인을 상대로 한 사기 행각을 지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카와 보이즈들이 값비싼 자동차를 몰고 가나 아크라의 한 쇼핑몰에서 쇼핑하고 있다. 이들은 사기 친 돈으로 늘 새 신발을 신고 디자이너 청바지를 입고 다닌다.
가나에서 ‘사카와’란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미 수백만 유로가 오가는 지하 경제를 형성하고 있을 정도로 거대해졌기 때문이다. 가령 가나 수도인 아크라의 빈민촌인 ‘사봉 종고’에는 언제부턴가 인터넷 카페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곳을 찾는 청년들의 목적은 대개 비슷하다. 다름이 아니라 인터넷으로 자신의 고객들, 더 정확히 말하면 전 세계 돈 많은 백인들을 찾는 것이다.
학교에 가야 할 어린 나이이건만 청년들은 학교 대신 인터넷 카페에 앉아 하루를 보낸다. 이른 아침부터 인터넷 채팅창을 열고 가짜 프로필로 백인들을 유혹하기에 여념이 없다.
10년 넘게 ‘사카와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30세의 ‘고스트’라는 가나의 남성은 ‘사카와 보이즈’의 사기 수법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학교도 다닌 적이 없고 제대로 된 직업도 가져본 적이 없지만 현재 그는 가나에서 남부럽지 않은 부자다. 늘 새 신발과 디자이너 청바지를 입고 다니며, 항상 노트북을 갖고 다닌다. 그는 초보들이 인터넷 카페에서 죽치고 앉아 작업을 하는 것과 달리 집에서 편안하게 작업을 한다. 도요타 캠리 자동차와 오토바이 한 대를 소유하고 있는가 하면, 부모님에게도 집을 한 채 사드렸다. 지금까지 그가 ‘사카와 비즈니스’로 벌어들인 돈은 무려 10만 달러(1억 원)가 넘는다.
그는 <슈테른>을 통해 “빈민촌의 청년들은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값비싼 차와 반라의 여성들과 함께 있는 래퍼들을 동경한다. 빨리 돈을 벌어서 그런 부를 누리고 싶어한다”라고 말했다. 더 이상 고생해가면서 힘들게 1세디(230원)를 벌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사기 행각은 프로필을 작성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고스트’는 인터넷 사이트마다 프로필을 여러 개씩 만들어 두었으며, 모든 프로필마다 각각 다른 이메일을 사용하고 있다.
프로필 사진은 구글이나 사진 저장 사이트를 이용해서 구한다. 가장 좋은 얼굴은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얼굴이며, 간혹 흑인 여성을 만나길 원하는 남자를 유혹할 때에는 여자친구들이나 누이의 사진을 이용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개인 사진첩에 사진을 많이 올려놓으면 쉽게 상대에게 믿음을 줄 수 있다. 특히 자녀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려놓을 경우에는 대부분 사기꾼이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나이는 유혹하려는 목표 집단에 따라 다르게 설정하며, 이름은 구글을 통해 찾는다. 이때 중요한 것은 결코 특이한 이름이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에거가 반했던 ‘벤틀리 존스’라는 이름을 구글에서 검색할 경우 수백 개의 게시물이 뜨는데 이는 같은 이름을 가진 영국 가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직업은 엔지니어, 의사, 사업가 등 인기 있는 전문직을 선택한다.
‘사카와 보이즈’들의 주된 타깃은 평범한 외모의 외로운 싱글들이다. ‘고스트’의 경우에는 주로 40대 이상의 평범한 싱글 여성들을 상대로 작업을 건다. 이런 여성들일수록 칭찬에 약하기 때문이다.
‘고스트’는 본격적인 작업을 걸기 전에 인터넷 사이트나 페이스북을 통해 이메일을 수집한다. 이렇게 수집한 이메일 주소로 가짜 프로필을 이용해 작성한 단체 메일을 발송한다.
첫 번째 메일에서는 보통 “프로필이 마음에 들어서 연락합니다. 너무 아름다우세요”라고 운을 뗀다. 그리고는 이어 직업, 이상형 등 자기소개를 한다.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되 너무 들이대서 상대에게 부담을 줘선 안 된다고 그는 말했다.
이메일을 발송한 다음에는 느긋이 답장을 기다려야 한다. 어떤 경우에는 며칠이, 또 어떤 경우에는 몇 달이 걸리기도 한다. 고객이 답장을 보내오면 이제부터는 인내심을 발휘해야 할 때다. 상대가 자신을 믿도록 오랜 기간에 걸쳐 신뢰를 쌓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고스트’는 의심을 하거나 귀찮게 질문을 많이 던지는 여성들은 걸러낸다. 오로지 사랑을 갈구하고 있다는 직감이 드는 외로운 여성이나 남성을 상대로만 작업을 건다.
일단 작업을 걸기 시작한 이후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늘 인터넷에 접속해 있어야 한다. 시차 때문에 한밤중에도 채팅을 해야 하지만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대화를 할 때는 상대의 말을 늘 경청해야 하고, 또 재치 있는 대답을 해야 한다. 가령 한 여성이 ‘저는 뚱뚱해요’라고 말하면 ‘그래도 난 당신이 좋은 걸요’라고 말하는 식이다. 또는 전남편이 어떻게 자신을 떠났는지에 대해서 불평을 늘어놓는 여성에게는 ‘못된 놈’이라고 욕을 해주기도 한다. 다시 남자와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두렵다고 말하는 여성에게는 근사한 프로필 사진을 보내 위로를 해준다.
상대가 감정적으로 완전히 자신에게 몰입해있다는 확신이 들면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돈을 요구할 차례다. 단, 무례하지 않고 고상하게 요구해야 한다. 처음에는 적은 액수의 돈을 요구한다.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채팅을 하려면 노트북이 필요하다는 식이다. 가짜 프로필 사진 속의 아들이 해외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당장 치료비가 필요하다고 엄살을 떠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이렇게 몇 번 선뜻 돈을 보내오면 그 다음은 보다 큰 액수의 돈을 요구할 차례다. 그리고 원하는 만큼 돈을 뜯어낸 후에는 갑자기 사라지거나 연락을 끊어버리거나 혹은 벤틀리 존스처럼 죽어버리면 된다.
현재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에거는 대인기피증에 시달리고 있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집안에 틀어박혀 보내고 있다. 수치심과 부끄러움이 산처럼 쌓였다고 말하는 그녀는 현재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처지가 비슷한 희생자들과 교류하면서 위안을 받고 있다. 이 가운데는 10만 유로(1억 원)를 갈취당한 여성도 있었으며, 어떤 여성은 아예 가늠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많은 돈을 뜯겼다고 말했다. 이런 여성들은 모두 사기꾼들을 고발하거나 당장 가나로 날아가 복수를 하고 싶다며 울분을 토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복수는 사실 거의 불가능하다고 <슈테른>은 지적했다.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 속에 존재하는 가상의 인물을 어떻게 찾아 체포한단 말인가. ‘사카와 보이즈’들은 유령처럼 왔다가 마음을 홀린 후 홀연히 사라질 뿐이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